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인간 - 분석심리학자가 말하는 미래 인간의 모든 것
이나미 지음 / 시공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Scene #1  '다음 인간'은 미래를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스 신화의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최고의 미녀로 꼽히는 카산드라.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느 날 태양과 예언의 신 아폴론의 구애를 받는다. 그녀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아폴론으로부터 예지력을 전해 받는다. 그러나 그녀가 예지력을 받은 뒤에도 오리발을 내밀자, 화가 난 아폴론은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도록 저주를 내린다.


이후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고 그리스 군이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를 가져왔을 때, 카산드라는 “목마를 성안에 들여 놓으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녀의 예언대로 트로이는 결국 멸망했다. 카산드라는 “주목받지 못하는 비관적 예언자”라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융 심리학을 주로 연구하는 심리학자 이나미의 『다음 인간』은 카산드라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한 비관적 미래 예측”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기술의 발전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종속당해 욕망이 사라지고, 관계, 윤리, 가치관이 무녀 져버리는 미래의 인간상을 한 편의 가상 시나리오로 써내려갔다. 그 가상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다음 인간’, 바로 우리다. 그런데 책 속에 그려진 미래 속 우리 모습은 너무 어둡기만 하다.


우리는 사람보다 기계와 더 가까이 지내는 일상에 익숙해져 무감동과 타성에 젖는다. 이에 사이코패스가 등장하고, 관계는 해체되고 감정이 부족한 세대가 출현한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의존하면서 자란 A 세대(Apathy, 무감동)는 감정이 부족하다.


미래의 가족은 결혼으로 성립되어 혈연관계로 맺어지는 전통적인 유형이 아니라 계약 형태로 만들어진다. 집단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자신만의 인생을 위해 행복을 찾으려는 성향이 강할수록 젊은이들은 결혼 대신 1인 가족으로 산다. 자녀를 갖고 싶으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다. 돈만 있으면 가짜 자녀라도 구입해서 같이 살 수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이야기들은 상상력이 가득한 SF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욕망. 인간, 관계가 사라져버린 미래 세상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 

 

 

 

 Scene #2  기술의 미래가 아닌 인간의 미래를 바라보다


인간은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꾸준히 환경에 적응하며 발전해 왔다. 그리고 발전된 인간의 능력, 특히 두뇌의 기능을 활용해 새로운 기술을 하나하나씩 개발하고, 축적 및 통합해 발전시키는 등 현재의 많은 기술적인 발전을 이뤄 놓고 있다. 이렇게 발전된 기술의 결과물들은 높은 수준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변한 세계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종속되는 인간이 겪는 가치의 위기와 새로운 차원의 소외가 발생한다. 


체코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쳘학자 빌렘 플루셔는 인간은 새로운 세계 속에 방향을 잡기 위해 ‘기구(器具)’를 이용하지만, 바로 이 ‘기구’에 의해 오히려 인간이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가치판단과 일상의 삶 전체가 우리를 프로그램화하는 기구들에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구’로 가장 대표할 수 있고,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SNS이다. 한 손으로 쉽게 조작 가능한 SNS라는 기구는 우리를 관계지향성 인간이 아닌 폐쇄적 인간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심리학이라는 망원경으로 기술의 미래가 아닌 인간의 미래를 내다봤다. 사실 그녀의 가상 시나리오대로 사회를 결속시킬 수 있는 공동체적 가치와 관계의 의미가 점점 균열되는 조짐이 보인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결혼, 취직, 육아 담당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독신 생활을 원한다. SNS과 같은 가상공간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또 다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렇다보니 이전 현실 세상에서 전혀 나올 수 없는 신종 범죄가 등장한다. ‘일베’(일간베스트)처럼 특정 집단이나 상대방을 향한 인신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상대방의 SNS에 몰래 해킹하여 개인 정보를 빼낸다. 심지어 가상공간과 현실 세계를 혼동하게 되어, 범죄행위를 해도 이를 단지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일종으로 착각하는 리셋 증후군에 걸린 사람이 늘어난다. 이들은 자신의 범죄행위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가상공간이 신종 사이코패스를 양산하고 있다.

 

 

 

 Scene #3  미래 예측서인 듯 미래 예측서 아닌 미래 예측서 같은 책  
 

심리학자가 바라보는 미래 모습은 기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예측이 아닌 그 변화에 의해 영향 받는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일단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좋다. 정신과 의사의 가상 시나리오가 과연 언제 이루어지게 될 것이며 정확하게 예측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급속한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하는 인간의 심리를 각인시켜준 것만 해도 우리는 심리학자의 예측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의 가상 시나리오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미흡한 내용으로 비춰질 수 있다. 특히 미래학 전문가 입장에서는. 저자는 서문에서 기술 환경 변화에 주목하는 미래 예측이 상상력이 결여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은 미래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무조건 기술 변화에만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기술 변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삶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다룬 심리적 측면에서의 미래 예측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저자는 자신이 아는 분야인 심리학을 강조하면서 『다음 인간』을 기존의 미래 예측서와 차별화를 두려고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변화에 관한 전제조건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가상 시나리오는 미래학자도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면 쓸 수 있는 내용에 불과하다. 이렇듯 심리학자가 현재의 미래 예측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미래를 논한 서술 방식은 미래학 전문가 입장에서는 상당히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리고 책에서 소개한 일부 가상 시나리오 중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 가까운 내용도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상상력의 정도가 너무 치우친 나머지, 좀 더 심도 있게 분석하지 못해 미흡한 부분도 있었다. 특히 계약 가족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73쪽) 저자는 계약 가족이 더 많아지면 가족 내 폭력이 줄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기서 이 내용에 대해서 완전 동의할 수 없다. 과연 계약 가족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오히려 한 핏줄에서 태어난 가족이 아니기에 가족 내 폭력의 위험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이를 악용한 특수 범죄가 일어난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돈독하게 정(情)을 나누는 관계의 의미가 사라지는 가상 시나리오의 전반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옥에 티다.   


이 책에서 모든 가상 시나리오가 전체적으로 비관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미래 변화를 의해 형성될 수 있는 낙관적인 전망도 펼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여론에 관한 예측이다. 저자는 메이저 신문사들은 합병되고 개인 팟캐스트 방송이 늘어나면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109쪽) 다양한 의견의 목소리가 나오는 언론 생태계가 구축될 거라는 전망으로 결론을 내리는데 현실에 동떨어진 이상적인 내용에 가깝다. 수천 개의 개인 팟캐스트 방송 덕분에 우리는 거기서 소개되는 정보를 골라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정보가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언론 생태계가 구축되더라도 과연 신뢰성 높은 정보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자가 예측하는 이상적인 언론 생태계가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언론은 대중을 호도하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올바르게 전달하려는 역할을, 대중은 다양한 목소리 중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균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Scene #4  미래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연약한 마음 지키기


애초부터 저자가 기술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깊이 있는 분석으로 이루어진 미래 예측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제의 범위가 국제정세와 관련된 내용으로 확장되는 바람에 저자의 전공이자 이 책의 강점으로 언급될 수 있는 심리학의 색깔이 사라져버렸다. 저자는 서문에 융의 텔레올로지 이론과 적극적 상상 기법으로 미래에 대한 상상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할 뿐,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다. 저자는 ‘심리학 망원경’으로 인간의 미래를 너무 들여다보다가 그만 자신이 애용하는 망원경에 대한 설명을 놓치고 말았다. 융 심리학에 생소한 독자 입장에서는 아쉽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심리학적 시각으로 부연 설명이 첨가되었으면 설득력 있는 내용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심리학과 미래학의 만남은 신선한 조합이었다.『다음 인간』은 과거와 현실에 갇힌 채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와 시선을 미래로 향하도록 분석하는 기회를 강조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할 때 우리 주변에 작동되는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변화되는 현재의 자신을 지켜볼 것을 촉구한다. 비록 미래학자처럼 내일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더 급속하게 변화될 미래의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마음이 건강하게 지킬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한다면 미래를 보는 통찰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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