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 당신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하는 뜻밖의 힘
애덤 알터 지음, 최호영 옮김 / 알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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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 피겨 드레스 색깔로 알 수 있다?

 

‘약물 복용은 금지하면서 레슬링, 태권도, 권투 종목에서 두 선수 중 한 명에게만 빨간색 유니폼을 입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43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해 무패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레슬링의 정지현, 이스트반 머요로스, 아르투르 타이마조프, 권투의 알렉산데르 포벳킨, 오들라니에르 솔리스, 태권도의 문대성 선수는 모두 파란색이 아닌 빨간색 유니폼을 착용하도록 배정받았다. 당시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자유형 레슬링, 태권도, 권투 종목의 모든 경기 결과를 분석한 결과, 사소한 요인으로도 승패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 수 있는 경우에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전체 시합의 62%를 이겼다. 이쯤 되면 빨간색이 ‘심리적인’ 스테로이드 약물처럼 작용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빨간 옷을 입은 선수가 상대 선수보다 더 우월한 느낌을 받는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선수들의 복장 색깔과 경기 판정과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경기를 판정하는 심판도 선수들의 복장 색깔에 영향을 받아 편견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42명의 태권도 심판들을 대상으로 빨간색 보호장비와 파란색 보호장비를 각각 착용한 두 선수 갑과 을의 경기 비디오를 여러 번 보여준 뒤에 채점을 하는 실험을 했다. 여기서 21명의 심판은 원래 경기 비디오를 보면서 채점했고, 나머지 심판은 선수들의 보호장비 색깔이 반대가 되도록 디지털 기술로 조작한 경기 비디오를 보고 채점했다. 다시 말하자면 원래 빨간색 보호장비를 착용한 갑은 조작된 비디오에서는 파란색 장비를, 반대로 파란색 보호장비를 착용한 을은 빨간색 장비를 착용했다.

 

보호장비의 색깔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객관적인 채점 규정으로 판정을 내린다면 갑과 을은 똑같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 심판은 전혀 다른 판정을 내렸다. 원래 경기 비디오에서 갑이 을보다 1점 많은 8대 7로 승리했다. 반면 조작된 경기 비디오에서 빨간색 장비를 착용한 것으로 조작된 을(원래 비디오에서는 파란색 장비 착용)이 8점을 받아 승리했다. 결국 심판들은 똑같은 경기를 보면서 빨간색 복장의 선수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준 것이다.

 

그래도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한동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논란의 소치 동계 올림픽 이슈를 다시 언급할 수밖에. 지금도 러시아의 소트니코바의 금메달 수상에 대해서 전문가와 해외 언론들은 심판들이 개최국인 러시아 선수에게 과도하게 높은 점수를 줬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국민도 그렇고, 전 세계 사람들(러시아를 제외한)은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의 금메달은 소트니코바가 아니라 김연아라고 주장한다. 개최국으로서의 홈 어드밴티지, 거기에다가 러시아 피겨 연맹 회장의 부인이 피겨스테이팅 여자 싱글 경기의 심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올림픽이 끝난 지금도 편파판정 의혹이 싹 가시지 않고 있다.

 

심판진 구성의 문제도 있었지만, 여기서 선수들의 복장 색깔이 심판 판정에 영향을 주는 실험 결과를 김연아 대 소트니코바 경기에 대입해보면 판정의 부당함을 발견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쇼트 프로그램에 참가한 소트니코바와 김연아 선수이다. 이 두 선수가 입은 피겨 드레스 색깔은 주목하시라. 소트니코바는 빨간색, 김연아는 옅은 노란색이었다.

 

경기 후 소트니코바의 쇼프 프로그램 점수는 74.64점으로 전체 2위, 김연아는 74.92점으로 근소하게 앞선 점수를 받아 1위에 올랐다. 쇼트 프로그램 경기가 끝난 뒤에 해외 언론들은 소트니코바의 쇼트 점수가 거품이라고 주장했다. 소트니코바의 기술 기본점수는 김연아보다 1점 낮았지만 가산점이 9점대로 더 많았다. 경기 전까지 그리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던 소트니코바는 소치 올림픽 전까지 자신의 쇼트프로그램 점수가 70.73점이었지만 이날 자신의 최고 점수 기록을 무려 4점 가까이 끌어올린 것이다.

 

선수 복장 색깔 실험 결과를 생각한다면 러시아 출신 심판들은 자국 출신에, 그것도 ‘빨간색’ 피겨 드레스를 입었고, 30명의 선수들 중에서 29번째로 출전한 소트니코바에 후한 가산점을 준 셈이다. 다만 소트니코바처럼 빨간색 계열의 피겨 드레스를 입고 출전한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쇼트 프로그램 전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소트니코바가 나오기 전에 몇 명의 선수들이 빨간색 계열의 피겨 드레스를 입었다면 복장 색깔과 판정의 연관성을 설명하기에는 타당성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포츠심리학계에서도 빨간색 복장이 불공정한 판정으로 유도하는 결과에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Scene #2  난폭한 주정뱅이를 온순하게 만든 색깔은?

 

다음과 같은 스포츠 종목 사례 이외에도 인간의 행동, 감정, 판단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외부의 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 붉은색 복장 선수가 유리한 판정을 받는 것처럼 사소하게 보는 색깔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이와 비슷한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분홍색 주정뱅이 유치장(Drunk Tank Pink)’이라는 것이 있다. 분홍색이 미국의 소도시 구치소에서 난폭한 술주정뱅이를 가두는 유치장 벽면에 칠해지면서 나온 말이다. 분홍색 유치장에 주정뱅이들을 가두자 놀랍게도 온순해졌다고 한다. 분홍색이 사람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색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까. 색깔뿐만 아니라 시선, 공간, 온도, 편견, 문화,·상징, 이름, 명칭도 우리의 감정을 지배한다. 더운 날씨에 우리가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짜증나는 이유도 온도의 영향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 국가에 대한 일종의 공포증과 반감을 가진 미국인들은 터번을 두른 사람만 보면 잠재적인 위험인물로 인식했는데 이것은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주장의 밑바탕에는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면 미국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한다는 내용의 ‘나비효과’ 이론이 있다. 사소한 힘들이 복잡한 연쇄반응을 거쳐 우리의 마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소해 보이는 요소들과 그 영향을 인지하면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다.

 

 

 

 Scene #3 사소한 것이 당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

 

의외의 조건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과정의 사실을 다양한 심리 실험과 자료 조사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혀진다. 그러나 책에서 소개된 모든 실험과 사례들이 다 설득력이 높더라도 일부는 실생활에 적용하면 실험 결과대로 그대로 재현될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심리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자명하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아주 작은 사소한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지배받는다는 것. 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미국의 심리상담 치료사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처럼 우리는 사소한 것에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근심에 가까울 정도로 목숨까지 걸 수준이 아니라면 이제는 사소한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이성의 힘을 빌리는 합리적인 동물에 가까울 수는 있어도, 절대로 신에 가까운 완벽한 합리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외부적인 조건은 간혹 냉철한 이성을 조종하여 우리 삶에 조용하게 다가와서 장난칠 때도 있으니까. 이런 갑작스럽고 짓궂은 장난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적인 힘을 세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외부적인 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올바른 판단과 행동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문 속 ‘오늘의 운세’에 나오는 내용만으로 우리 삶을 결정할 수 없다. 운세 내용대로 100%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래도 내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인 조건을 살펴보자. ‘오늘의 운세’ 대신 오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사소한 주변을 둘러보자. 혹시 아나? 오늘 외출할 때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 밖의 날씨 상태 심지어 당신의 이름까지도 당신의 하루 운세를 결정짓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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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3-0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확실히 스포츠 선수들은 유니폼의 색깔에 따라 눈에 잘 띄기도 하고,
잘 안 띄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심판들이 빨간색 유니폼의 선수에게 더 눈이 가는 것이
남성들이 빨간 립스틱, 드레스, 구두 등에 끌리는 것과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cyrus 2014-03-06 22: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실 이 책, 일상 속 심리학 사례를 설명한 책이긴한데 일부 내용은 우리가 이미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많아요. 남성이 빨간 립스틱, 옷에 끌리는 것처럼요. 이 책에서도 은빛님이 언급하신 내용이 유사하게 소개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