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썼던 글에 요네하라 마리의 이솝 우화 재해석을 소개한 적이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에서 태양이 바람을 이겼다는 우화가 있다. 요네하라 마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나그네는 태양의 의지를 자기 자신의 의지로 착각하여 옷을 벗었다. 그녀는 정신의 자유가 유지되려면 외부의 속박을 자각하고 있는 상황이 더 낫다고 말한다. 요네하라 마리의 해석은 비판적인 독서에서 비롯된 사고능력이다. 어떤 책을 읽고 예전에는 당연하게만 받아들였던 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분명히 그 책은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독서의 목적은 단지 지식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자신의 주체적 관점을 세우는 데 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눈을 갖는 일이다. 중국 명대의 사상가 이탁오는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고, 왜 짖느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며 자신을 비판한다. 고전은 서평으로 작성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왜냐하면 ‘모두’의 생각을 내 생각인 것처럼 쓰게 되기 때문이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독서회를 만들면 안 된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꼭 봐야 직성이 풀리는 동물이지만, 기존의 해석에 쉽게 지배받는다. 서평을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고전 작품을 읽고 서평을 썼을 때,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찾으려고 했다. '정답'에 얽매이면 남이 했던 생각을 내 생각으로 착각하면서 쓴다. 이러한 독서와 글쓰기는 정형화된 답만 외워서 옮겨 적는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때는 정답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교육 환경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고전을 읽는 방법을 몰랐다.
‘인문 고전 독서 붐’이 일어나면서 독서 전문가들은 고전 도서 목록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읽으라고 권한다. 이지성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역사를 움직여온 위대한 개인, 조직, 국가 뒤에는 항상 탄탄한 인문고전 독서 전통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문 고전 독서가 ‘천재의 두뇌에 직접 접속하는’ 행위, 즉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해서 정신적 대화를 나누는 일에 비유한다. 과연 고전은 천재의 두뇌가 낳은 위대한 책일까? 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전이 어떻게 우상화되어 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거의 읽히지 않은 책이었다. 그 당시 파리지앵들은 루소의 책 대신에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의 《파리의 풍경》을 읽었다. 메르시에의 책은 혁명 전의 파리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논픽션에 가깝다. 이 책이 불티나게 팔렸을 때, 루소와 볼테르는 평범한 작가에 불과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책의 위치가 크게 달라졌다. 아무도 메르시에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어 본 사람도 없다. 생전에 메소니에보다 인기를 많이 얻지 못했던 루소와 볼테르의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논어》는 공자가 남긴 말을 정리한 것인지, 공자가 직접 쓴 책이 아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보존하기 위해서 편집한 책이다. 그러면 공자의 제자들이 자신의 입맛대로 스승의 생각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자의 생각이 개입될 수 있다. 문장 하나만 가지고 제자들의 해석이 서로 충돌했을 것이다. 그래도 공자는 복 받은 사람이다. 생전에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해 전국을 떠돌았던 실패한 사람이다. 제자들의 노력 덕분에 공자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동시에 《논어》는 불멸의 고전이 되었다.
고전을 삐딱하게 읽으려면 가장 먼저 고전을 대하는 자세부터 ‘리모델링’해야 한다. 일단 고전을 무조건 읽어야 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통념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인류 역사를 관통한 위대한 생각도 현실과 맞지 않은 점이 분명히 있다. 고전은 저자가 당대에 던진 발언이며, 완벽한 책이 아니다. 고전에도 약점이 있다. 독자는 그 약점을 공약하면 고전을 비판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 맹목적 수용은 무지보다 위험하다. 고전 읽기에 정답은 없다. 하나의 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이 다양하듯, 고전을 바라보는 눈 역시 제각각이다. 특정한 답은 없다. 고전 해석에 정답이 없으므로 우리는 고전에 대한 무수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다. 서툴지만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구축하는 것. 그게 바로 고전 읽기의 매력이다.
※ 서평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