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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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가끔 노력도 우리를 배신할 때가 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있을까?” 요즘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최근에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은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매직 넘버이다.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연습한 것과 같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은 2009년에 말콤 글래드웰이 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다. 김연아 선수, 비틀스,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진정한 성공 요인도 재능보다는 수많은 시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스포츠 기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이 ‘1만 시간의 법칙’을 뒤집는 내용을 주장했다. 선천적 재능에 손을 들어줬다.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세기를 열광하게 만드는 축구 천재이자 라이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꾸준한 노력보다는 특출한 ‘스포츠 유전자’(Sports Gene)를 가졌기 때문이다. 1만 시간 훈련을 해도 제2의 메시, 호날두가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도 노력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스포츠, 예술 분야보다 공부 분야에서 재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1만 시간, 아니 그 정도 시간을 공부하는데 투자를 하면 성적이 향상될 거라는 기대는 한낱 희망에 불과했던 것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노력이 가끔 배신하는 슬픈 진리는 틀리지 않다. 십년 전에 EBS에서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챙겨본 적이 있었다. 밥 아저씨라고 소개된 로스는 시종일관 인자한 눈빛과 미소, 그리고 단아한 말투, 가벼운 붓놀림만으로, 신기하게 30여분 넘는 짧은 시간에 눈이 휙 돌아갈 만한 멋들어진 풍경화를 그렸다. 그 때 밥 아저씨는 “간단하죠?”, “참 쉽죠?”를 연발하면서 그림 그리는 순서와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밥 아저씨처럼 따라하면 그와 같이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밥 아저씨의 손에 탄생된 멋진 그림보다는 붓과 나이프의 손놀림이 더 예술적이었다. TV로 보면 쉽게 보이는 테크닉 같지만, 이제 막 붓을 쥐기 시작한 초보자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장면일 뿐이다. 나름 밥 아저씨가 나오는 TV 브라운관에 집중하면서 따라해보지만, 아름다운 그림은커녕 괴상한 낙서를 그릴 뿐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하다 가랑이 찢어지는 법이다. 이처럼 우리가 밥 아저씨의 덥수룩한 수염을 때릴 정도 수준에 이르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 좀 잘 찬다고 해서 상대방을 제치고 공을 패스할 수 있는 뛰어난 발재간을 가진 '월드 클래스' 수준의 메시가 누구나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성공을 위해서는 약간의 재능과 특별한 기회, 주변 환경, 사회적 체제 등도 필요요건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진정한 성공 요인이 재능보다는 수많은 시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 하나를 더한다면 연습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와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Scene #2  글쓰기는 훈련만 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비록 스포츠, 공부에서 노력이 우리를 배신하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노력해도 안 된다는 사실, 즉 자신의 실력 수준을 이해하고 있다면 다른 분야로 도전할 수 있지 않은가.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을 본인이 잘 알고 있으면서 고집 부린다면 거기에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 그리고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모든 분야가 노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재능이 2% 부족하더라도 누구나 노력하면 충분히 성취 가능한 최고의 분야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도전하고 노력하면 충분히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분야를 글쓰기로 꼽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쓰면 된다. 글쓰기 능력도 타고난 재능으로 가진 문필가도 있지만, 글 쓴 사람들 중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천재는 많지 않다. 4살 때 벌써 바이올린을 능숙하게 켜기 시작했다는 음악 천재 모차르트나 1부터 50까지 숫자를 단번에 계산할 정도로 어렸을 때 암산에 능숙한 수학 천재 가우스는 있어도 이제 막 글을 떼기 시작한 어린 시절에 문단을 놀라게 할 정도로 글 잘 쓴 문필 천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단, 예외가 있다면 고종석이 글쓰기 특강 중에 직접 언급한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있다. 그는 10살 때부터 시를 쓴, 재능이 많은 문필가에 속한다.

 

그러나 고종석은 글쓰기에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충분한 연습으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 글을 쓰고, 또 여러 번 써서 언어를 다를 줄 아는 감각을 익혀나간다. 사실 글쓰기 연습을 강조하는 고종석의 말은 평범하면서도 전혀 새롭지가 않다. 글 좀 잘 쓴다는 명사들이나 글쓰기 테크닉을 알려주는 수많은 책에서도 글을 많이 쓸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즉 삼다(三多)를 강조했다. 삼다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방법론이다. 많이 책을 읽고, 많이 글을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 글을 잘 쓰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

 

 

 

 Scene #3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린 글쓰기 특강 

 

고종석의 글쓰기 특강은 여타 글쓰기 책처럼 글 쓰는 테크닉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교양과 지식도 소개한다. 특히 아름다운 모국어 즉, 한국어로 글을 써야하는 이유를 언어학의 기초 지식(시니피앙, 시니피에, 랑그, 파롤)을 언급하면서까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가 글 쓰면서 흔히 잘못 쓰거나 혼동하기 쉬운 세밀한 문법을 지적한다.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힘이 생긴다. ‘적(的)’과 ‘의’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복수 표현 ‘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 고종석의 글쓰기 특강은 자신이 권하는 ‘물고기 잡는 법’이 생겨난 이유와 그와 관련된 곁다리 지식까지 설명한다. 이렇다보니 그의 특강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이다. 가끔 특강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옆길로 샌다. 알짜배기 테크닉을 원한 독자라면 지식이 버무린 글쓰기 특강이 자칫 지루하게 여길 수 있다. 작년 석 달 동안 숭실대학교에서 진행된 특강 내용을 채록했기 때문에 고종석의 목소리가 울리는 특강 장소에 온 듯한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읽다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 발견된다. (고종석이 가르쳐준 테크닉을 어느 정도 숙지한 독자라면, 책 내용 속에 어색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고종석의 글쓰기 특강은 배보다 배꼽이 큰 책이다. 특강 때 나온 내용을 전달하는데 책 한 권의 분량만으로도 부족했다. 결국 분권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1권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는 출판사의 의도가 엿보인다. 아마도 이전에 나온 글쓰기 테크닉을 다룬 서적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Scene #4  테크닉 습득보다 중요한 건 글을 고치려는 의지

 

그러나 테크닉을 눈으로 읽고, 안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구양수의 삼다를 독자가 직접 실천해야 한다. 이 책을 글 잘 쓰는 방법을 상당히 지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알려주는 교양서적 정도로 읽었다면 그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 오독이다. 시간 낭비에 가까운 오독을 피하려면 실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실전이 가장 중요하다.

 

고종석은 2002년에 자신이 쓴 『자유의 무늬』에 나온 문장을 인용해서 첨삭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 본인이 자신이 쓴 문장에 대해 잘못 썼음을 시인하고 직접 고치는 것이다. ‘셀프 첨삭’ 사례는 다른 글쓰기 테크닉을 소개하는 책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첨삭은 말 그대로 문장 일부를 고쳐 쓰거나 새롭게 첨가하는 과정이다. 첨삭과 비슷한 의미로 흔하게 사용하는 것이 ‘퇴고’이다. 우리 사회는 글쓰기를 요구한다. 학부생 시절에 교수님은 리포트로 우리를 괴롭혔고, 졸업하면서도 대학생활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논문을 써야 한다. 취업하기 위해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며, 직장 생활에 적응될 무렵에 업무에 관한 보고서의 압박감을 겪는다. 글을 많이 써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리포트, 논문, 자기소개서 등 첨삭해주는 전문가가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가 알려준 첨삭을 통해서 고친다면 이전보다 더 읽기 좋은 글로 변신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첨삭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글쓰기는 뛰어난 실력 향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내가 쓴 글을 상대방에게 읽히도록 함으로써 글을 고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본인이 직접 읽고, 고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눈에는 완성된 글이 무척 잘 쓰고, 멋져 보일 터. 하지만 글쓰기 고수의 날카로운 눈은 작은 것이라도 지나가지 않는다. 그들은 어색한 문장을 골라낸다.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예전에 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때 보지 못했던 어색한 문장과 논리성이 결여된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즉, 글을 고치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상태일수록 옥에 티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퇴고 방식이다. 삼다 중의 다상량. 글쓴이는 퇴고하는데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퇴고는 말이야 쉽지, 의외로 실천하기 어려운 글쓰기 과정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퇴고는 글쓴이 입장에선 부족한 글쓰기 실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대방이 자신이 쓴 글을 지적하면 대다수 글쓴이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다. 본인은 잘 쓴 글이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이 문장이 어색하다, 고쳐라”라는 식으로 일일이 지적받는다면, 글 쓴 사람 입장에서 기가 한풀 꺾이는 일이다. 퇴고를 하기 위해서 여러 상대방에게 읽히도록 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능력을 의심치 않는 자존심 센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혼자서라도 퇴고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귀찮더라도 글을 많이 쓰고, 많이 고치는 것도 중요하다. 몇 번 고치느냐 횟수가 중요하지 않다. 퇴고도 글쓰기 훈련의 일환이면 노력의 자세다. 퇴고를 외면하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부족한 글쓰기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아마추어나 다름없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글쓰기 훈련을 외면한다면

절대로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글쓰기도 후천적 노력으로 통해

재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과연 글쓰기 특강 2권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렇지만 2권에 있을 테크닉을 기대하는 것보다 1권에 있는 테크닉을 실전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단 평소에 쓰고 싶은 글을 써보고, 또 고쳐 보라. 1만 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거기에 들인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글 한 편 쓰는데 소모된 시간이 많거나 퇴고를 수십 번 이상, 아니 수백 번 했다고 해서 글쓰기에 재능이 붙었다고 자만하면 금물이다. 제아무리 열심히 운동해서 복근에 스펙을 완성됐더라도 운동을 멈춘다면 다시 원래 똥배로 돌아간다. 과거에 명성을 날리던 운동선수도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쓸쓸히 은퇴를 하게 된다. 글쓰기도 일종의 운동과 비슷하다.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고치고, 많이 생각하기. 글쓰기는 손과 머리로 하는 지적 운동이다. 몸꽝이 운동 열심히 하면 몸짱이 되는 것처럼 글꽝도 열심히 쓰면 글짱이 된다. 당신의 노력이 간절한 꿈으로 이루어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에 자신 없다고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직접 손에 펜을 들고 원고지에 부딪혀 봐야 한다. 그리고 못 쓰고 퇴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만큼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글쓰기 분야에서만큼은 노력이 당신을 배신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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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0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4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07-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 책인데
나는 고종석의 책을 많이 안 읽어서일까? 아니면 그냥 좋아해서일까
아직은 좋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특히 그가 드는 여러 예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해.
근데 다 읽고나면 나도 별 세 개 줄 수 있으려나?ㅎ
셀프 첨삭 좋은 말이긴 한데 내 글 고쳐 쓴다는 게 또 보통 고역이 아냐.
귀찮기도 하고. 그런데 또 눈에 띄면 창피한 마음에 얼른 고쳐 쓰긴 하지.
그런데 이 '적'이나 '의'를 뺀다는 게 의외로 쉽지 않더라.
암튼 이 책을 읽고 있어설까? 요즘엔
문장 공부도 좀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넌 이 더운 날에도 좋은 책 많이 읽네.
부럽다. 건강 잘 챙겨.^^

cyrus 2014-07-24 22: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런 더운 날에 컴퓨터 앞에서 글 쓰다 고치고 반복하는 일이 고역이죠 ㅋㅋㅋ 사실 서평 대회나 이벤트에 응모하는 글을 쓸 때 첨삭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모 일간지에 칼럼이 운 좋게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퇴고를 엄청 많이 했어요. 글 한 편 완성시키고 그 다음날 읽어보면, 어색한 문장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ㅋㅋㅋ 누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날씨가 장난 아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