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퀴즈. 두 사람 중에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누구일까?

 

 

A: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정말 대단한 소설이에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 이야기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긴 조이스의 치밀한 이야기 구성에 감탄했어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더블린의 레오폴드 블룸의 동선과 평행하게 놓고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오뒷세이아》를 먼저 읽어보시면 《율리시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B: 이봐요, A씨! 당신은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것 같군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 읽는다고 해서 《율리시스》를 이해할 수 없어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어야 해요. 스티븐 디덜러스는 햄릿형 인간이니까요.  

 

 

 

 

 

 

 

 

 

 

 

 

 

 

 

 

 

 

 

아마도 이 글을 읽은 사람 중 대다수는 A를 선택했을 것이다. 《율리시스》를 한 번도 안 읽은 사람도 이 소설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모델로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으니까. A씨는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도 될 수 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겠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 《율리시스》를 읽지 않아도 누구나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찾은 《율리시스》의 작품 해설을 그럴싸하게 있게 말하면 된다.

 

그렇다면 B는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었을까? 《율리시스》가 《오뒷세이아》를 모티프로 만든 소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B의 의견을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그래서《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으로 A를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B도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디덜러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햄릿과 동등하게 인식하고 있다. 《햄릿》의 줄거리를 안다면 《율리시스》 9장 '스킬라와 카립디스' 편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스킬라와 카립디스'의 무대는 더블린 국립도서관이다. 여기서 디덜러스는 평론가인 존 이글링턴, 시인 조지 러셀(A.E), 도서관 관장 리스터와 함께 셰익스피어에 관한 토론에 참여한다. 스티븐은 《햄릿》을 포함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토대로 독특한 의견을 내세운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죽은 아들 햄넷, 독살당한 부왕은 셰익스피어,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는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 해서웨이를 의미하는데 앤이 셰익스피어의 동생 리처드와 간통했을 거로 추정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앤의 관계에 대해서도 재조명한다. 스티븐은 여덟 살 연상의 앤이 20살 되지 않은 숫총각 셰익스피어를 유혹하여 강제로 접근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정체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며 《소네트집》에 나오는 흑부인의 정체까지 증명한다. 그러나 존 이글링턴과 조지 러셀은 스티븐의 셰익스피어론을 동의하지 않는다.

 

'스킬라와 카립디스'가 셰익스피어를 위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되거나 언급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만 해도 스무 편 이상이나 된다. 《율리시스》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햄릿》이다. 현재 《율리시스》를 9장까지 읽은 상황인데 《율리시스》에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지금까지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몇 편이냐 있는지 한 번 세어보시라.

 

 

* 《베로나의 두 신사》
* 《말괄량이 길들이기》
* 《리처드 3세》
* 《실수연발》(전예원) / 《헷갈려 코미디》(아침이슬)
* 《사랑의 헛수고》
* 《리처드 2세》
* 《로미오와 줄리엣》
* 《한여름 밤의 꿈》
* 《존 왕》
* 《베니스의 상인》
* 《헨리 4세》
*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 《헨리 5세》
* 《줄리어스 씨저》
* 《뜻대로 하세요》(전예원) / 《좋을 대로 하시든지》(아침이슬)
* 《십이야》
*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 《자에는 자로》(지만지)
* 《오셀로》
* 《리어 왕》
* 《맥베스》
*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 《페리클리스》/ 《타이어의 공작 페리클리스》
* 《코리올라누스》
* 《겨울 이야기》
* 《심벨린》
* 《템페스트》/ 《폭풍우》
* 《헨리 8세》
* 《비너스와 아도니스》(서사시)
* 《루크리스의 능욕》(서사시)
* 《소네트집》

 

 

※ 괄호명은 출판사명, 작품은 발표 연대순으로 나열함.

 

 

'스킬라와 카립디스'를 집필하기 위해 조이스는 총 31편이나 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언급했다. 기억력이 비상해서 줄거리도 거의 다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스킬라와 카립디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 전집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세계문학사의 최고봉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그의 생애에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늘 셰익스피어를 언급할 때 항상 따라오는 것이 그의 정체에 관한 논란이다. 아시다시피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만들어 낸 가공 작가라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집필했던 20세기 초에도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실제로 '스킬라와 카립디스'에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추정한 여러 비평가의 의견이 언급된다. 델리어 베이컨이라는 미국의 여류 소설가는 자신을 베이컨의 후손이라고 밝히면서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는 설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미국의 수필가인 이그너티우스 도넬리는 베이컨의 편지 속에 있는 암호 문구를 해석하여 델리어 베이컨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학계는 두 사람의 의견을 동의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베이컨 가설'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이스는 '스킬라와 카립디스'를 통해 셰익스피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더 나아가서 셰익스피어의 정체와 수수께끼 같은 생애에 대해서 과감한 주장을 선보인다. 그래서 《율리시스》 9장은 앞 이야기보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특히 열띤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스티븐의 친구이자 원수 같은 존재인 벅 멀리건이 갑자기 등장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고 9장을 읽게 된다면, 독자는 흥미진진한 토론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셰익스피어 학회 토론이 될 수 있다. 또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을 《율리시스》 안에 담아낸 조이스의 천재성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디 가서 《율리시스》를 읽은 척하고 싶으면 이제부터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를 함께 언급하면 된다. 그나저나 《율리시스》 때문에 셰익스피어 작품도 읽어야 하다니. 거 조이스 형님,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 Re) 조이스 // 갈 땐 가더라도 셰익스피어 하나쯤은 읽어도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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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p 2015-05-2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언급하신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대로 읽은 것은 채 여덟권 뿐이네요. 여기저기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만만치 않은 책이라는 새각이 들어 <율리시스>읽기는 먼 훗날로 미뤄놓고만 있습니다..

cyrus 2015-05-24 20:23   좋아요 0 | URL
저보다 많이 읽으셨는데요. 저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만 읽었습니다. ㅎㅎㅎ

연어덮밥 2015-05-2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이 재미있네요. 사놓고 쟁여놓고 감히 읽을 엄두를 못냈는데.. 용기를 내보게 하네요 :)

cyrus 2015-05-24 20:27   좋아요 1 | URL
인내심이 많다면 <율리시스> 읽기를 도전하셔도 좋습니다. ^^

2015-05-24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4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5-2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뒷세우스를 읽으면서 조이스의 율리시스랑 니진스키의 오디세우스를 생각했어요.... 읽어야 하나... 그냥 모르고 있을걸~~ ㅎㅎ

저는 b를 골랐어요.
세익스피어는 세보니까 13편 읽은것 같은데 제목이 낯선것도 있어 잘 모르겠어요~

cyrus 2015-05-26 22:38   좋아요 0 | URL
오뒷세우스를 율리시스와 같이 읽으면 좋은데 두 권 다 완독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햄릿을 읽을 수 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