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수천 개 이상의 단어들을 기발하게 비틀어 정의했다. 가령 의사는 병으로 번창하고 건강으로 망하는 사람’, 병원은 의사의 의술과 관리자의 학대라는 두 가지 치료를 받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비어스는 책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거침없는 독설과 신랄한 야유를 늘어놓았다. 비어스가 새로 만든 단어사전의 제목은 <냉소주의자 단어집>. 우리나라에서는 악마의 사전으로 알려졌다.

 

바다에서 나는 굴을 비어스는 이렇게 정의했다. 문명사회에서도 내장을 빼내지 않고 그냥 통째로 먹는 미끈미끈한 조개. 그리고 이 굴 껍데기는 때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덧붙여 썼다. 언뜻 봐서는 단순하게 굴의 식용 방법을 설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용을 잘 읽어보면 비어스가 굴 하나로 빈곤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면서 귀한 음식재료로 대접받았다. 굴에는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다. 특히 남성호르몬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아연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굴 요리는 돈 많은 정력가가 많이 찾는 특별 보양식이었다. 카사노바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까지 여자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굴 또한 많이 사랑했다. 굴과 관련된 상식으로 카사노바의 굴 사랑은 너무나도 잘 알려졌다. 카사노바는 굴이 자연이 주는 합법적최음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카사노바는 신선한 굴을 먹는 것을 좋아했고, 하루에 굴 50개는 거뜬히 먹어치웠다고 한다. (미식가이자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역시 하루에 엄청난 양의 굴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굴이 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맞으나, 직접 성욕을 유발한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얀 스테인 굴을 먹는 소녀

 

 

굴이 연인들이 선호하는 음식재료로 알려지다 보니 굴 먹는 행위가 사랑의 유희를 떠올리는 음탕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테인의 굴을 먹는 소녀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정면을 응시한다. 그녀는 굴 속살을 먹으려는 중이다. 굴을 먹는 여자가 그려진 그림은 남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소재였다. 소녀가 굴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도 이제 알만큼 안다는 것을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은밀한 신호다. 이제 곧 어른의 세계에 접하려는 처녀의 도발이다. 소녀의 눈빛과 마주치면 앞으로 펼쳐지게 될 야릇한 애정 행각이 떠올리게 된다.

 

뽀얀 흰 빛깔의 굴 속살이 상류층 사람들의 입안으로 들어갈 때, 버려진 굴 껍데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다. 굴 껍데기는 상당히 딱딱하다. 가끔 생굴을 먹다가 아주 작은 굴 껍데기 조각이 입안에서 씹힐 때가 있다. 딱딱한 것을 씹을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면, 열심히 움직이던 입이 멈춰진다. 쌀밥을 먹다가 모래알을 씹을 때만큼이나 음식 맛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굴을 먹을 기회가 없다고 해서 딱딱한 굴 껍데기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굴을 먹는 방법을 몰라서 굴 껍데기까지 씹어 먹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굴 맛을 아는 부자들은 굴 껍데기를 먹으려는 빈자를 우습게 봤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은 굴 하나 때문에 비참한 상황으로 이르는 장면을 아주 실감 나게 묘사했다. 이 소설의 화자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런데 그 회상 장면이 너무 비참하고 암울하다. 화자가 아홉 살이었을 때,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가 구걸한다. 굶주린 어린 화자는 아사 직전 상태까지 갈 정도로 기력을 잃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화자는 주점 간판에 적힌 이라는 글자를 본다.

    

 

.....”

나는 간판에 쓰인 글자를 읽는다.

이상한 말이다! 이 땅에서 8년하고도 3개월을 살았건만 이런 낱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슨 뜻일까? 혹시 주점 주인의 성일까? 하지만 주인의 성을 쓴 간판은 보통 문 앞에 내걸지 벽에 걸지 않는다!

 

(<> 중에서, 12~13)

    

 

가난한 소년은 아빠에게 굴의 정체를 물어보고 나서야 굴이 음식재료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허기를 참고 있었던 소년은 굴이라는 단어를 듣고, 굴의 모습부터 굴이 들어간 음식들을 먹는 자신의 모습까지 상상한다. 황홀한 상상에 빠진 소년의 모습과 아버지가 추위에 몸을 웅크리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오는 체호프의 묘사가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연출한다. 소년의 가슴에는 굴을 먹고 싶은 열망이 솟아났다. 소년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굴을 달라고 구걸한다. 아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도 구걸에 동참한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굴을 먹을 줄 아느냐고 비웃는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소년을 주점으로 데리고 와서 굴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소년 앞에 굴 음식이 차려지고, 주점 손님들은 굴을 먹으려는 소년 주위로 몰려든다. 소년은 생소한 냄새를 풍기는 굴 음식을 맛보는데, 굴 껍데기마저 씹어 먹고 만다. 주점 손님들은 우스꽝스러운 소년의 모습에 박장대소하고, 소년을 바보라고 놀려댄다.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자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굴 하나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만드는 체호프의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 이상한 사람이야..... 병신이라고..... 그 사람들이 굴 값으로 10루블을 내는 걸 보고도 왜 다가서서 몇 루블만..... 빌려달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아마 빌려줬을 텐데.”

 

(<> 중에서, 16)

    

 

굴은 남자를 위한 맛 좋은 음식재료가 아니다. 원래 귀족의 힘이 컸던 시절에 굴은 지배 계급만 누릴 수 있는 값비싼 음식재료였다. 귀족 대접을 받으려면 특유의 비릿한 굴 맛과 굴을 먹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오늘날의 굴은 우리들의 밥 도둑이었지만, 과거에는 귀족들의 밥 도둑이었고, 최음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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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7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7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7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스타일 좋군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검토하는 방식.. ㅎㅎ. 악마의 사전도 저도 가지고 있는데 화장실에 배치했습니다. 화장실에서 톨스토이 전쟁과병화를 읽을 수는 없잖습니까. 굴 하면 말씀하셨다 시피 카사 형이죠... ㅎㅎㅎㅎㅎㅎ....

cyrus 2015-11-27 22:23   좋아요 0 | URL
굴의 정의를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체호프의 단편소설이 생각났어요. 소년이 굴 껍질 먹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거든요. ㅎㅎㅎ

보슬비 2015-11-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팀버튼의`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지금은 김장철이라 굴값이 많이 올라서... 빨리 김장철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ㅎㅎ

cyrus 2015-11-28 09:41   좋아요 0 | URL
김장배춧값도 올랐다죠? 굴이 들어있는 김치를 맛보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붉은돼지 2015-11-2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체흐프 `굴`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보다는 무척 짧은 소설이었다는 기억이...ㅜㅜ
보슬비님이 말씀하신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도 생각나요...옛날에 읽은 듯 안 읽은 듯 알듯말듯....^^

cyrus 2015-11-29 19:45   좋아요 0 | URL
네. 분량이 짧아서 그런지 줄거리와 주요 장면이 지금도 생각 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