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일이다. 역사책을 읽을 것 같으면 기쁨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곳이 또한 즐거운 곳이다. (장조 『유몽영』중에서, 정민 『마음을 비우는 지혜』에서 인용, 181쪽)

 

 

오늘의 정치는 내일의 역사가 되고, 어제의 역사는 오늘의 정치를 지배한다. 요즘에는 이 말을 특히 실감한다. 내일의 역사를 자기편으로 서술하기 위한 정치싸움은 진행 중이다. 한쪽에선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60년 만에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라고 외친다. 나아가 이런 대한민국이 어찌 반쪽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대한민국 그 자체를 무(無)에서 창조한 기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단독정부 수립으로 분단을 고착화하며 태어난 대한민국이 태생적으로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국가이며, 38선 혹은 휴전선으로 갈라진 그 나머지 반쪽인 북한과 '민족통일'을 이루기 전에는 어떠한 경제적 성공도 완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 개의 마주할 수 없는 극단적 시각이 엄존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양극단 사이에는 회색지대와도 같은 무수한 시각이 존재한다.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한 이런 시각은 비단 건국뿐만 아니라 한국근현대사 곳곳에서 충돌한다. ‘분단’의 시각에 선 쪽에서는 김구를 추앙하는 데 비해, ‘건국’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이승만을 ‘국부’로 간주한다. 전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태어나서는 안 될 ‘절대악의 축’이지만, 후자에겐 ‘허리띠를 졸라매며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산업화를 이룬 위대한 지도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대립은 급기야 대한민국 그 자체의 정통성 시비를 불러 일으켜, 그것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민국사를 ‘뒤틀린 역사’로 간주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이승만 정부가 친일인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친일파 청산으로 대표되는 과거사 청산 운동이 거세게 분 것도 이런 대한민국 건국관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독사신론』에서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없는 민족을 낳으며, 정신없는 국가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오,”라고 하여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고교 역사교과서 파동은 다수의 국민에게 심각한 우려의 눈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본질은 현재 역사학계의 편향적이고, 왜곡적인 역사시각을 감히 나서서 자정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역사기술을 통해 왜곡집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고 할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유관순을 고교역사교과서에서 의도적으로 ‘실종’된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은 기가 막힌 역사학계의 수치다.

 

더욱이 문제투성이 역사교과서를 고등학생들이 읽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안 생길 수가 없다. 청소년 역사의식을 혼돈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 역사 교육은 미래를 이끌어 나갈 학생들에게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 내용에서 단어나 문구를 가지고 역사학계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다투는 일이 벌어졌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 가운데서도 현대사는 가장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킨다.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와 달리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피해자 또는 수혜자 등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정치에 참여했던 이가 펴낸 현대사라면 논쟁은 더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 프롤로그에서 역사는 본질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역사 서술에서 핵심인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은 주관적 기록이 된다. 한마디로 책은 굵직한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나열했다기보다 그 속에 이와 관련된 저자의 일상 체험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문제투성이 역사교과서처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비록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아울러 삶의 기본적 욕구조차 해결할 수 없게 만든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실려 있지만, 그 속에 오랜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국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기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인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을 통해 한국현대사 55년을 분석한다. 욕구단계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욕망이다. 인간은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하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생리적인 욕구 단계부터 출발하여 존경에 대한 욕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에까지 갈망하게 된다. 인간이 의식주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이 욕구가 충족되면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게 되며 내적인 성장을 실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욕망은 너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왔다. 단군 이래 이렇게 잘 산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부정적인 폐해도 적지 않았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0년 천안함 사건,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참사까지. 물질적 욕망의 질주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정의를 외면하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외면하고 털어내려고 한다.

 

자랑스러운 것만을 드러내려는 쪽, 부끄러운 것을 기억하려는 쪽,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을 역사라는 ‘집단기억’에 기초한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역사관에는 차이가 없다. 현대의 역사 이론들이 합창하는 것처럼, 역사서술은 근본적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이다. 이는 동일한 사료를 근거로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취합하여 서술하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극명할 수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해석이든 너의 해석이든 어느 것도 ‘객관적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성찰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유시민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으로 읽는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두 세력을 거의 50대 50으로 인정해왔고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 모두 우리의 과거이며 따라서 둘 중 하나만을 인정하는 자세는 온전한 역사인식·현실인식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역사논쟁이 뜨거운 지금, 서로 다른 경험과 이해관계, 인생관을 가졌다 해도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그 간극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문제였다.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관계에 대한 집착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상반된 역사관에 비방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대화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역사교과서는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지혜로운 정치의 산물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으로 꼽히는 ‘공감’, 정치적으로는 세대별 전쟁 수준까지 갈라진 상황에 대해 싸우지 말고 현실 직시부터 해야 한다. 모든 역사엔 빛과 어둠이 있다. 역사 교과서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최고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우리를 분노케하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도 공존한다. 연구자와 학습자는 모두 역사 해석의 독단을 경계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교류를 역사 이해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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