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턱없이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기실 나 남 할 것 없이 몸보다는 마음이 더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김용준, 「매화」 중에서, 『마음을 비우는 지혜』 303쪽)

 

 

『근원 수필』를 쓴 김용준 선생은 황폐한 일제 강점기에 이렇게 매화에 대해서 이토록 발랄하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화의 적막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면 가난한 살림도 운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의 친구는 한가롭게 매화 구경을 하는 선생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바쁜 세상에 꽃구경을 하는 선생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은 매화를 바라보는 여유가 없는, ‘냉회(冷灰) 같이 식어버린 우리네 마음’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선생이 살았던 조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기만 하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이다지도 바빠졌는가’를 조소하게 된다.

 

옛날 선비들은 자연을 벗 삼아 욕심을 버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여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풍족한 속세의 기억을 잊지 못해 시골로 낙향하고 싶은 마음을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점점 꽃과 나무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꽃과 나무가 있었던 자리에는 어느새 콘크리트로 된 길바닥 위에 회색빛 건물들이 우뚝 서 있다. 이런 곳에서 살수록 우리는 자신만의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방법을 잊고 만다.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루만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것도 어려워졌다. 왠지 자기 혼자 세상에서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제는 독서마저도 하기 힘든 분주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책 읽을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 없을 뿐이다. 24시간 중에 나 혼자 여유로운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빠른 삶의 속도에 이끌리지 않고, 잠시 혼잡한 일상을 제쳐둘 수 있는 지혜를 잊어버린 채 사는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정민 교수의 『마음을 비우는 지혜』(솔출판사, 1997년, 절판)는 삶의 근심을 잊고, 생활 속에서 소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싶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 식의 짧은 격언에 해당되는 ‘청언(淸言)을 한문 원문과 함께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최초로 펴낸 문장 모음집이다. 이 책을 펴내기 전에 정민 교수는 『한시 미학 산책』(초판: 솔출판사, 1996년/개정판: 휴머니스트, 2010년)으로 대중들에게 한시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이미 1993년에 정민 교수는 한시와 평설을 함께 엮은 『꽃 피자 어데선가 바람이 불어와』(교학사, 1993년, 절판)의 공동저자로 참여했지만 정민 교수 개인의 평설을 곁들인 형식으로 쓴 첫 번째 문장 모음집은 『마음을 비우는 지혜』이다.

 

 

 

 

 

 

책에 수록된 청언소품들은 중국의 명말청조 시기 때 나온 홍자성의 『채근담』, 여곤의 『신음어』, 장조의 『유몽영』 등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특히 『유몽영』은 『생활의 발견』을 쓴 중국의 수필가 린위탕이 최고의 찬사를 보낸 책이다. 『유몽영』은 1997년에 '자유문고 동양학총서' 34번째 시리즈로 번역되었고, 2001년에 정민 교수가  『유몽영』의 속편  『속유몽영』을 포함한 내용을  『내가 사랑하는 삶』(태학사, 2001년)이라는 제목으로 국역해서 소개했으나 절판되었다.

 

 

 

 

 

 

 

 

 

 

 

 

 

 

 

정제되고 간결한 글이지만 격조 있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어 옷깃을 여미고 곱씹게 만든다. 때론 그윽한 수묵담채화를 떠올리는 영상이 문장 속에 농축돼 있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의 정취, 세심한 관찰력에서 현현하는 인생의 참 뜻,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독서 취미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소재의 폭은 실로 다양하다.

 

바쁘게 사는 우리들을 부럽게 만드는 몇 대목만 읽어보자.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을 그냥 눈으로 바라보기가 아깝다. 흥취를 돋우는 맛 좋은 술이 있어야 한다.

 

누각 위에서 산 구경하기, 성 머리에서 눈 구경하기, 등불 앞에서 달 구경하기, 배 위에서 노을 구경하기, 달빛 아래 미인 바라보기, 이 모두 특별한 운치가 있는 정경들이다. (『유몽영』에서 인용, 54쪽)

 

옛 선비들이 할 일이 없어서 한가한 것이 아니다. 김용준 선생이 할 일이 없어서 매화 구경을 하는 것이라고 선생의 친구들은 비웃었다. 하지만 한가로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속세로 인해 피폐해진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단지 놀기 위해서 한가한 생활을 원한다면 그건 소인의 한가로움이다. 

 

사람이 한가함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는 말은 아예 할 일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가하면 책을 읽을 수가 있고, 명승을 찾아 노닐 수도 있으며, 유익한 벗과 사귀기도 하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책을 저술할 수도 있다. 천하의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있으랴. (『유몽영』에서 인용, 98쪽)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스무 살 전후는 시간을 아껴 공부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1년 유급을 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옛날 어르신들도 젊은 시절에 학문 연마하기 위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젊은이는 세상일 때문에 책 읽기를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마땅히 책을 읽어 세상일에 통달해야 한다. (『암서유사』에서 인용, 182쪽)

 

그러나 독서만이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세상 견문을 넓히지 않고 책으로 배우기만 해서는 글을 쓸 수 없고, 좁은 식견을 가진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만다. 한창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기에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독서에 의존하면 정작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면 구설을 멀리할 수가 있다. 한가로이 독서하면서 적막함을 달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늙어 할 일 없는 사람에겐 으뜸가는 보약이지만 젊은이가 이를 배우려 하면 잘못이다. (『자술』에서 인용, 182쪽)

 

정민 교수의 『마음을 비우는 지혜』는 내면의 삶은 더 황폐해진 시대에 등불이 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비록 그 등불은 켜지지 않은 상태이지만(현재 책은 절판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어두운 삶의 근심을 밝게 해주는 생명력이 문장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선인의 지혜를 찾는다면 이 등불은 언제든지 켜지게 될 것이다. 선인들의 관심사가 지금 우리 고민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잘 들여다보면 현실의 이야기가 옛 사람들 이야기와 포개지는 지점이 있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라는 등불을 켠다면 시대를 초월하는 사람들 내면 풍경의 보편성, 그리고 지금 사람들에게도 와 닿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훤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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