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죽이는 책》(존 코널리 외, 책세상, 2015)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품 121편을 선별했고, 여기에 디저트로 비평문까지 곁들였으니 미스터리 마니아를 위한 특별한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미스터리 문학 계보에 가까운 작품 목록, 800쪽이 넘는 쪽수. 아주 그냥 죽여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책세상 출판사에서 《죽이는 책》과 유사한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책세상, 2005)은 《죽이는 책》 공포 문학(호러 문학)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포 문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고딕 소설부터 현대 공포 소설에 이르기까지 100명의 작가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10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기존에 나온 공포 문학 앤솔로지를 모조리 합쳐 놓은 듯한 작품 수와 분량은 《죽이는 책》과 같이 책장에 꽂으면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터라 일부 작품은 다른 공포 문학 앤솔로지에 여러 번 소개되었지만, 읽을 만한 가치는 있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에서만 볼 수 있는 국내 초역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죽이는 책》 열풍과 비교하면 《세계 호러단편 100선》에 아쉬운 점이 너무나도 많다. 일단 클랙식컬한 공포 문학은 독자들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공포’와 문학에서 언급하는 ‘공포’의 의미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문자보다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존재들이 이야기에 나오더라도 독자의 반응을 이끌기가 어렵다. 특히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독자는 유령 이야기에 콧방귀를 뀐다. 그러므로 작가는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문학적 수사를 동원한다. 애초에 독자가 공포 분위기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낯선 상황의 사건을 전개하여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수준 높은 반전을 구사한다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이것이 공포문학 읽기의 묘미다.

 

그런데 영화와 같은 영상물이 발달하면서 대중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주는 공포에 익숙해졌다. 신체를 잔인하게 훼손하여 온몸에 붉은 피를 묻히고 다니는 살인마나 괴물, 외계 생명체가 공포물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들의 존재감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 특수효과도 날로 향상되고 있다. 대중은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하는 공포에 압도된다. 공포 문학은 공포 영화처럼 섬뜩하고 잔인한 장면에 치중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공포 문학이다. 고전이 되어버린 공포 문학은 요즘 나오는 공포 영화를 따라오지 못한다. 고딕 소설과 공포 문학이 유행했던 19세기 중반에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엄청난 인기였지만, 지금은 그때의 감동을 재현할 수 없다. 드라큘라라는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벌벌 떠는 사람은 없다. 만약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드라큘라가 <노스페라투>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에 나온 거라면 여전히 공포물에 대한 애정과 선호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행에 뒤처진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처럼 인간 친화적(?)인 드라큘라가 대세다.

 

 

 

 Bad scene #1 독서를 방해하는 잘못된 번역

 

《세계 호러단편 100선》의 또 다른 단점이라면 독서의 맥을 끊어버리는 번역이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음울한 분위기 연출이 공포 소설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살려서 제2 언어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은 난해한 문장 그리고 원문을 무시하는 번역은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O. 헨리의 단편소설 「The Furnished Room」‘가구 딸린 셋방’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야기가 시작하면서부터 어색한 문장이 눈에 밟힌다.

 

그들은 '집, 아득한 집'을 노래했다. 상자 속에 가정의 수호신을 집어넣고, 화초는 모자와 뒤엉키고, 고무나무를 무화과나무 삼아서. (《세계 호러단편 100선》의 「가구 딸린 방」 중에서, 34~35쪽)

 

상자 속에 넣는 ‘가정의 수호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문장은 이야기 전개에 전혀 상관은 없지만,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것인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다. 이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They sing "Home, Sweet Home" in ragtime; they carry their lares et penates in a bandbox; their vine is entwined about a picture hat; a rubber plant is their fig tree.

 

직역하면 가정의 수호신으로 해석하는 ares et penates는 로마의 고대신화에 나오는 집의 신 라레스와 페나테스에서 유래한 단어다. 가정에서 소중히 여기는 물건으로 의미하기도 한다. 그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문제다. 모자는 왜 화초에 뒤엉켜 있는 것인가? vine은 덩굴 식물 과인 포도나무를 뜻한다. 만약에 ‘포도나무’로 번역했다면 독자는 나무 덩굴줄기에 모자가 뒤엉키는 장면이 연상될 수 있다. 역자 정진영 씨는 왜 포도나무 대신에 화초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나머지 문장마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문제의 문장을 다른 역자는 어떻게 옮겼는지 궁금해서 김욱동 교수가 번역한 《오 헨리 단편선》(비채, 2012)을 참고, 비교했다. 김욱동 교수는 직역과 의역을 섞었는데 정진영 씨가 번역한 문장보다 한결 이해하기 쉽다.

 

그들은 <즐거운 나의 집>을 재즈 가락으로 부른다. 가정의 수호신을 종이 상자 속에 넣어 모시고 다니는가 하면, 그들에게는 챙 넓은 모자에 꽂혀 있는 담쟁이덩굴이 벽의 담쟁이요, 화분에 심은 고무나무가 곧 무화과나무 정원수와 다름없다. (《오 헨리 단편선》의 「가구 딸린 셋방」 중에서, 197쪽)

 

가구 딸린 셋방을 묘사하는 문장에서도 역자가 실수한 번역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가구 딸린 방의 불그스름하고 초라한 빛은 마치 창녀의 꾸민 웃음처럼 새 손님을 반기고 있었다. 퇴색한 가구, 조잡한 무늬의 천으로 감싸인 한 개의 소파와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창문 사이에 있는 폭 삼십 미터 정도의 거울, 한두 개의 금박 입힌 액자 그림과 한쪽 구석의 철제 침대에서 복잡 미묘한 아늑함이 불빛에 빛났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의 「가구 딸린 방」 중에서, 37쪽)

 

보통 건물 한 층 당 2.5m라면 30m은 12층 건물의 높이에 가깝다. 좁은 셋방에 30m의 거울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줄을 친 부분이 창문 사이에 있는 거울을 언급하는 원문이다.

 

The furnished room received its latest guest with a first glow of pseudo-hospitality, a hectic, haggard, perfunctory welcome like the specious smile of a demirep. The sophistical comfort came in reflected gleams from the decayed furniture, the ragged brocade upholstery of a couch and two chairs, a foot-wide cheap pier glass between the two windows, from one or two gilt picture frames and a brass bedstead in a corner.

 

foot는 단위 feet(피트)와 동등하게 사용한다. 1피트는 한 걸음 너비로 약 30cm로 환산한다. 역자는 ‘삼십 센티미터’라고 써야 할 것을 실수로 ‘삼십 미터’로 쓰고 말았다. 

 

 


 Bad scene #2 웰스의 소설 제목이 ‘솔방울’(The Cone)?

 

 

 

 

 

 

 

 

 

 

 

 

 

 

 

 

《세계 호러단편 100선》는 작품이 시작되는 장에 간략하게 작가를 소개하는 내용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100번째 작품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붉은 방」이다. 그런데 역자는 웰스의 다른 작품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The Cone」‘솔방울’이라고 쓰는 오류를 범했다. Cone이 솔방울을 의미하는 건 맞으나 실제 내용에서는 솔방울 한 개도 등장하지 않는다. 「The Cone」이 웰스의 생소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역자는 이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제목을 직역해서 옮겼을 것이다. 내용상 ‘원뿔’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The Cone」은 웰스의 단편선집 《허버트 조지 웰스》(현대문학, 2014)에 수록되어 있다.

 

 

 

 Bad scene #3 ‘그레이스 여신’은 누구인가?

 

애너 리티셔 에이킨의 미완성 고딕소설 「버트런드 경」에 나오는 문장의 일부이다. 아마도 그리스 신화를 아는 독자라면 ‘그레이스 여신’의 정체가 무척 궁금할 것이다.

 

달콤한 음악 소리에 맞추어 문이 열리더니, 눈부신 광채와 그레이스 여신(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명의 미의 여신 중 하나-옮긴이주)보다 아름다운 요정들에 둘러싸인 절세미녀가 등장했다. (118쪽)

 

그리스 신화의 삼미신(三美神)은 헤라, 아테네, 아프로티테다. 역자는 그레이스 여신이 삼미신 중의 한 명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버트런드 경」의 원문을 찾을 수 없어서 확인하지 않았지만, 역자는 The Three Graces를 삼미신 중 하나로 잘못 소개한 듯으로 보인다. 

 

 

 


 Bad scene #4 책 속에 있는 엉뚱한 삽화

 

 

 

 

 

《세계 호러단편 100선》을 읽다 보면 간혹 유령이나 악마와 같은 그로테스크한 사람의 모습이나 어두컴컴한 풍경이 그려진 삽화가 나오곤 한다. 공포 소설 읽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유령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삽입한 것 같은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다. 게다가 작품과 전혀 관련 없는 그림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한 티가 역력하다.

 

 

 

 

 

 

 

 

 

 

 

 

 

 

 

 

크리스토퍼 블레이어의 「냄새나는 것」 279쪽과 아미야스 스노콧의 「故 포크 부인」 732쪽에 있는 그림은 시드니 사임이라는 삽화가가 그린 것이며 로드 던세이니의 판타지 소설 《페가나의 신들》(전 2권, 페가나북스, 2011)에 실려 있다. 페가나에 거주하는 신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윌리엄 호프 호지슨의 「폭풍우 속에서」 526쪽의 삽화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단테의 《신곡》 삽화를 맡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것이다. 돛 기둥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이 그려진 삽화는 에드거 앨런 포《아서 고든 핌의 모험》(황금가지, 2002 / 절판)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림의 출처를 따로 밟히지 않아서 독자는 도레의 삽화가 호지슨의 작품과 연관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삽화의 출처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새뮤얼 콜리지의 시 《노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다.

 

《세계 호러단편 100선》을 이틀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순서로 나온 「가구 딸린 방 」 번역 문제에 매달린다고 야심한 밤에 한 시간을 낭비했다.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초반부터 독서의 흥미가 확 떨어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100쪽 넘게 읽었지만, 아직 읽어야 할 작품이 많이 남았다. 더 이상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면 《세계 호러단편 100선》은 많지 않은 독서 시간을 죽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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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07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 가끔 번역 이상하면 책읽기 힘들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조목조목 일목요연하게 말씀하시니 시원한 느낌이..ㅋㅡㅋ

cyrus 2015-03-07 22:20   좋아요 0 | URL
제가 번역에 왈가왈부해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역자의 수준이 의심되는 문장을 발견하면 약간 놀라게 됩니다.. ^^;;

돌궐 2015-03-0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레비에서 여자귀신 튀어나오는 말초적인 공포영화 이후로 다 그렇고 그런 시각적 공포에 치중하는 영화가 많이 나온 거 같아요. 그게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긴 해도 좀 식상해진 면이 있죠. 전 그런 영화들이 왜 그렇게 웃기던지.. ^^;;
뭔가 지적인, 이를테면 플롯 자체가 주는 원초적 공포 같은 걸 작품에서 보고 싶어요.

cyrus 2015-03-07 22: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돌궐님이 보고 싶은 공포물이라면 히치콕의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