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에 주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같은 유언을 남기고 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 4년이 지났다. 스님 입적 후 맑고향기롭게는 출판사와 스님의 저서를 절판키로 합의했다. 2011년 1월 이후 스님의 책은 일체 유통 판매가 중지되었다. 스님의 입적 소식에 평소 스님이 세상에 전하고자 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 보려한 사람들이 스님의 저서에 몰려들었다.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그가 자신의 책들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독자들과의 인연을 잘라내려는 싸늘한 칼날에 상처 받은 느낌이었다. 이제 서점에서 법정 스님의 책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마침 그가 쓴 책들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책을 사러 서점으로 가곤 한다.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들은 고인이 쓴 책들을 모아 특별 코너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책을 고르며 추모의 마음을 서로 나누게 된다. 나도 여기에 동참하고 싶었다. 스님의 입적 소식이 들었을 때 서점에 가서 스님의 대표작 『무소유』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당장 살 수가 없었다. 그 때 군 복무 중이라서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스님이 입적한 날이 2010년 3월 11일. 병장 3호봉(3개월째)이었는데 2011년 1월까지 스님의 책을 구입할 수 있어서 5월에 전역할 때 구입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구에 있는 대형서점이라 할 수 있는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땐 책을 못 구해서 크게 아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스님의 글을 중학생 때부터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참 좋아했지만, 직접 구입해서 읽어본 적은 없었다. 갑자기 스님의 유언 소식을 듣고 책을 찾는데 혈안이 된 내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마치 평소에 거들떠보지 않았던 하찮은 물건이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혹은 경제적 가치가 높아질 때 갖고 싶은 일종의 속물근성. 읽기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지기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후자의 독자였다.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 정신을 위배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끼리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무소유’, 27쪽)

 

육신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스님의 책을 향한 소유 관념을 버림으로써 나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빈손의 독자가 되었다. 언젠가는 스님의 책, 아니 스님의 글이 다시 독자들이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所有史)인 것처럼 마찬가지 우리 삶도 우리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소유사인 것은 분명하다. 절판 소식 이후에 온라인 서점이나 헌책방에 가면 스님의 책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가격이 상식을 넘어선다. 새 책 이나 다름없는 깨끗한 상태의『무소유』의 가격만 해도 1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스님이 저자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책들도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다. 인지도 높은 저자가 쓴 책이 절판본이 되면 서점에서 다시는 판매되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없다. 그 가치로 환산한다면 판매자는 가격을 정가보다 높게 책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부는 너무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알라딘 중고샵을 검색하면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으나 대부분 약간의 낙서나 사용한 흔적이 있는 ‘중’ 상태의 품질이다.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故 김수환 추기경)

 

김 추기경의 말씀처럼 아이러니하게도 가격이 비싸더라도 『무소유』을 포함한 스님의 책들은 소유하고 싶은 게 독자의 마음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스님의 책을 구입한 적은 없지만,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스님의 책을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샵 매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다.

 

 

 

 

 

 

 

 

 

 

 

 

 

 

 

 

 

사실 스님의 책을 다시 한 번 구입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그 때 스님이 번역한 고대의 불교 법전 『숫타니파타』를 반값할인으로 교보문고 매장에서, 『오두막 편지』는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진행된 세일 행사에서 운 좋게도 딱 한 권 남아있는 것을 구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소유』마저 구입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까지 스님의 책을 구한 것만 해도 정말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본다. 살면서 여복(女福)은 지지리도 없지만, 책복(冊福)만큼은 좋은 것 같다. 재미있게도 이 저자의 책만큼은 꼭 구하고 싶은 마음 혹은 소유욕이 들면 기가 막히게도 그 책이 내 눈앞에서 발견된다.

 

 

 

 

 

 

 

 

 

 

 

 

 

 

법정 스님의 책을 몇 권 더 구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대구에서도 열린 알라딘 중고샵 매장 덕분이었다. 가끔 스님의 책이 하루에 한 권에서 많게는 세 권 정도 고객이 이곳에 팔곤 한다. (이 글을 통해서 대구 중고샵 매장에 스님의 책을 파는 이름, 얼굴 모르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진리의 말씀, 법구경』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알라딘 중고샵 매장에서 직접 구한 것이다. 『법구경』은 올해 초에 대구시청 근처 헌책방에서 구했다.

 

 

 

 

 

 

 

 

 

 

 

 

 

 

 

알라딘 중고샵 매장을 남들보다 자주 들리는 편이라서 나름 큰 수확(?)을 거두지만, 여러 권 놓치는 경우도 꽤 많았다. 고객이 금방 판 책, 특히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스님의 책은 매장을 찾는 다른 고객들의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중고샵 매장에서 판매되는 스님의 책은 대부분 A 서가에 꽂혀 있다. ‘종교’ 분야의 책이 진열되는 B 서가나 에세이의 C 서가에 꽂혀 있다면 고객의 눈에 띌 확률은 적다. 그러나 항상 고객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다른 사람이 방금 매장에서 판 책들을 파는 A 서가에 꽂혀 있으면 모 아니면 도다. 검색해서 책이 판매되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당장 매장으로 간다 해도 이미 다른 고객이 벌써 구입한 뒤다. 특히 『무소유』는 세 번의 허탕 끝에 중고샵 매장에서 구한 것이다. 다행히 내가 구입한 『무소유』는 A 서가가 아닌 에세이의 B 서가, 특히 고객의 시선이 많이 닿지 않는 가장 제일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무소유』옆에는  『일기일회』도 있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버리고 떠나기』『서 있는 사람들』은 대구가 아닌 울산 알라딘 매장에서 구입했다. 지난 2월 말에 4박 5일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의 출발지가 울산이었다. 울산 버스터미널에 그 곳에서 4박 5일 여행에 동행하는 지인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버리는 바람에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울산 알라딘 매장에서 책을 구입하지 않고(!) 책만 읽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웬걸. A 서가에 법정 스님의 책, 그것도 세 권을 발견했다. 4박 5일 일정을 고려해서 여행 개인 경비를 쓰면 안 된다고 마음으로 다짐했건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안 사놓으면 여행가는 내내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세 권을 구입했다. 짐이 가득해서 비좁은 큰 배낭에 스님의 책 세 권을 넣은 채 나는 순조롭게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상하게 짐은 무겁지 않았다.

 

‘무소유’를 소유한다. 그동안 스님의 책을 구입한 이유는 스님의 글이 좋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소유욕을 버리지 못한, 이 못된 기질도 한 몫 하고 있다. 지금도 스님의 책을 펼치거나 가끔 책장에 따로 꽂혀 있는 스님의 책들을 보면서 일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과연 나는 책으로서 갖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로 이 책을 갖고 싶은 것인가? 소유하고 난 뒤에서야 소유욕을 경계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도 스님의 책은 어디선가 판매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거래’인 동시에 ‘장사’다. 서글픈 아이러니다. 스님은 평생 무소유를 설파했지만, 정작 스님이 떠난 자리는 소유욕으로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스님께서는 버리라 하는데 나는 더욱 더 쥐려한다.

 

사랑이니 무소유니 하는 진리를 말하긴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정 스님은 한평생 자신에게 칼날처럼 엄격하며, 단순하게 검소하게 살기를 원했고,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소유와 관계의 노예가 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얻고자 했다.

 

이 세상 ‘말의 공해’에 일조한 것 같아 조금이나마 말을 거둬들이는 차원에서 절판을 생각했다는 스님, 글과 말의 덧없음을 절판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깨우쳤던 스님. 그러나 중생은 여전히 마지막 길에 자신의 책들을 거두어간 스님이 야속하기만 하다. 『무소유』가 처음으로 중생들 앞에 등장했던 바로 오늘. 다시 한 번 『무소유』를 펼쳐보면서 표지를 쓰다듬어본다.

 

스님은 ‘베풂’보다는 ‘나눔’이란 말을 더 좋아했다. 도움을 주고도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상보시’ 원칙을 마음속에 새기고 실천하다 조용히 갔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버리고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기원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물질적 소유와 탐욕의 소유양식에서부터 창조하는 기쁨을 나누는 존재양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유와 탐욕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창조하는 기쁨을 통해 삶의 양식을 나누고 싶다. 스님이 떠나간 지 지금, 이 책들 가지고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스님이 풀어놓은 말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고, 함께 생각하고, 또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독서의 단상을 쓸 생각이다. 스님이 남긴 좋은 문장을 발췌해서 소개하고, 문장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 쓸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죽을 때까지 스님의 책이 다시 판매되지 않는다면 그 때가지 구입한 책들을 ‘맑고향기롭게’ 재단에 기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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