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륜 스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법구경을 추천하고 싶다. 법구경은 인생에 지침이 될 만큼 좋은 게송(偈頌)들을 모아 엮은 최고(最古)의 경전이다. 스님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삶의 해법들 대부분은 법구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 법구경은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경전이다. 짧은 잠언에는 비유와 암시가 가득하다. 스님은 법구경의 심오한 지혜를 편안한 언어로 알려준다. 해당 출판사 서평에 보면 《법륜 스님의 행복》을 ‘우리가 알아야 할 총체이자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소개했다. 어이없게도 법구경이 ‘의문의 1패’를 당하고 말았다. 출판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지혜의 보물창고가 존재하고 있는데, 스님의 책을 마치 대단한 책인 것처럼 알렸다. 이래서 출판사 서평의 팔 할은 과장이다.

 

 

 

 

 

 

 

 

 

 

 

 

 

 

 

 

 

 

《법륜 스님의 행복》의 표지를 펼쳐 보면 법구경에 나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응축해놓은 것 같다. 나는 이 구절이 어디에 나오는지 법구경 역서를 살펴봤다. 내가 참조한 법구경 역서는 김달진의 《법구경》(김달진 전집 7, 문학동네), 법정 스님의 《진리의 말씀》(이레)과 한명숙의 《법구경》(홍익출판사)이다. 글자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읽어본 결과, 《법륜 스님의 행복》의 법구경 구절과 비슷한 것이 없었다. 이 구절이 법구경 어디에 나오는지 정말 궁금한데, 달랑 경전 이름만 써있으니 당황스럽다.

 

법구경의 번역본은 두 가지가 있다. 팔리어본과 산스크리트어본이 전해지는데,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역서는 팔리어본을 국역한 것과 한역본을 국역한 것으로 나뉜다. (팔리어는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에서 발달한 언어) 두 번역본에 차이가 있다. 팔리어본은 26품 423송(26장 423개의 문장이 있다고 보면 된다)으로 이루어졌고, 한역 법구경은 39품 752송이다. 그리고 글의 배열이 다르고, 원문 해석과 한문 해석을 비교하면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만 가지고 특정 역서가 오역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법구경이 널리 애송되면서 유포되는 과정 중에 각각 시대적 정서가 반영된 번역본들이 많이 나왔다. 또는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여 가필되면서 일부 문장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스님의 책에 있는 법구경 구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역서를 대조해가면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문장의 의미와 비슷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12품 애신품(愛身品)에 있는 문장으로 보인다. (김달진은 12품 제목을 ‘기신품’으로 옮겼다) 각각의 인용문들을 한 번 비교해보시라.

 

 

1) 《법륜 스님의 행복》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 《김달진 전집 7 : 법구경》 (김달진 번역, 188)

 

스스로 악을 행해 그 죄를 받고

스스로 선을 행해 그 복을 받는다

죄도 복도 내게 매였으니

누가 그것을 대신해 받으리

 

※ 원문 : 惡自受罪 善自受福 亦各須熟 彼不自代 習善得善 亦如種甛
(악자수죄 선자수복 역각수숙 피불자대 습선득선 역여종첨)

 


3) 《진리의 말씀》 (법정 스님 번역, 92쪽)

 

내가 악행을 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내가 선행을 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그러니 깨끗하고 더러움은 내게 달린 것
아무도 나를 깨끗하게 해줄 수 없다

 


4) 《법구경》 (한명숙 번역, 158쪽)

 

악행은 스스로 그 죄를 받고
선행은 스스로 그 복을 받는다.
그 열매는 지은 사람에게서 무르익으니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
선행을 하면 선의 열매를 얻으니
또한 달콤한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법륜 스님 책 인용문이 애신품에 있는 구절이 맞으면 원문의 배열을 무시하고 풀어쓴 것이 된다. 출판사는 책의 주제인 행복을 강조하려고 법구경 원문의 ‘善’을 행복으로 옮겨 썼다. 법구경은 부처의 말씀이다. 부처의 진리를 통달하더라도 개인적인 관점에 덧붙여 문장을 해석하면 독자가 경전을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善’을 행복의 동일어로 보는 해석이 과연 타당한 건지 의심이 든다. 법구경 공부가 많이 부족한 입장이라서 내 의견을 확실하게 표명하기가 어렵다. 출판사의 문장 해석이 미심쩍지만, 일단 눈 감아 주겠다. 하지만 문장 배열이 달라진 사실을 알리지 않고, 법구경을 인용한 점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법구경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는 문장의 출처를 의심하지 않은 채 ‘법구경에 나오는 문장’이라고 믿는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출처를 알려고 하지 않고, 원문을 변형한 법구경 구절을 열심히 인터넷에 공유한다. 법구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어이없어하면서 바라봤을 것이다.

 

법구경에는 우리 삶에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줄 좋은 문장이 많다. 그래서 문장 인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법구경은 아주 매력이 넘치는 텍스트다. 글 쓰는 식자들은 자신의 문장을 세련된 모습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안 읽는 법구경 같은 텍스트의 문장을 인용한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법구경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문장을 인용하는 건 자신을 속이는 일이며 자신의 무지함을 공개하는 것이다. 법구경 원문을 제멋대로 해석한 문장을 인터넷에서 수집해서 마치 법구경을 읽고 이해한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게 식자라는 호칭이 아깝다. 그들은 식자가 아니라 아는 척하는 무식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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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저는 이 표현에 반감이 드네요...
불행은 내가 만들지만
행복은 반드시 내 스스로 100%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좋은 사회 시스템이 덧대어서 행복을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끄적였슴돠..

cyrus 2016-03-14 08:19   좋아요 0 | URL
법구경의 문장은 한 번 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어떤 문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도 있어요.

어제 법구경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법륜스님이 인용한 문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행복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인용한 문장의 정체가 의심됩니다. 그런데도 스님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서평을 작성할 때 문제의 문장을 재인용하고 있어요. 법구경이 어떤 책인지 모른 채 좋은 말이라고 인용하고 있는 셈이죠.

양철나무꾼 2016-03-13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글씨 님이 쓰신 건줄 알고 반가워서 헐레벌떡 달려왔는데...법륜스님 필체란 말이죠?

오랜 수도 생활을 하신 스님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이해서 말이지요~!

고전을 공부하다 보면, 원본과는 전혀 달라서 출처를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순서가 바뀌거나 가감 정도는 애교로 봐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있던 차에 님의 문제제시 반갑습니다, 꾸벅~(__)

cyrus 2016-03-14 08:25   좋아요 0 | URL
진짜 스님이 쓴 건지 아니면 책을 만든 출판사가 문장을 넣은 건지 모르겠어요. 스님의 친필 사인이 있어서 일단 스님이 쓴 걸로 생각했어요.

법구경을 여러 번 훑어봤는데 스님의 책에 있는 문장이 없었습니다. 원문을 살짝 고쳤거나 아예 법구경에 없는 문장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구경은 `부처가 남긴 진리의 말씀`입니다. 번역자가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법구경 원래 의미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법구경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밝히면 되는데 달랑 경전 이름만 적혀 있어서 문장의 정체가 의심됩니다.

표맥(漂麥) 2016-03-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구경은 정말 권할만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종교에 걸림이 없는 분, 아니 걸림이 있어도 한번쯤 읽기를 권하는... 그런 느낌의 책 입니다...^^

cyrus 2016-03-14 08: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는 무교인데도 어렵고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는 경전을 좋아합니다. ^^

빨강앙마 2016-03-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정말 이해가 어려운 말들이 너무 많아서... 쉽진 않더라구요^^;;

cyrus 2016-03-16 1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경전을 읽다 보면 앞에 있는 문장과 뒤에 나온 문장이 서로 모순되는 것도 있어요. 한 번만에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법정 스님의 《진리의 말씀》은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문 해석과 약간 차이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