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출판협회라는 단체에서 ‘모범장서가’를 공모한다. 기간은 오는 29일까지다. 자격 조건으로 2천 권 이상 도서를 소장하고 있어야 한다. 자천 및 타천 모두 가능하다. 신청자 중에 총 5명을 선정한다. 모범장서가로 선정되면 100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에 꽂혀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세어봤다. 대충 눈으로 어림잡아 세어 봐도 천 권 이상은 되지 않았다. 내 방의 크기는 넓지 않다. 일단 천 권이 넘는 책이 소장될만한 공간은 아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 세트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족히 300~350권 정도 될 것 같다. 가끔 지금까지 구입한 책들이 몇 권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시간이 있으면 일일이 한 권 한 권 세어 보면서 엑셀로 정리하고 싶다. 이렇게 따로 정리하면 책 권 수를 확인도 하고 내가 어떤 분야의 책을 구입했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엄청 많이 사는 편이다. 여윳돈이 생기면 어떻게든 책 한 권은 꼭 산다. 작년에 알라딘 오프라인 매장이 대구에 생겼을 때부터 책 사는 횟수가 많아졌다. 항상 인터넷 주문은 알라딘에, 오프라인은 교보문고와 알라딘 대구점 그리고 헌책방을 애용한다. 인터넷 주문은 한 달에 많아야 세 번 구입한다. 땡스투 마일리지로 모은 적립금이 많지 않아서 정말 사고 싶은 책이 있을 때 사용한다. 구입 횟수로만 보면 적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주문하면 책 2권 이상 된다. 한창 마일리지가 많았을 때는 5만 원 이상, 5권 이상 구입한 적도 있다. 나름 최소 비용으로 책을 많이 사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알라딘 중고샵도 많이 이용한다.

 

오프라인 구입 횟수로는 요즘은 알라딘 매장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은 교보문고, 헌책방이다. 알라딘 매장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방문한다. 스마트폰으로 매일 알라딘 중고매장 어플을 확인한다. 알라딘 어플을 설치하면 각 지역별 중고매장으로 접속할 수 있다. 알라딘 중고매장 홈페이지도 있지만, 어플을 많이 사용한다. 손님이 판 책과 매장에 비치된 책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만약에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당장 매장으로 향한다. 이때만 되면 괜히 초조해진다. 다른 손님이 그 책을 구입할까봐 걱정한다. 특히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절판본일수록 불안감을 느낀다. 이상하게 알라딘 매장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평일인데도 차가 막히는 것 같고, 빨리 발걸음을 재촉해도 매장으로 들어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지. 다른 손님이 내가 찜한 책을 구입한 사실을 알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진다. 너무 아쉬워서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고, 또 다른 책을 구입한다. 이놈의 습관이 참 무섭다.

 

나는 책 사는 습관이 일종의 ‘벽’(癖)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잔뜩 사놓고 바로 읽지 않고 책장으로 꽂히는 나쁜 습관이 있지만, 읽고 싶은 책은 언젠가는 꼭 읽는다.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구입하자마자 한 번에 완독하는 경우는 없지만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나도 장서가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책을 무조건 많이 사야 장서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나는 책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다. 돈이 없어서 당장 못 사는 책은 언젠가는 꼭 산다. 고등학생 시절에 책을 많이 구입하지 못했을 때 도서관을 애용했다. 아니면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은 다 읽어야 책을 구입하지 못한 아쉬움을 풀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꼭 구입한다.

 

 

 

 

 

 

 

 

 

 

 

 

 

 

 

예전에 책 사는 습관이 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 살만 악타르의 『사물과 마음』을 읽고 나서 그 생각이 달라졌다. 사물을 소유하고 싶고, 거기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있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물건에 집착한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물건이지만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이 상실되면 무척 괴로워한다. 물건에 대한 탐닉은 수집벽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 ‘수집’과 ‘잡동사니’의 차이점을 소개한다. 단순히 물건을 모은다고 해서 수집에 가까운 행위로 보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수집으로 보일지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그저 잔뜩 널려 있는 잡동사니일 뿐이다.

 

살만 악타르가 분류한 '수집'과 '잡동사니'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수집품은 물건의 주인, 즉 수집가로부터 특별한 가치를 부여 받는다. 그래서 진정한 수집가는 양으로 따지지 않는다. 무작정 수집품을 사들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가치 있는 물건인지 신중하게 따져보는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 잡동사니를 모으는 것은 수집 행위와 반대다. 현재까진 필요 없는 물건인데 언젠가 필요해질 때를 대비해서 내다버리지 못한다. 이런 마음 때문에 물건을 모아두기만 한다.

 

수집과 잡동사니를 모으는 행위에 차이점은 있지만, 잡동사니를 모으는 행위도 수집이 될 수도 있다. 처음에 아무렇게나 모은 물건이지만 특별한 계기로 인해 수집가로 변모한다. 반대로 수집에 대한 열망이 너무 지나치거나 모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중독이 된다. 자신의 능력 및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채 특정 물건을 모으는 데 매달린다.  

 

살만 악타르가 말하는 수집가의 유형을 보면서 나는 아직 정상인(?) 수준의 책 수집가라는 걸 느꼈다. 책 한 번 사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인다. 책 내용이 괜찮은지 목차를 포함해서 몇 페이지는 읽어본다. 비용도 고려한다. 손에 쥐고 있는 비용으로 몇 권의 책을 살지 꼼꼼하게 생각한다.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생각 없이 책을 사지 않는다. 또 구입해서 읽은 책은 서평으로 기록을 남긴다. 아무리 완독한 책이라도 서평을 남기지 않으면 다 읽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뭔가 기록을 남겨야 직성이 풀린다. 이왕 나름 읽을 만한 책을 골랐으면 이에 대한 감상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서의 흔적은 오랫동안 기억하기 쉽다. 구입한 책에 관한 서평 쓰기가 습관이 되고 의무 활동으로 여긴다면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사는 나쁜 습관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회라서 그런지, 일반인 장서가를 만나기가 드물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장서가는 대개 지식인, 작가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 장서가가 완전히 절멸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음지 속에 독서를 즐기면서 책을 수집하는 열정적인 애서광들이 숨 쉬면서 살고 있다. 가끔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나보다 뛰어난 애서가들을 만나게 된다. 장르문학 위주로 즐겨 읽고 책을 사는 애서가가 있는가 하면,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헌책방의 위치를 꿰뚫고 자주 방문하는 헌책방 애서가도 있다. 나는 독서 모임 덕분에 헌책방 애서가를 만나서 친분을 맺게 되었고, 그 분의 만남 덕분에 헌책방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범장서가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독서 문화 보급에 기여하는 장서가가 되고 싶다. 읽고 난 책에 대한 서평 작성은 책을 널리 알리는데 중요하다. 그렇다고 내 서평이 책 판매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며 내용이 어줍기만 하지만, 일단 책 자체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만으로 해도 서평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리고 흘러가는 세월에 잊혀져가는 절판된 책에 대한 기록도 남기려고 한다. 비록 절판된 책의 서평은 더 이상 구입할 수 없기에 재출간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잘 내용이 좋아도 땡스투 적립금을 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읽을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서평 하나라도 없는 절판본도 있다. 절판의 운명에 처한 책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책이 잘 팔리지 않아서, 조용히 서점에서 사라진 것도 있으며 출판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책 발행이 끊기기도 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그런 책을 발견하면 기록 하나쯤은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그런 책이 나중에 재출간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요즘 관심 가는 절판본이라면 법정 스님이 쓰신 책이다. 비록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자신이 남긴 모든 글과 책은 절대로 팔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책에 유독 집착이 강한 이 어리석은 중생은 스님의 기록이 이렇게 잊혀져가는 것이 아쉬워서 터무니없이 매긴 값비싼 가격이라도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스님의 명문을 알리고 싶다.  

 

 

 

 

 

 

 

 

 

 

 

 

 

 

 

 

한스 보하타라는 독일의 서지학자가 말하길, 애서가는 자기 책의 주인이고 애서광은 자기 책의 노예다. 다만 책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해 절도 이상의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런 고상한 취미를 가져도 무방하다고 본다. 20여 년 동안 미국 전역 268개 도서관에서 훔친 2만 3600여권의 희귀본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컬렉션을 세운 스티븐 블룸버그 같은 장서가는 되고 싶지 않다. 엄연히 말하는 그는 장서가라기보다는 도서절도범에 가깝다. 다시 구하기 힘든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을 과하면 책의 노예가 된다. 책의 주인은 소유의 집착을 깨끗이 버릴 줄 안다. 의외로 책 좋아하는 재벌가는 사후에 자신의 장서로 공공도서관을 만들어 개방하기도 한다.

 

 

 

 

 

 

 

 

 

 

 

 

 

 

 

 

 

 

 

책의 노예가 되는 순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어떻게 돌변하지 모른다. 어떻게든 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잡동사니 유형은 그나마 정상적이다. 그러나 책을 사랑하는 나머지 미쳐버리면 강박증으로 변질된다. 플로베르의 단편소설 '애서광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갸코모는 자신이 소유한 책이 세상에서 유일함을 과시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 죽음을 택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갸코모는 경쟁자의 집에 불이 나자 화염 속에 뛰어들어 원하던 책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그 책이 자신의 집에서 발견돼 방화범으로 기소된다. 그의 변호사가 세상에서 유일한 책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똑같은 책을 구해 와 제시한다. 하지만 갸코모는 격분한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판장에게 자신이 불을 지르고 책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그 설득이 통해 갸코모는 사형대에 오른다.

 

사실 갸코모처럼 장서가나 애서가 입장에서는 나름 희귀한 가치가 있는 절판본이 복간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구입한 절판본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책인지 증명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착각이다.

 

갸코모와 스티븐 블룸버그는 책에 미쳐버린 나쁜 사례다.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올바른 장서가 또는 애서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내가 책의 주인인지 아니면 책의 노예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스스로 정상적인 책 수집가, 애서가라고 분류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나 또한 그렇다. 사물에 향한 인간의 집착은 이성과 도덕의 눈을 멀게 만든다. 그래도 책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 그런 고귀한 광기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서 우리나라 사람들 책 좀 많이 읽기를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나만의 욕심일까? 우리나라도 장서가, 애서가가 많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독서문화와 함께 도서수집문화 혹은 장서문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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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4-08-0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범장서가'에 응모해볼려고 집에 있는 책을 세어봤어요.
거실 벽 두 군데를 책장이 차지하고 있고, 빈 방 하나에도 책장이 있거든요.
아이들 책을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거실에 있는 제 책만 천 권 정도가 되더라고요.
2천권이 채 안되는 것 같아서 좀 아쉽기도 하네요. ^^

cyrus 2014-08-08 23:20   좋아요 0 | URL
천 권도 많은데요! Breeze님 ㅎㅎㅎ 모범장서가 공모는 올해가 처음이 아니에요. 몇 년 전부터 시행된 것 같은데, 내년에 한 번 도전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blanca 2014-08-0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있는 책을 엑셀로 정리하는 것 너무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도 언젠가 하고 싶어요. 그러면 분야별로도 작가별로도 다 정렬이 가능할 텐데요. 저도 두 번 읽지 않을 책은 처분한다,는 원칙을 최근에 세워 책을 더이상 늘리지 않으려고요. 공간도 그렇고.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님과 닮아 있어 참 반가운 페이퍼네요. cyrus님은 근사한 애서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cyrus 2014-08-08 23:2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분류별로 미리 정리하면 나중에 이사 갈 때 책장 배치할 때 편리해요. 블랑카님도 집에 책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블랑카님이 읽으신 책을 아이들도 읽는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