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데일리’, ‘미래한국’, ‘미디어펜’ 등과 같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언론을 들여다보면 종종 놀랄 만한 글을 보게 된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이 언론의 이름만 언급해도 ‘꼴통 보수’들이 좋아할 만한 언론을 봐서 뭐하냐는 의미로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아예 이쪽 언론에 나오는 기사를 안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쪽 사람들 생각이 싫다고 해서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저절로 달라질까? 올바른 자유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면 ‘자유’를 오용하는 자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잘못된 점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황순원, 최인훈, 신경림... 헬조선 조장하는 문학교과서] 미디어펜, 2015년 9월 26일

 

 

다음 링크로 소개된 기사는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6일에 처음 게재되었다. 미디어펜을 구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내용의 기사를 잘 모를 것이다. 기사를 한 번 읽어보시라. 어이가 없을 것이다. 기사 읽기가 귀찮은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모 역사교육연구소 대표라는 사람이 몇몇 문학교과서 속 작품들이 학생들에게 시장경제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작품을 읽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은 문학교과서도 ‘좌편향’으로 치우쳤으니 다시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구소 대표가 의심하는 작가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총 9편의 작품인데 여기서는 5편만 소개하겠다.

 

 

1.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연패를 거듭하는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팀이 가장 아름다운 야구팀으로 설정한 내용은 ‘경쟁’이 주는 풍요로운 장점을 배제한 채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견해와 비슷하다.

 

2. 최인훈 《광장》

남한을 게으르고 방탕한 곳으로 묘사된 부분은 학생들에게 남한이 북한과 같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3. 신경림의 시 《농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농촌이 피폐해지는 상황을 묘사한 시가 산업화 과정을 왜곡할 수 있다.

 

4. 김정한 《모래톱 이야기》

1960년대 낙동강 유역의 조마이 섬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나오는 갈밭새 영감은 섬을 지키기 위해 섬을 차지하려는 국회의원의 앞잡이를 물속에 빠뜨려 살인죄라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간다. 섬을 지키기 위해서 저지르는 살인 행위를 정당화될 수 없다. 약자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살인을 저질러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 수 있다.

 

5.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

작품에 나오는 촌장은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말로 이리떼가 나타난다고 말하는 파수꾼 ‘가’의 행동을 눈감아준다. 남북한의 군사 대치를 이용하여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력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안보를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잘못 해석할 수 있다.

 

 

문학교과서마저도 이념 논쟁에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교과서 논란이 많이 알려진 탓에 문학교과서 문제는 언론의 수면 위로 잘 떠오르지 않는 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사람은 보수주의자들이 문학교과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실을 잘 모른다. 역사교과서 논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금도 보수주의자들은 사회, 경제, 윤리 과목 교과서에 드러난 좌편향 시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무관심만으로 일관한다고 해서 교과서 이념 논쟁이 생길 거라는 보장은 없다.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과 대립이 장기화될수록 교과서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는 일이 지속될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역사교과서가 정식으로 국정화된다면 보수주의자들이 노리는 다음 타깃은 문학교과서로 향할 수 있다.

 

 

 

 

 

 

 

 

 

 

 

 

 

 

 

 

 

 

 

 

 

만약에 문학교과서가 역사교과서처럼 국정화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먼저 시장경제 또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을 비판하는 입장이 있는 작품이 교과서에 삭제된다. 미디어펜 기사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교과서 퇴출 작품 일 순위에 가깝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하니 줄거리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1979년에 나온 작품이 지금도 나올 정도로 스테디셀러로서 그 위엄을 떨치고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이 소설이 마음에 안 들 것이다. 그다음으로 교과서에 퇴출당할 수 있는 작품은 일제 강점기 때 활동했던 사회주의 문학 작가들이 쓴 것이다. 최서해의 단편소설 《탈출기》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작이다. 신경향파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사회주의 경향의 문학쯤으로 보면 된다. 낭만주의 문학을 거부하고, 사회주의 이념을 지향하여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는 의식을 드러낸다. 《탈출기》의 주인공은 궁핍한 삶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떠나 간도로 향하지만, 역시나 현실은 더욱 암울하기만 하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가난에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궁핍의 원인을 부조리한 현실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표출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노오오오력’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에 불평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경제 상황은 지금과 너무나도 많이 달라서 ‘헬조선’과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작가가 사회주의 계열이라고 해서 교과서에 퇴출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습다. 과거에 월북 작가들의 작품을 금지했던 시절이 있었고,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여당의 태도를 봐서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또 한 번 일어날 수 있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라는 유행어가 있다. 특정 대상을 희화화한 개그였을 뿐인데, 그 대상을 비하하고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보수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문학작품을 심각하게 읽는다. 사회 현실에 일어날 수 있는 잘못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을 보면 꼭 마치 ‘죽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심정인 것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당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그 사람’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 완벽한 신이란 말인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기실 완벽하지 못하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왜 자꾸 손바닥으로 세상의 그늘을 가리려고 하는가. 사회현실의 문제점을 묘사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들의 행태는 자유주의의 원칙에 어울리지 않는다.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이념의 색안경으로 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폴 오스터의 말을 알려주고 싶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따라서 (그 용어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소설은 거짓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씁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에서,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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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0-0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기는 일이지.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예전에 박통 때와 전통 때 가요 금지곡이 있었잖아.
근데 그게 알고보면 웃기는 게 많았지.
오죽하면 전두환 닮은 연예인은 출연도 못했잖아.
뭐 그 보단 거대담론격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진영논리에 빠져 자유롭지가 못한 것을 반증하는 꼴이지.
울나라가 하는 짓이 이래. 쩝

cyrus 2015-10-02 23:37   좋아요 0 | URL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는 일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 몰라요.

yamoo 2015-10-0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엔날에는 문학 교과서도 국정교과서였슴돠~ㅎ

모 역사연구소에 있는 넘들은 무뇌아인가 보죠..ㅋㅋ
근거가 금서를 지정하는 국방부나 교황청의 논리와 비슷해 보입니다..ㅎ

제 생각에는 저런 작품들이 아주아주 많이 읽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그럼요~ㅎ

cyrus 2015-10-02 23:3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이 고마워요. 덕분에 이런 좋은 문학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

페크pek0501 2015-10-0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쪽 다 읽어 봐야 한다는 점에서 금서란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양쪽 다 읽어 봐야 시각의 균형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이쪽에서도 볼 수 있고 저쪽에서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세상 같은 것.
뭔가를 억압하거나 통제하려고 들지 않는 세상 같은 것.
선택권을 스스로 갖게 하는 세상 같은 것.

정치 세력에 따라 금서가 바뀌기도 하니 웃어야 할까요?

cyrus 2015-10-07 18:52   좋아요 0 | URL
금서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득권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금서목록을 만들어요. 그러다가 기득권자의 얼굴이 달라지면 금서목록도 변경되죠. 금서목록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당시 시대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