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프레드 진네만 감독, 메릴 스트립 외 출연 / 영화인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그들은 매우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릴리안(제인 폰다 분)은 다소 다혈질적이고 자신만의 세계를 소중히 하는 구심적 인간임에 비해, 줄리아(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분)는 침착한 자신감에 차 있고 부당한 세상을 바꾸려는 흐름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원심적 인간이다. 그들이 영화상의 ‘현재’라고 설정된 시점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즉 회상 속에서만 같이 있을 뿐이지만 두 사람은 잠재의식 속에 서로 단단히 엮여 있는 채 상대방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퍼부으며, 자신에 대한 모욕보다 상대방에 대한 것을 더 참을 수 없어 하는 소울메이트. 영화 속에서 그들, 줄리아와 릴리안이 현재 시점에서 만나는 시간은 고작해야 몇 분, 길어야 십 몇 분을 넘지 않겠지만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줄리아>인지 납득이 갈 것이다. 극중 내레이터가 릴리안이기 때문이다. 실존하는 작가인 릴리안 헬만의 자서전을 기초로 한 이 영화는, 실화가 주는 특유의 느낌을 릴리안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유도한다.

 

인상적으로 아름다운 영상-모든 것이 새벽빛으로 푸른 호수 위의 작은 조각배에서 혼자 낚시 대를 드리운 한 여자. 센티멘털한 표현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쓸쓸해서 가슴이 아려올 정도다-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릴리안이라는 한 여성의 관점으로 모든 사건들이 서술되고 있다. 배 위에서 읊조리는 그녀의 독백에는 질풍의 시기를 살아남은 생존자의 죄책감과 외로움, 사랑하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과의 관계와 상실감, 역사의 격변과 맞물린 개인의 경험, 기억의 문제는 우리를 충분히 영화에 감상적으로 몰입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생존자들이 가진 일종의 부채감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가 경험으로부터 만들어낸 집단적인 기억으로부터 비롯된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믿을 만한 기록으로 당시에 받아들인 역사와 이것이 사회적으로 수용 또는 승인된 집단적 기억은 우리 개인 및 집단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돕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릴리안의 현재를 지배하는 줄리아와의 관계는 기실 과거에 같이 경험한 것들의 기억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바로 거기에서 그 관계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릴리안이 겪은 2차 대전 전후 시기의 유럽은 적어도 줄리아와 그녀의 동지들, 일련의 사건들과 뗄 수 없는 어떤 복합적인 덩어리와 같다.

 

릴리안이 정치범들을 구해낼 자금운반책으로 나섰을 때에도 어떤 정치적인 사명보다는 줄리아와의 우정이 유태인인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을 경유하고자 한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물론 없다. 그녀는 작가이고 평범한 소시민이다. 줄리아는 명문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범인류적이고 사회의식에 눈을 뜬 소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옥스퍼드 의과대학을 그만두고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된 것은 어쩌면 그 상황에서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는 그 정도다. 그러나 릴리안의 시선과 삶을 통해 줄리아의 비중이 얼마나 크고 서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잘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줄리아의 인생도 거의 아는 듯한 느낌이 들며, 그녀에 대한 친근감까지 느낄 수 있다. 바로 릴리안이 줄리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애정이 화면 밖에까지 뻗어 나와 많은 관객들이 가지고 있을법한 기억과 감정들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곁에 있지는 않지만, 잊지 못할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아름다운 친구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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