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래 전부터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치료에 이용해왔다. 현재까지 많은 의약품들이 식물체로부터 얻어지고 있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은 키나나무에서, 진통제인 모르핀은 양귀비 열매에서, 마취제로 쓰이는 코카인은 코카나무에서 추출됐다. 하지만 모르핀, 코카인은 의학용이라기보다는 심각한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마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코카인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며,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높인다. 또 도파민을 신경전달물질로 사용하는 뇌의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도파민이 전기신호를 전달한 뒤 다시 시냅스에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막아 흥분상태가 이어지도록 한다.

 

코카인은 체내에서 급속히 분해되기 때문에 약효가 신속한 대신 지속시간이 짧다. 적절량을 사용하면 힘이 넘치고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는 등 쾌락적인 흥분과 환각 경험을 갖게 되지만, 과량 흡입하면 불안, 구역질, 구토 등을 일으키고 나아가 심장마비나 호흡정지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코카인의 특이한 독성작용 중에는 ‘Coke Bugs’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피부 속에 벌레들이 떼 지어 기어 다니는 듯한 환상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벌레를 잡기 위해 피부를 마구 긁어 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이렇듯 코카인의 해로움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었으나 코카인을 합법화하는 나라 및 지역이 남아 있다. 그들은 코카인은 몸에 좋은 약물이라고 주장한다. 코카인은 남아메리카의 코카나무 이파리에서 추출하는데, 잉카문명에서 이미 약초로 쓰였다. 잉카인들은 코카 잎을 씹으면 피로와 졸음을 쫓아주고 고된 노동의 고통을 완화해 준다고 믿었다. 1855년에 코카인이 처음으로 코카 잎에서 분리 추출되는 방법이 발견되면서 마취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잉카인의 후예들이 사는 볼리비아에 코카 잎을 사용하는 전통이 남아있다. 그들은 코카나무에서 추출하는 물질을 ‘코카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코카’라고 부른다. 코카 잎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인 볼리비아는 코카 잎으로 만든 에너지 음료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볼리비아는 2006년부터 코카 재배농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가 코카 재배 양성화 정책을 추진하여 미국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볼리비아 정부의 코카 재배 양성화 정책이 마약류인 코카인 생산을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코카인의 해로운 영향이 공식적으로 밝혀지게 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코카인에 대한 경계가 느슨했다. 19세기 중반 인기 음료엔 코카인이 버젓이 들어 있었고, 미국의 존 팸버튼이 1886년 첫 선을 보인 이후 20여 년간 코카콜라에 이 중독성 물질이 함유됐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5년간 코카인을 규칙적으로 흡입하면서 “중독성 없이 지속적 행복감을 제공한다”는 예찬과 함께 주변에 권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와서 코카 재배 근절이 하나의 국제적 정책으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코카인은 건강에 해로운 마약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오래전부터 코카를 피로회복제로 이용했고, ‘신의 불로초’라 여긴 잉카인의 코카 숭배 문화가 코카인 생산을 부추기는 사회악의 원인으로 지적받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1970년대까지 잉카인들이 사용하는 코카 성분에 대해 과학적 입증이 밝혀지지 않았다. 코카 잎에서 코카 성분을 추출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정작 코카 원료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웨이드 데이비스는 『웨이파인더』(정은문고, 2014년)에 코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안데스 산맥을 탐사하는 여정을 소개하는데 남아메리카 지역에 나오는 코카가 단지 마약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데이비스는 코카의 영양학적 연구를 실시한 결과, 유해한 물질임을 밝혀낸다. 코카 잎에서 나오는 효소는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능력을 높여주는데 안데스 지역의 감자 위주 식단에 아주 적합하다. 그리고 비타민과 칼슘 성분도 포함될 정도로 영양학적 가치가 높다. 잉카인들이 씹는 소량의 코카 잎에 0.5~1%의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데 인체에 무해하다. 그래서 잉카인들이 코카에 중독되지 않은 것이다.

 

코카인이 위험한 마약이라고 해서 코카를 즐겨 사용했던 잉카 전통 문화를 ‘최악의 문화’로 보는 것은 왜곡된 편견에서 비롯된 문화적 차별이다. 그들의 신성한 식물을 함부로 사용한 진짜 주범은 무기를 앞세워 타 민족의 문화를 파괴한 근대의 문명인이었다.

 

 

 

 

 

 

 

 

 

 

 

 

 

 

 

 

 

잘못 알려진 음식, 건강, 환경 관련 분야 상식을 소개하는 제임스 콜만의 『내추럴리 데인저러스』 (다산초당, 2008년)에 코카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잉카 제국을 침략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미 코카인의 효능을 알고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인들을 금광으로 끌고 가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 코카인을 사용하게 했다. 금을 캐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광에 투입된 잉카인들은 평소보다 많은 코카인을 강제로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잉카인들은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금을 캤을 것이며 코카인을 과다 복용하는 바람에 그 많은 잉카인들을 사망케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마약은 인류가 발견해 낸 물질 중 가장 신비스럽고 귀한 물질임에는 틀림없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 내는 신통력이 있는가 하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고 심각한 질병을 앓아 수술할 때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다. 

 

이처럼 마약이 의학적으로 적정한 용도로만 사용된다면 신비의 묘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나 확산을 우려하는 이유는 마약류가 지니는 엄청난 파괴력 때문이다. 마약류의 남용은 개인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가정적 파괴를 사회적으로는 각종 범죄와 혼란을 일으킨다. 중독은 특정한 자극물을 사용하면 만족감을 얻기 때문에 이러한 자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길 원하게 되고 또 사용을 중단하면 불쾌한 기분과 금단 증상을 경험하게 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극물에 의존하게 된다.

 

특히 마약이 사용되기 시작하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진보라는 환상에 취하고, 끊임없는 발전에 만족하지 못해 탐욕스러워진 문명인이 이 위험한 약을 만들었다. 결국 마약은 문화제국주의 시대가 낳은 잘못된 근대적 발명품 중 하나다. 지금까지도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현대인은 잘못된 역사적 진실을 믿으면서 아무 죄도 없는 타 민족 문화를 오해하고 무시한다. 그리고 이 근대적 발명품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중독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코카 잎을 씹는 잉카족과 코카인에 중독된 문명인 중에 과연 누가 더 야만스러운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의 지혜가 깃들어진 문화를 멸시하고, 가차없이 짓밟고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문명인이야말로 야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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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문고 2014-09-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