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광기 - 왜 예루살렘이 문제인가?
제임스 캐럴 지음, 박경선 옮김 / 동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Scene #1  평화롭기보다는 살벌한 예루살렘

 

인간은 늘 무언가를 갈망하고 소원하며, 신을 향해 애절하게 울부짖는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가슴 아린 현실을 내 안의 그분만은 알아주길 간절히 원하면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유대교인이 되고, 불자가 되는 길을 찾아 나선다. 예루살렘은 가슴 아픈 역사와 분열의 중심인 동시에 구원과 희망의 성지다.

 

갈릴리에 살던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죽기 전날 홀로 기도한 겟세마네 동산이 있고, 부활한 지 40일 만에 승천했다는 곳이 모두 감람산이다. 감람산 밑엔 유대인들이 최고 명당으로 꼽는 공동묘지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직접 문을 열 것이라고 믿는 성벽이 굳게 닫혀 있다. 그 성벽 위엔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아들 이사악을 바치려 한 성전산이 있다. 이곳엔 무슬림의 황금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나란히 서 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탈무드』에 "아름다움의 척도 열 가지가 세상에 주어졌는데, 그중 아홉 가지를 예루살렘이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보다는 번득이는 총구가 먼저 눈에 띈다. 더욱 성스러워야 할 이곳은 평화롭기보다는 살벌하다. 평화가 너무도 간절하기에 예루살렘인 것일까.

 

예루살렘에서 여전히 평화는 멀고 저주는 가깝다. 예루살렘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선지자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종교와 신화가 서린 이런 도시를 누가 지배하느냐였다. 정복자는 피지배자들의 신전을 허물고, 그 폐허 위에 그들이 믿는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다. 피지배자들은 허물어진 신전을 언젠가 다시 세우겠다고 맹세했고, 피가 피를 부르는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2천년 동안의 고난을 잊은 듯 보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고사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유대인과 아랍의 갈등이 지구상 최고의 ‘뜨거운 감자’라 하더라도 유대인과 기독교의 역사적 갈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예수는 2천년 이래 유대인이 낳은 지상 최고의 슈퍼스타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만은 ‘지상 최악의 인물’이다. 예수에 대한 지구상 최고의 환호와 저주가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직과 수평의 십자가처럼 예루살렘에서 상극을 연출하고 있다.

 

 


 Scene #2  군인으로 변한 종교인 

 

야만적인 전쟁 행위에 흔히 신성(神聖)을 부여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원시 부족들이 사냥이나 전투에 앞서 희생물을 바치는 종교의식에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피 흘리며 죽이고 죽는 것을 무릅쓰도록 부추기고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나오는 죄의식을 씻어주는 집단 최면 효과를 얻는 셈이다.

 

전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종교’로 인해 일어난 전쟁 역시 수없이 많다. 종교 간 대립으로 인한 전쟁,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한 전쟁 등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전쟁 속에서 군인으로 변모한 종교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0년 전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 서유럽이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11∼13세기 200년간 8차례에 걸쳐 감행한 십자군 성전(聖戰)은 잔혹한 살육과 약탈로 얼룩진 추악한 전쟁이다. 그 이면에 교황권 확대와 유럽인의 대외 팽창 욕구 등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역사의 흐름에서 십자군 전쟁이 끼친 긍정적 파급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신앙을 가장한 인간의 탐욕이 빚은 부끄러운 만행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 정권이 자행했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위해 미국이 팔레스타인 땅 심장부에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했는데 이는 많은 무슬림의 가슴에 반미 감정을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더욱이 미국의 막대한 군사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4차례의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철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웃 아랍 국가들의 영토를 불법으로 점령하자 하마스, 헤즈볼라, 이슬람 지하드 같은 조직적인 무장저항단체가 생겨나 반 이스라엘 투쟁을 본격화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아랍어로 ‘알 쿠즈’라 부른다. 앞으로 언젠가는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가 바로 알 쿠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을 선언할 당시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였으나, 1950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다고 선포했다.

 

예루살렘 성지문제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사이에 벌어진 유혈 충돌이 ‘눈에는 눈’식의 보복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도 불안해 보이기 짝이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평화는 깨졌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서로를 향해 펀치를 가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어린이 놀이터에 폭격을 가해 9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죽는 잔혹한 일이 발생했다.

 

 

 

 Scene #3  ‘예루살렘 열병’을 치료해줄 ‘좋은 종교’ 어디 없나?

 

요즘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지구 공격 사태로 대체로 이스라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부정적이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팔레스타인이나 이슬람이 늘 피해자였던 것도 아니다. 팔레스타인은 일방적인 피해자도 아닐뿐더러, 이스라엘도 일방적인 폭력의 가해자도 아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 모두가 종교에 의해 열병이 걸려 폭력을 정당화한다. '신의 계시'란 이름 아래 종교적 욕망, 군사적 욕망이 더해져 타 민족과 종교집단을 괴롭혔다. 그들의 시각에서 타 종교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다.

 

니체는 "기독교는 피정복자와 피압박자의 본능이 전면에 나타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는 권력자에 대한 감동이 늘 생생하게 살아난다"며 기독교 권력화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종교가 정치 권력화 되면서 나타나는 병폐는 기독교뿐만이 아니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자임하는 유대인들은 성스러운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위해 그곳에서 수천 년간 거주했던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지금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은 알라신의 계시라는 이름하에 타 종교와 대립하고 또한 자신의 육체를 신에게 맡기는 인간폭탄 테러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이 열병은 지독하다. 병명은 ‘예루살렘 열병’. 그 종교의 열병은 곧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타적인 적대감으로 이어지고, 그 적대감은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무자비한 살육을 가능케 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고 타자를 희생물로 신에게 바치지 않으면 자신이 제물이 된다는 인식은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열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성스러움과 폭력이 양립하는 종교의 모순을 목격한 제임스 캐럴은 ‘좋은 종교’로 발전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종교’는 죽음 대신 삶을 찬미하고,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신이 이 땅에 임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로 규정한다. 그리고 종교는 구원이 아닌 계시에 관한 것이며 강요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역설적이게도 종교는 세속적 성격을 띨 수 있다.

 

종교의 근본주의 사상에서 가장 문제점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다양성이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세계관을 가졌다. 흑백논리에 점철된 그들의 주장은 타 민족을 학살하거나 억압할 때 정당화 하는 논리로 사용됐다.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합리화를 택한다. 종교는 전쟁에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 주었다. 종교적 광기가 정치권력을 장악할 경우 예루살렘은 절대로 ‘평화의 도시’가 될 수 없다.

 

“역사가 되풀이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가 남긴 말은 ‘예루살렘 열병’의 환각 상태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종교’를 조롱하는 듯하다. 이들의 끝없는 전쟁은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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