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무식한 대한민국, 진지 빨지 말고 책 치워라

 

 

 

이미지 출처: 머니투데이 (2014년 7월 25일)

 

오늘 아침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책 잘 안 읽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매년 한 번씩은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지라 특별히 눈 여겨 보지 않았다. 그런데 헤드라인이 상당히 세다. ‘무식한 대한민국, 진지 빨지 말고 책 치워라

 

기사 내용의 요지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 1인당 독서 라이프 사이클을 보면 어린 시절에는 평균 50권이 넘는 책을 읽지만, 청소년 시기로 접어들수록 읽는 책 권수가 줄어든다. 중학생은 평균 20여 권, 고등학생은 읽는 책 권수가 줄어든다. 평균 10권 이상도 못 넘는다. 나이가 들수록 독서량은 줄어든다. 책을 안 읽었다기보다 책을 못 읽었다고 봐야 무방하다. 초등학생 때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입시를 위한 수단적 독서일 뿐이다. 중고등학생 때는 오히려 학교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어른들은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 교과서 대신에 책을 들춰보는 학생들은 선생님 입장에서는 한심스럽다. 게다가 동급생들도 책 읽는 학생을 선호하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가롭게 책을 읽을 여유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친구들에게 책만 읽는 학생은 찌질이가 된다.

 

이상하게 책을 거부하는 태도는 한때 지성의 산실 대학교에서도 이어진다.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 각종 장학금 혜택과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보지만, 그때만을 위해서 잠깐 책 읽을 뿐, 그 이후로는 독서에 대한 열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 평소 안 읽던 책을 억지로 읽는다.

 

이제 좀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어서 오랜만에 서가에 꽂힌 소설책을 집어보지만, 취업에 대한 고민과 준비 때문인지 괜히 책 펼치기가 꺼려진다. 부모님은 소설책 읽는 자식이 불만스럽다. 소설 읽는 시간에 취업용 종합상식 교재나 더 보라고 꾸짖는다. 그리고 얼른 취업이나 하란다. 멀쩡하게 대학 4년제 나온 자식이 좋은 직장에 다닐 것이라 믿었던 부모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만 읽는 자식이 걱정된다. 자식은 취업이 우선인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독서가 좋다. 그러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소설가 구보 씨처럼 부모 눈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책 읽고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취업이 언제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주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독서하는 것이 죄를 저지르는 것 같다. 취업 준비는 안 하고 책만 읽는 한량죄.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 독서 라이프 사이클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우울한 내용이다. 반대로 미국, 영국, 독일 같은 독서 라이프 사이클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독서량이 많아진다. 우리나라 독서 실태를 지적하는 기사에는 꼭 독서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과 늘 비교한다. 우리는 그 현실을 알면서도 책 안 읽는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Scene #2   무조건 책 읽기를 권하는 불편한 강요

      

우린 분명히 책에서 멀어지는 현상은 크게 염려한다. 책을 읽어야 깊이 이해하고 넓게 알게 된다. 책을 읽지 않고는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바람직한 인격 형성도 어렵다.

 

부모들이 우리 애들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하소연을 참 많이 한다. 부모로선 걱정스럽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어린이가 책을 읽지 않는 풍토는 바로 어른들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어린이만 탓한다.여기서 조금만 솔직하게 반성해 보자. 자기 자녀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부모들은 책을 읽는가? 많은 부모들이 그렇지 않다. 지금은 어느 가정이건 텔레비전이나 24시간 스마트폰 화면이 우리의 눈길을 잡는다. 더구나 이제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어린이들에게 그들의 손발과 같은 존재가 됐다.

 

방학계획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독서다. 방학 때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강제로라도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전집 수십 권을 한꺼번에 사주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를 잃고 책 읽기를 지겨운 숙제로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없어진다. 독서능력을 검증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책을 제대로 읽어 본 경험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어쩌면 너무나 책을 읽지 않는사람들은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아니라 독서능력을 객관식 문제나 단답형 문제로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이 당연히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시험은 교육의 중요한 과정이자 절차이다. 하지만 시험만능주의는 교육을 망친다. 독서마저도 시험의 억압 속에 놓이게 된다면, 독서의 즐거움은 원초적으로 증발되어 버리고 독서의 지겨움만 남게 된다. 시험이나 평가를 위한 의무 과정으로 청소년들에게 강요되는 독서, 생각만 해도 숨 막힌다.

 

독서만큼은 자유로운 경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정말로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읽든지 말든지, 어떤 책을 읽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길 바란다.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부모가 추천도서 목록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읽기를 권한다면 교육을 위할 뿐인지 진짜 독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부모 당신이 먼저 읽어라.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지 부모가 먼저 알고 읽는 것이 아이들의 독서 향상을 위한 기본적 첫걸음이 아닐까.

    

 

  Scene #3   독서에 대한 이상한 편견

 

나는 지금도 파릇파릇한 나이인데다가 미혼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고, 잘 모른다. 그래서 자식이 책 읽기를 원하는 일부 부모를 향해 다소 감정이 억양된 표현을 했다. 사실 아침에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면서 책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속상하고 무척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매번 독서가 좋다고 강조하는 어른들이 정작 아이들이 책 못 읽게 만드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은 이런 상황이 어이없게 느껴진다.

 

책 읽기를 강요하는 어른을 좋지 않게 여기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에 대한 우리나라 특유의 불편한 진실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다닐 때 부모님은 40권이 넘는 위인전집에 중학생 수준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백과사전을 구입해줬다. 내가 읽고 싶어서 사달라고 졸라댄 것도 있지만, 이렇게나 많이 책을 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식이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한 어른으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 절대적으로 컸다. 비록 부유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나를 생각해서 책을 많이 사주셨다. 좋은 부모님 밑에 자라서 어린 시절에 같은 나이 또래들에 비해 책 읽는 습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가끔 취업 준비가 늦어지는 자식을 걱정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책 읽는 것에 대해 일절 태클 걸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책 구입은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교는 책 읽는 나를 좀 특별하게 여긴 것 같다. 선생님도 그렇고, 일부 친구들도. 일단 교과서 내용과 관련 없는 서양 고전을 읽으면 선생님은 그런 제자의 모습에 대견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중고등학생이 읽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의 책을 읽는 이유가 궁금해 한다. 그냥 읽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혹은 무림고수들이 출동하는 국내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데 내가 괴테의 파우스트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같은 듣지도 보지 못한 책을 읽으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독서 편력을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문과생이 과학 도서를 읽는 것이다. 고등학생 2학년부터 자신이 공부해야 할 과목으로 문과, 이과로 나누어진다. 문과로 들어가게 되면 그렇게 지루해소 어려웠던 과학 과목과 영원히 이별한다. (! 수학은 빼고)

 

몇 몇 친구들은 농담으로 문과생이 무슨 배짱으로 어렵고 수식이 가득할 것 같은 과학 도서를 읽느냐고 말했다. 하긴 나도 과학 수업 시간이 되면 지루하고 무척 어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학 도서를 읽으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과학 수업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과학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책을 읽었기에 무척 수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성적 잘 받으려고 과학 도서를 읽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상 우리나라는 독서에 대한 편견이 너무 많고 심한 것 같다. 입시교육 탓에 교과서나 문제집 대신에 책 읽는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문과생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 누군가는 꼭 이런 말을 한다. 과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과학 도서는 왜 읽는 거야? 네가 그런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번에 시집을 읽는데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시를 왜 읽는 거죠? 재미있어요?” 이런 질문은 대게 시집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재미없어 보이는 시집을 재미있게 읽는 내 모습이 신기해서 물어 본다.

 

일반적으로 책 읽는 사람들이라면 상대방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지금 읽고 있는 책, 재미있어요?”라는 것이다. 재미있어서 책 읽는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책 읽는 것은 아니다. 나름 유용한 목적이 있어서 책을 읽는 것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독서를 재미만을 위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에 취미에 독서를 기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데 잘못됐다고 본다. 일단 취미는 사전적 의미로 즐기기 위한 일또는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독서는 단지 즐기기 위한 일로 보는 것을 반대한다. 재미있어서, 즐기기 위해서 독서를 한다는 말 자체가 난센스다. 우리 사회가 책을 즐기도록 만든 적이 있던가.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책을 즐긴 기회가 있었는가. 평소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 나름 고상한 취미를 강조해보려고 독서를 내세우는데, 그것은 꼴불견이다. 그래서 취미=독서라는 자기소개를 위한 겉치레 공식은 무의미하다. 취미로 무조건 독서라고 내세우는 것 또한 일종의 편견이라고 본다.

 

 

  Scene #4   여전히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하라는 무식한 어른들

 

책은 공기처럼 나를 새롭게 하고 배의 돛처럼 나를 전진시킨다. 책을 읽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나 깊은 예술이나 종교도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벗 중에 가장 틀림없는 벗은 바로 책이다. 책을 자신의 삶에 도움 주는 벗이라고 여긴다면 독서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런 독서의 장점을 일상에 가까이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특히 내 또래 젊은 친구들(‘88만원 세대삼포 세대라고 불리는 20) 책 멀리하는 악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들의 미래 자식들이 걱정된다.

 

책을 잘 안 읽는 환경에 익숙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좋은 독서 교육을 시킬 리가 없다. 그저 자식 성공을 위해 억지로 흉내 내는데 급급하다. 그리고 독서 편견도 심해질 수도 있다. 자신들도 젊은 시절에 취업 준비하느라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 자식들이 독서보다는 취업 준비에 몰두하기를 바란다. 독서를 멀리하는 악습관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으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독서량이 감소된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이롬을 빌리자면, 우리나라는 교양을 통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회가 많지 않다. 단순한 생존 욕구를 넘어선 한국 사회는 높은 단계의 욕구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의식주처럼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결핍 상태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욕구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인 만큼 책을 멀리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점점 생리적 욕망안전에 대한 욕망충족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욕망에 의해 커져나가는 사회는 자아실현의 욕망을 외면한다. 자아실현은 곧 자기 본성에 충실한 것이다. 독서를 통한 자아실현은 스스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다. 그러나 욕망의 사회는 그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억압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면 어른들은 말한다. “가만히 있어라혹은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해라.”

 

책은 좋은 삶을 살게 만드는 해답을 모은 문제 해답 모음집이 아니다. 그러나 좋은 삶을 이끌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본의 힘으로 먹고 사는 생리적 욕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런 인생의 나침반을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망가뜨렸다. 그들은 이라는 인생의 나침반을 사용할 줄 몰랐고, 특별한 사용 방법을 전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는 책을 보라고 강요하다가 다 크면 책 보지 말라고 꾸짖는다. 어른이 하는 말을 믿고 우리는 어렸을 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책을 읽었다가 어른이 되면 책을 읽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우리는 언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입시제도 여건상 중고등학생 때 책을 즐겨 읽지 못했다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독서량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일단 20대는 체력이 좋은데다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도 충분하다. 늙으면 책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노안이 찾아오면 평소에 잘 보이던 활자는 희매하게만 느껴지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늙을수록 공부를 시작하기가 힘든 것처럼 독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무식해지지 않으려면 최소한 대학생 때 책을 많이 두는 것이 좋다. 한 달에 열 권, 일 년에 백 권 정도 읽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독서의 중요성을 몸소 경험해봤으면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 대학이 전문적 바보(교수)가 단순한 바보(대학 졸업생)를 양산하고, 이들 바보 집단을 이끄는 바보 보스(관료)들이 교육정책을 주도한다고 지적했다. 유사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독서 실태에 연결해서 볼 수 있다. 바보 집단을 이끄는 바보 보스만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 미래 세대를 키우는 바보 부모도 등장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독서량이 감소하는 라이프 사이클을 고치지 못한다면 진짜 무식한 관료, 부모가 많아질 수 있다.

 

내 주변에 벌써 결혼하고 자식을 둔 친구들이 생겨난다. 친구들 중에 독서와 담 쌓는 녀석들이 많다. 십 년이 지나면 친구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만약에 친구가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잔소리하는 걸 보게 된다면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진지 빨지 말고, 너나 책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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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7-2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아침에 이 기사를 모두 읽었는데 '증세'가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을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나는 게 자연스런 이치인데, 그 많은 시간들을 '책 읽는 즐거움'도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나 서글픈 일이 아닌 듯싶어요.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빨리 추스려서 요즘 흔히들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쪽으로 빨리 방향을 틀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4-08-04 21: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학생들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서 독서의 즐거움을 먼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jahyhee 2014-08-1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저도 저 기사 보고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는데.. 독서의 수많은 장점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사는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