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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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해진 불모지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방랑자, 그 사람이 작가이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의 장점이다.

 

도무지 줄거리가 중요치 않은 소설이 있다. 현실과 환상의 이음매 따위도 중요치 않은 소설. 그저 선연한 문장만이 어느 삶의 자락을 묵묵히 응시하고 묘사해 이야기의 맥을 겨우 이어가는 소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연한 이미지들은 오히려 선명한 인상으로 각인된다. 바로 한강의 소설이 그러하다. 한강은 새로운 상상력과 형식, 너무나 신선해 독자를 아연하게 만드는 독특한 언어를 펼쳤다. 문체가 곧 소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몇 되지 않는 소설가 중에 그녀가 있다. 남성작가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점. 한강은 늘 고통받는 인물을 다룬다. 《희랍어 시간》에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빛을 잃은 남자가 있다. 여자는 열일곱 살에 원인도 없이 갑자기 말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그녀에게 희랍어를 가르쳐주는 남자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유전병을 가졌다. 두 사람은 《검은 사슴》이나 《내 여자의 열매》, 《채식주의자》까지 기존에 발표했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상처에 민감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그로 인해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서늘함은 사실 상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은밀한 트라우마를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과 탁월한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 그들은 분열될 수밖에 없는 자질을 지녔고 여러 운명적 불행과 고난을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굴하지 않는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그녀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 탐색에 초점을 맞춘다.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는 분명히 두 귀로 언어를 들었지만, 두텁고 빽빽한 공기층 같은 침묵이 달팽이관과 두뇌 사이의 어딘가를 틀어막아주었다. 발음을 위해 쓰였던 혀와 입술, 단단히 연필을 쥔 손의 기억 역시 그 먹먹한 침묵에 싸여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 없이 움직였고 언어 없이 이해했다. (15쪽) 

 

 

내가, 눈이 완전히 먼다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너는 알지. 마음의 눈 따위가 결코 떠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혼란스러운 수많은 기억들, 예민한 감정들 속에서 길을 잃고 말거라는 걸. 타고난 그 어리석음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다만 끈질기게. 하지만 믿을 수 있겠니. 매일 밤 내가 절망하지 않은 채 불을 끈다는 걸. 동이 트기 전에 새로 눈을 떠야 하니까. (83쪽)

 

 

남자와 여자는 급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아직 또렷한 표현 수단을 체화하지 못한 반쪽 사람들이다. 인물들은 감각과 표현수단을 잃어버림으로써, 타인과의 소통은 물론 자기 생각마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완전히 달라진 내면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하고,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행위조차도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어느 벼랑이나 심연의 끝에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남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잃어버린 언어를 적는다. 고독과 고통을 칭칭 몸에 휘감고 살아가는 여자는 남자의 살갗에서 세상을 만난다. 두 남녀가 마침내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 고요한 절정을 이룬다. 그들 마음속 빈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정말이지 ‘아픔이 성숙으로 빛나는 것이란 저런 것이구나’라고 절감했다.

 

생명체는 자기표현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억압된 감정에 대한 자기표현의 욕망, 즉 말하기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문학의 출발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무엇인가 결핍된 욕망, 상처, 고통 등 말로 할 수 없는 걸 쓰는 것이다. 말이 침묵하는 곳에서 쓰기가 시작된다. 문학적 표현 방법이 곧 삶의 방식이고 사고의 방식이다. 문학은 상실과 절망을 언어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한강의 문학은 억지로 극적인 희망과 화해를 말하기보다는 그저 혼자 간절하게 빛과 회복을 더듬어본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삶에 대한 의지가 스미는 순간을 포착한다.

 

《희랍어 시간》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 남녀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하는 중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 그다음, 상처를 보듬어주는 소통의 접촉. 비록 허황한 몸짓이 될지라도 버거운 삶을 버텨내기 위한 시도는 더욱 값진 의미가 있다. 천형처럼 고통의 운명을 짊어지고 소통을 시도하려는 인간이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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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06-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선 희랍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cyrus 2016-06-24 17:00   좋아요 0 | URL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읽고, 그리스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루쉰P 2016-06-2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은 문학평론가 하셔도 되겠어요. 아 읽으면서 이해가 쏙쏙되네요 ㅎ 요전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사서 읽었어요. 뒤에 해설이 나오는 데 제 개인적인 이해력의 한계이지만 뭔 소리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어요 @.@

게다가 소설은 너무나 무겁고 으시시시해서 다 읽기는 했지만 어떤 감상을 쓰지를 못 하겠더군요. 근데 시루스님의 말처럼 강렬하다는 것, 선명하게 남는 다는 것 그건 있어요. 한강의 문장들이 장면으로 연상되어서 강한 불쾌감을 주더군요. 새를 물어뜯고 반나체로 있던 여인의 모습이나, 꽃그림을 그리고 붕가붕가 하던 그 커플이나, 앰블러스에서 너 미친거지라고 외치던 그 장면이나...글을 정말 잘 쓰는 것 같아요.

취향이겠죠? 저에게는 정말 안 맞는 작가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뉴스 사회면을 보면 소설보다 더 기가 막힌 일들이 나오고, 그런 것을 경악하면서 보는데 왜 소설은 그걸 제가 인정치 않은 것일까요? 그런 의문이 들더군요...

뭐이리 주저리 ㅋㅋㅋ 썼지.

정말 글 좋습니다. ㅎ 감탄하고 가요 ㅎ

cyrus 2016-06-24 17:05   좋아요 0 | URL
이번에 나온 한강의 <흰>을 읽었는데, 처음에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번 더 읽으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흰 것’의 의미가 뭔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좋아해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ㅎㅎㅎ

alummii 2016-06-2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읽고싶네요!ㅎㅎ

cyrus 2016-06-25 16:01   좋아요 0 | URL
줄거리가 쪼금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