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이야기 사전 - 식물이 더 좋아지는
찰스 스키너 지음, 윤태준 옮김 / 목수책방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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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지그시 눈을 감고 Scarborough Fair’를 들으면 파슬리는 알겠는데 세이지, 로즈마리, 세이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식물들이 모두 허브 계열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였다. ‘Scarborough Fair’는 원래 중세에 전해 내려오는 발라드를 편곡한 노래이다. 노래의 주인공인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려진 상태다. 노랫말을 보면 알겠지만, 남자는 옛 애인에게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을 요구한다. 바느질 자국 하나라도 남지 않은 셔츠를 만들어줄 것, 그 셔츠를 마른 우물에서 세탁을 할 것. 그녀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지면 재회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에 옛 애인이 남자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이 소원 또한 현실 불가능한 일이다. 두 사람은 노래 마지막에서 어려운 일이라도 시도해보라고 알린다. 그 일을 할 수 없으면 연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Scarborough Fair’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불가능한 일도 마다하지 않은, 용기 있는 연인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은 노래로 볼 수 있다. 노래에서 반복되는 후렴구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 가지 식물은 연인과의 재결합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사랑의 부적과 같다. 중세 사람들은 식물에서 영적인 힘을 찾으려고 했다. 세이지는 인내심을, 로즈마리는 정절, 타임은 용기를 상징하는 식물이다.

 

인간은 식물에 이름과 사연을 부여하면서 애정을 표현해왔다. 꽃말과 전설은 단지 아름답기 만한 꽃을 더욱 의미 있게 해주는 감미료다. 꽃말은 꽃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통해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암묵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특별한 언어다. 그 꽃이 그러한 뜻을 품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크게 보면, 계절과 식물적인 특성, 식물의 형상이나 전설 등에서 비롯한다. 꽃말은, 말하자면 압축파일이다. 풀어내기 전까지는 내용을 도통 알 수 없다. 그러나 파일을 풀면, 그 속에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옛날 유럽의 소녀들은 로즈마리로 자신의 미래를 점쳤다고 한다. 와인, 럼주, 진 등을 섞은 물에 로즈마리 잔가지를 적신 뒤, 가지를 가슴 속에 품은 채 물 세 모금을 마신다. 단, 이 행위를 하는 동안, 21세를 넘지 않은 두 명의 소녀가 그걸 지켜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 세 명의 소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한 침대에 잠을 청한다. 그러면 꿈속에서 미래의 장면이 나온다. 로즈마리는 신성한 의식이 거행될 때 많이 찾는 특별한 식물이었다. 로마인들은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거나 종교의식을 진행할 때 로즈마리로 화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로즈마리 향기가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즈마리를 무덤가 주변에 많이 심었다.

 

세이지의 전설은 슬픈 사랑 이야기다. 원래 세이지는 착한 마음씨를 지닌 요정이었다. 이 요정은 빈 참나무 속에 살았다. 그곳을 지나가던 왕이 요정을 바라보자마자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요정도 왕을 사랑했다. 하지만 요정이 인간을 사랑하는 일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요정은 불꽃같은 사랑의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도 요정은 왕의 진실한 고백을 거절할 수 없었다. 왕이 요정을 끌어안자, 요정은 왕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요정은 죽어서 꽃이 되었다. 요정은 인간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숙명을 알면서도 왕의 포옹을 받아들인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왕의 심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사랑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한다. 어려운 상황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 없으면 결정하기 힘든 선택이다.

 

꽃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물망초의 꽃말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모르고 있으면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옛날 독일 도나우 강의 섬에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연인에게 꺾어주기 위해 한 청년이 섬까지 헤엄쳐 갔다고 한다. 꽃을 꺾어 돌아오던 그는 그만 세찬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러자 청년은 연인에게 꽃을 던져 주고는 “나를 잊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사라진 애인을 생각하며 평생 그 꽃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청년의 슬픈 외침은 그 꽃의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물망초의 꽃말과 영문 이름이 ‘forget-me-not’이다.

 

인간만이 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움의 의식과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것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꽃은 침묵만 한 채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아가씨가 아니다. 봄이 되면 꽃봉오리 속에 간직한 이야기를 피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속삭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콘크리트 건물과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귀 기울인 적이 언제였던가. 예전에는 꽃말로 누군가에게 전하는 소소한 마음의 선물이었는데 세속의 욕심이 점점 커질수록 소중했던 기억들이 잊혀져만 간다.

 

 

 

 

 

※ 책에 대한 아쉬움 하나. 식물 전설 대부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되는 것이 많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언급할 때, 이름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 신과 로마 신은 동일한 인물이어도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글쓴이가 ‘그리스 신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면 신화에 생소한 독자들이 혼동할 수 있다. 다음 새 개의 문장은 《식물 이야기 사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플루토의 아내 프로세르피나는 남편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눈치 채고 질투에 사로잡혔다. (‘박하’ 편, 101쪽)

 

어느 날 지옥의 신 하데스프로세르피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 납치해서 지옥으로 데리고 가 버렸다. (‘석류’ 편, 136쪽)

 

명계의 신 플루토는 수선화를 이용해서 페르세포네를 지옥으로 유인했다. (‘수선화’ 편, 148쪽)

 

 

지옥의 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 로마 신화에서는 플루토라고 불린다.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그리스식 이름이며 프로세르피나는 로마식 이름이다. 136쪽에서는 프로세르피나라고 부르다가, 148쪽에서는 다시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보통 유럽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신화’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신들의 명칭을 표기하면 그리스식으로 쓰는 것이 낫다. 특별하게 로마식 이름을 쓰고 싶으면, 그 이름 옆에 괄호로 그리스식 이름을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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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11-2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재밌겠네요!! 킵킵! 물망초.. 저는 잘 몰랐는데.. 낯설진 않은게 그런 식의 이야기가 참 많았나봐요

cyrus 2015-11-24 11:32   좋아요 2 | URL
이 책을 만든 목수책방이 1인 출판사입니다. 생태 관련 책을 몇 권 펴냈습니다. <식물 이야기 사전>은 식물의 오래된 전설을 소개한 책입니다. 몇 몇 이야기를 제외하면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yureka01 2015-12-1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리뷰 전에 읽었을때도 느낌 좋다 생각했었는데 ㅎㅎ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