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Chagrin’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슬픔’, 또 다른 하나가 ‘표면이 오돌토돌한 가죽’이다. 발자크의 소설 『Le Peau de Chagrin』를 처음으로 번역한 역자는 제목을 ‘나귀 가죽’으로 정했다. 라루스 대백과사전에는 ‘Chagrin’를 ‘양, 염소, 나귀 등에서 얻어지는 표면이 오돌토돌한 가죽’이라고 정의한다. 작품에는 정체불명의 가죽을 나귀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가죽이 점점 줄어들수록 주인공의 목숨도 줄어든다.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는 자신의 상황에 절망을 느끼는데, 작품 제목의 ‘Chagrin’은 '가죽'과 '슬픔',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Le Peau de Chagrin』은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제목이다. 『Le Peau de Chagrin』이 번역되지 않았을 때, 이 소설 제목을 제각각 다르게 불렀다. 다음에 나오는 두 개의 인용 문장은 알라디너 하이드님의 글에서 참고했다.

 

 

프로이트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하던 일을 계속했다. 즉 언제나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발자크의 『들나귀 가죽』이었다. 그는 “이 책이야말로 내게 정말 필요한 책이야”라고 말했다.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 중에서)

 

해즐릿은 자신이 “클랜골른의 여관에서 셰리주 한 병과 식은 닭 요리를 앞에 두고 『신 엘로이즈』를 들고 앉아 있던” 날이 1798년 4월 10일이었다는 사실을 줄곧 기억했다. 롱펠로 교수가 대학에서 훌륭한 프랑스어 문체를 훈련하는 방법으로 발자크의 『상어 가죽』을 읽으라고 조언했던 것을 내가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 《독서의 즐거움》 중에서)

 

 

《나귀 가죽》을 읽은 독자라면 ‘상어 가죽’, ‘들나귀 가죽’이라는 표현이 무척 생소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두 가지 명칭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Chagrin’은  ‘상어 가죽’ 을 의미하는 영단어 'Shagreen'의 의미와 같다. 학술 논문 전문 웹사이트에 ‘상어 가죽’, ‘들나귀 가죽’을 검색하면 불문학 전공자들이 쓴 『Le Peau de Chagrin』에 관한 논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1969년에 쓴 논문에 『Le Peau de Chagrin』을 ‘상어 가죽’ 으로 썼다. 『Le Peau de Chagrin』의 제목을 ‘마법 가죽’으로 쓰기도 하는데 제목만 언급되는 책 속에서 이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최초의 진정한 소설인 〈마법 가죽〉에서 발자크는 자신의 형식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여기서 그는 장래의 목적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중에서, 178쪽)

 

발자크는 《마법 가죽》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파,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중에서, 438쪽)

 

철학적 연구에 속하는 『마법 가죽』 (1831) 에서는 발자크의 신비주의를 엿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구체성을 성취하고자 하는 발자크의 열정이 비현실적으로 구현된다. (대니얼 J. 부어스틴, 《창조자들》 중에서, 226쪽)

 

 

그밖에도 ‘도톨 가죽’, ‘야생 당나귀 가죽’으로 표현한 책도 있다.

 

 

거기에서 (< 도톨가죽>에서 발자크의 표현으로) 고객들은 몇 시간 만에 파산하고 ( 인근 총 제조업자의 도움으로) 자살하고, 쉬지 않고 이어지는 파티에 출석한 평복사제의 도움으로 더 좋은 세계로 갔다. (앨리스테어 혼, 《나폴레옹의 시대》 중에서, 113쪽)

 

같은 맥락에서 발자크의 소설 《야생 당나귀 가죽 Wild Ass’ Skin》 도 이상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A.J. 제이콥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중에서, 198쪽)

 

 


《시간 추적자들》(하랄트 바인리히, 황소자리, 2008)는 『Le Peau de Chagrin』의 명칭이 통일되지 않은 채 언급된다. 처음에는 ‘샤그랭 가죽’이라고 했다가, 그다음 쪽에서는 ‘야생 나귀 가죽’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책의 주석에는 소설 제목을 ‘우툴두툴한 가죽’이라고 썼다.

 

 

이 최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샤그랭가죽이 모두 소진되고 이와 함께 그의 인생 시간도 남김없이 소진돼버렸다. 괴테의 극작품과 유사하게 발자크의 소설도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최고의 순간에 대한 의식(혹은 환상) 이 이루어지면서 끝을 맺는다. (하랄트 바인리히, 《시간 추적자들》 중에서, 88쪽)

 

이 주제를 마무리하면서 주인공이 야생 나귀 가죽을 샀던 골동품상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보자. (하랄트 바인리히, 《시간 추적자들》 중에서, 89쪽)

 

 

조금 특이한 사례이지만, 《공포문학의 매혹》 (H.P. 러브크래프트, 북스피어, 2012)의 역자는 '거친 엉덩이 피부'라고 썼다. 처음에는 역자의 단어 선택에 의아했는데, 하이드님의  댓글 답변 덕분에 궁금중이 해소되었다. 상어, 나귀의 엉덩이 부위에 있는 가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기괴한 작품들을 독일 못지않게 활발히 배출했다. 『아이슬란드의 한스』를 쓴 빅토르 위고와 『거친 엉덩이 피부 Le Peau de Chagrin』, 『세라피타』, 『루이 랑베르』를 쓴 발자크는 자연적 요소를 다소간 활용했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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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5-09-0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번역이란게 정말 어렵(?)군요...^^

cyrus 2015-09-02 17:59   좋아요 0 | URL
외국 서적을 만들 때 편집자들의 노고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바로 번역자일 겁니다. 독자가 번역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번역자는 그에 대한 비난을 감수 받아야 하니까요. ^^

yamoo 2015-09-01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이 써주신 발자크 페이퍼 보고 <나귀가죽> 샀어요!
정말 재밌을 것만 같은 기대감 만빵입니다~ 줄거리만 살짝 봤는데도 기대감이 업~ㅎㅎ
발자크가 문장을 지루하게 쓴다는 소리가 진짜인지 좀 확인도 해 볼겸...겸사겸사^^

재밌고 인상적이라면 사이러스님께 추천 10개를 날려 드릴게욤^^

cyrus 2015-09-02 18:02   좋아요 0 | URL
<나귀 가죽>이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이 읽어봐도 좋은 발자크의 작품입니다. 소설에 대한 야무님의 감상이 기대됩니다. ^^

:Dora 2015-09-02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엔 스탕달 시리즈로 올려주실거죠?ㅎ

cyrus 2015-09-02 18:03   좋아요 0 | URL
발자크의 소설을 다 읽으면 ‘스탕달-빅토르 위고-플로베르-모파상-에밀 졸라’ 순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