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찌 할 수 없으면 침묵을 지켜야 해요. 누구도 절망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켜서는 안 돼요. 그 때문에 내 서투른 글은 모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빛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내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빠져들 뿐이에요. 나는 막다른 골목이에요."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341~342쪽)

 

 

 


 Scene #1  멍하니 글을 읽다  

 

작가들마다 그의 이름 뒤에 붙는 꼬리표가 있다. 그러한 꼬리표는 자못 진부할 수도 있으나 그 작가의 세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들춰보면 거기에 적혀있는 단어는 '불안'이다.

 

카프카는 자신이 쓴 글을 분신처럼 여겼다.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한 서투른 인생처럼 글도 서투르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생각했다. 좀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막스 브로트 다음으로 막역한 벗이었던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의 소설을 옹호하면 작가 본인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단편을 모은 작품이 막스 브로트가 몰래 출판된 사실을 카프카가 뒤늦게 알았을 때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카프카의 글은 막다른 골목과 같다. 단편소설은 대체적으로 짧은 분량이나 내용을 한 번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들마다 카프카의 글을 이해하는 반응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의 대표작인 '변신'만 읽고 카프카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 전개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짤막한 글은 낯설다. 어떤 글은 우화 형식을 취한 것도 있지만, 주변 일상을 목격하거나 가끔씩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단상에 가까운 것도 있다. 짧다고 쉽게 보면 안 된다. 카프카적인(Kafkaesk) 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분위기에 독자는 카프카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만든다. '변신'을 읽었던 느낌과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라는 단상이 있다. 나는 이 글을 그저 멍하니 읽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조르조 데 키리코 「거리와 우울의 신비」  1913년

 

지금 급히 다가오는 이 봄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아침 하늘을 잿빛이었다. 그런데 이제 창가에 가보면, 깜짝 놀라서 창문 손잡이에 볼을 기댄다. 아래엔 분명 벌써 지고 있는 태양빛이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는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고, 그리고 바로 연이어 그 소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벌써 지나가버렸고, 그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주 밝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전문, 31쪽)

 

잿빛 하늘이 덮친 봄날에 순진한 소녀를 따라가고 있는 남자의 그림자. 카프카는 창 밖 너머 일상적인 풍경을 그대로 묘사한 걸까?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다. 아주 밝은 표정을 띤 소녀의 뒤를 밟는 남자의 모습은 위협적이다. 일상에 숨겨진 채 언제 우리를 습격할지 모르는 일상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일까? 아니면 '남자의 그림자'는 카프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을 상징한 것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카프카의 묘사는 이듬해 세상에 공개되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 「거리와 우울의 신비」를 예언한 것처럼 느껴진다. 열주로 이어진 건물 샛길로 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며 접어든다. 불안함을 고조시키는 노란색 길 끝에는 지팡이를 든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비친다. 카프카가 묘사했던 소녀를 뒤쫓는 남자의 그림자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렇듯 카프카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초조함을, 꿈같은 비현실성을 환기시키는 글을 남겼다.

 

그나마 이런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다. 그렇다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떤가.

 

진짜 인디언이라면, 달리는 말에 서슴없이 올라타고,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땅 위에서 이따금씩 짧게 전율을 느낄 수 있다면, 마침내는 박차도 없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마침내는 고삐 없는 말고삐를 내던질 때까지, 그리하여 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다듬어진 광야뿐일 때까지, 벌써 말 목덜미도 말머리도 없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전문, 41쪽)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와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1913년에 출판된 <관찰>에 수록되었다. 그 당시 유럽의 독자들은 이런 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뜬금없이 카프카는 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 폐결핵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카프카는 호전적 성격에 건강한 체력을 지닌 인디언을 향한 무한한 동경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가까운 해석이다. 카프카가 인디언을 동경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의 목소리를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에 인디언에 관한 카프카의 증언을 찾아볼 수 없다.

 

 


 Scene #2  고독하고 예민한 영혼의 독백    

 

단편과 단상 그리고 우화는 장편소설 집필을 염두하고 쓴 다분히 카프카 개인을 위한 소묘처럼 느껴진다. '법 앞에서'는 『소송』후반부에 인용했고, '화부'는 『실종자(아메리카)』의 1장에 재등장한다. 미완성이나 다름없는 은밀한 소묘를 카프카가 발표를 불편하게 여긴 이유가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막다른 골목의 벽을 조금씩 뚫어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 세계는 바로 카프카 월드, Kafkaeask, 카프카이스크. 비록 본인은 자신이 쓴 글을 서투른 문장으로 여겼고, 미완성으로 남게 되지만 글쓰기는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지탱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병마의 고통과 고독, 불안감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의 시간이었다. '굴'이라는 단편소설에 나오는 미지의 짐승이 굴을 파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 것처럼 Kafkaeask는 카프카의 문학적 안식처다. 

 

카프카의 글은 해석의 다의성으로 유명하다. 기괴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으로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 카프카의 문학 세계는 세기를 달리한 지금도 여전히 끊임없는 분석과 연구의 대상이다. 하지만 함축적 비유로 헝클어진 카프카 언어의 신비한 밀림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불안'이라는 핵심적 요소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글을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로 개인적인 약점이 기록된 글이기에 발표할 생각이 없다고 야누흐에게 고백했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프카적', 'Kafkaeask'라는 수식어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Kafkaeask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고독', '불안', '공포', '좌절'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단어는 카프카의 삶과 무척 연관성이 깊다. 카프카는 모태 고독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고독감을 느껴야 했다. 한 마리의 불행한 유대인 까마귀(그의 이름은 '까마귀'를 의미하기도 함)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는 평생 실패를 반복했다. 직장생활을 너무나 싫어했지만 평범한 월급쟁이로 생을 마쳤다. 결혼을 원했지만 독신을 벗어나지 못했다. 허약했고 불면증까지 있었다. 가족과도 사이가 나빴고, 특히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업가’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버리는 ’변신’ 속 그레고르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글은 섬뜩할 만큼 부정적인, 고독하고 예민한 영혼의 독백처럼 느껴진다.

 

나는 전차 승강장 위에 서 있다. 이 세계에서, 이 도시에서, 나의 가족에게서 나의 처지를 되돌아볼 때 나는 정말 불확실하다. 더군다나 내가 어떤 방향에서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요구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나는 임시로라도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승객’ 중에서, 34쪽)

 

글을 써도 불행한 삶과 지병이 완전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독의 그림자가 카프카의 마음을 지배할수록 글은 앞으로 쭉 나갈 수 있는 길이 되지 못한 채 꽉 막힌 벽이 되고 말았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희망의 단서마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카프카의 절규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벽에 부딪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모르겠다”하고 나는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정말 모르겠다. 만약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물론 아무도 안 오는 것이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산으로의 소풍’ 중에서, 26쪽)

 

또 다른 짧은 글 속에 고독, 불안 앞에서 패배한 카프카의 무기력한 한숨이 들려온다. 

 

“너는 왜 그렇게 한숨을 쉬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다신 회복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불행이니? 우리는 정말 그것에서 회복될 수 없겠니? 정말 모든 것이 다 망쳐진 거니?” (‘국도의 아이들’ 중에서, 16쪽)

 

 


 Scene #3  고독과 함께 살다     

 

카프카는 외로운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고독과 불행의 쓴맛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도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그리워했다. 벽을 뚫을 수 있는 힘만 있었더라면. 하지만 카프카에게는 그런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군중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골목길로 난 창문을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독신자로 남는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로 생각된다. 저녁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에는 나이든 사람으로서 위신을 지켜가며 한데 끼어줄 것을 어렵게 청해야 하고, 몸이 아프게 되면 자신의 침대 한 구석에서 몇 주일씩이라도 텅 빈 방을 바라보아야 하고, 언제나 대부분 앞에 작별을 해야 할 뿐 한 번도 자신의 부인과 나란히 층계를 올라갈 수 없고... ('독신자의 불행' 중에서, 27쪽)

 

고독하게 혼자 살면서도 때로는 어디엔가 관계를 갖고 싶은 자, 하루 시간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 직업 관계의 변화 또는 그와 같은 것들을 참작해서 그저 매달릴 수 있는 어떤 팔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자는 골목길로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골목길로 난 창문' 중에서, 40쪽)

 

카프카는 젊은 나이에 '고독'이 만들어 낸 마음의 병 말기 환자였다. 자신이 '고독'이 만들어 낸 극심한 환자라는 것을 잘 알기에 자신의 글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자신처럼 절망에 패배한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짧은 글을 읽어나가면 카프카를 따라다니던 불안의 그림자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파편 같은 문장들은 우리는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다. 카프카 월드에 들어오기 전에 독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 카프카 월드에 갇혀버린 순간, 불안의 그림자가 당신을 급습한다. 계속 쫓아오는 불안의 그림자를 따돌렸다면 이제 자신의 세계에 숨어버린 카프카를 만난다. 카프카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카프카를 찾을수록, 그는 더 깊숙한 곳으로 숨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프카 월드에 가고 싶다면 구스타프 야누흐의 조언을 귀 담아 들을 것을 권한다. 카프카를 너무나도 잘 아는 그가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는 미로 같은 카프카 월드를 탈출하는데 요긴한 실타래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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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는 저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에요. ㅎ
카프카에 대해서는 박홍규 교수님이 쓰신 전기가 있어요. 한번 보시면 좋을 듯 싶어요. 우리가 여태 알았던 카프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제시하거든요.
전 카프카가 낮에는 산재보험처리 공단 같은 곳에서 노동자를 위해서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 참 마음에 들더라구요. 물론 그의 작품은 저 역시 여러 번 읽어도 이해 안가는 구절도 많고, 특히나 '성' 같은 경우는 '우라질 k'라고 외치며 책을 집어 던진 적도 있었죠. 푸하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말이죠.
카프타의 소설은 특히나 읽는 이의 자유를 무한하게 확장해 주는 것 같아요.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을 하지 않고 그는 다만 쓰고 우리는 읽고 우리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해 주니 말이에요. 그래서 그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것 같아요.
전 카프카가 불안이나 고독의 상징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
그의 책은 난해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카프카 그에게는 어떤 현실을 파괴시키고 나가려고 하는 경건함이 보인다고 할까요?
암튼 카프카는 참으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달의 리뷰 되신 거 와방 축하드려요. ㅎ
학교 생활은 재밌으세요. ㅋ 저도 직장 휴직 후 도서관에서 매일 생활 중이에요. 후후후

cyrus 2014-07-12 18: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루쉰님. 구스타프 야누흐라는 사람이 쓴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어보면 카프카라는 사람이 그렇게 병적으로 우울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어요. 내면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해야 될까요? 그의 대화를 보면 본인이 스스로 고독한 삶을 살고, 글이 발표되기를 원하지 않은 특이한 성격을 인정하더군요. 카프카가 발표한 단편이나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글을 읽어보면 카프카의 성격을 단적으로 규정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글은 정말 우울하고, 난해하고 또 어떤 글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도 있어요. 그것이 루쉰님이 말씀하시는 현실을 파괴하고 싶은 경건함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카프카의 글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어서 그만큼 카프카의 삶뿐만 아니라 글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취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졸업했고요, 저도 거의 도서관에서 생활하는데 예전처럼 책 읽을 시간은 많지 않네요. 공부하다가 머리 식힐 때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에어컨 바람 너무 맞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