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나랑 비슷한데...’

 

 

 

 

 

 

 

 

 

 

 

 

 

 

 

 

 

다음의 글을 읽고 스스로에게 적용해보자.

 

 

당신은 규율을 지키거나 제약이 따르는 상황을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의 규칙과 통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지나친 망설임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 당신은 만족할 만한 증거가 없으면 타인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의견을 불편해하는 타인이 있을까 봐 조심하는 편이다.

 

 

당신은 내향적이며 과묵한 편이다. 하지만 공감을 확신하는 상대에겐 외향성이 발휘되고, 과감해진다. 한마디로 기회가 오면 충분히 사교적인 사람으로 변모한다. 당신은 가끔 비현실적일 때도 있다. 숨어 있던 진짜 아버지가 나타나 수억 짜리 건물을 증여한다거나, 현빈 같은 남자가 우주여행을 하자고 프러포즈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의 당신은 알뜰하며, 현실에 만족하는 편이다.

 

 

위의 글이 자신의 성격과 어느정도 부합될까. 심리학자인 B.R. 포러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평가서가 자신의 성격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 점수를 매기라고 주문했다. 결과는 5점 만점에 4.26점.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다는 답을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평가서는 신문의 점성술 내용을 대강 짜맞춘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성격특성을 자기만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심리적 경향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19세기 말 곡예단에서 사람들의 성격과 특징 등을 알아내는 일을 하던 바넘에서 유래했다. 혹은 성격 진단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증명한 포러의 이름을 따서 '포러 효과'라고도 한다.

 

바넘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서커스단을 이끌었던 유명한 곡예사다. 그는 서커스 도중에 관객을 아무나 불러내어 직업이나 성격 등을 알아맞히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신통력이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보편적으로 들어맞는, 이를테면 "당신은 활발한 성격이지만 때로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내성적인 면도 가졌군요"라고 말해도 관객은 저절로 "어쩌면 그렇게 잘 맞힐까?"라고 감탄하기 마련이었다. 바넘 효과는 유행가를 자신의 이야기인 양 착각하는 현상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사람들이 답답할 때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서 그의 신통력에 탄복하는 것도 바넘 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 사주는 사주일 뿐

 

어제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 ‘사주점에 빠진 친구’가 등장했다. 점에 빠진 친구는 손금, 관상, 사주를 보느라 용돈을 다 썼고, 아침마다 오늘의 운세를 본 후 그곳에 적힌 내용대로 실천했다. 그리고 오늘의 운세에 ‘사람들 앞에서 말조심할 것’이라고 나오면 밤 12시가 지날 때까지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오늘은 차조심 할 것’ 이라는 운세를 보면 그날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유명한 점집의 복채를 준비하기 위해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운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방송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사실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운세와 점을 그대로 믿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 심적으로 피곤하거나 친밀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또 사주 결과 때문에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파혼 소식을 전해왔다. 이유가 황당하기 그지없다. 사주를 봤는데, 서로 궁합이 안 맞더란다. 주변에도 사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일부는 아주 맹신하는 사람도 있다. 어제 방송에 나온 ‘점에 빠진 친구’처럼 말이다.

 

주변에서도 흔히 정초에 본 사주에서 올해 운이 안 좋다며 크게 낙담하거나 자신감마저 잃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한다. 생년월일시만 가지고 성격은 물론 과거와 미래를 그렇게나 소상하게 말할 수 있다니 신기하고 재밌긴 해도, 과연 어디까지 믿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혈액형별 성격도 보면 그럴 법한 성격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A형은 다정다감하고, B형은 바람둥이이라는 둥, O형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AB형은 사이코다? 필자는 B형이지만 지금까지 바람을 핀 적이 없었고, 독창적이지만 제멋대로라며 AB형 아니냐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그리고 세상에 지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혈액형별 성격이나 심리테스트, 오늘의 운세에서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성격을 모호하게 풀어 놓는다. 그런 두루뭉술한 묘사일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자신의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혈액형 성격론은 이미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이론으로 판명난지 오래다.

 

사람은 대개 부정적인 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대체적으로 혈액형 성격론에서 사람들이 맞다고 여기는 부분은 부정적인 요인이다. 사람은 긍정적인 점보다 부정적인 요인에 더 신경을 쓰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은 혈액형 성격학에서 말하는 성격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사람은 때론 소심하고 때론 활달하다. 진득하게 하나에 집중하다가도 쉽게 싫증을 내는 게 사람이다. 일관성이 있다가도 때론 제멋대로 이거나 변덕스럽다. 때로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창조적이었다가 너무 개성이 넘쳐나기도 한다. 때론 얌전하다가도 광기를 갖기도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혈액형 성격론은 그 태생부터가 의심스럽다. 혈액형 성격론은 1880년대 독일에서는 우생학적인 관점에서 발생 했다. 칼 란트슈타이너가 1901년 ABO식 혈액형을 만들었고 그 이후 연구한 결과 1910년대 아시아 인종은 B형이 많고, 유럽은 A형이나 O형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인을 낮추고 백인을 높이기 위해 B형을 열등하게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일본인들이 유럽인과 같이 A평과 O형을 강조하면서 혈액형 성격론이 굳어진다. 그래서 B형 성격론은 적은 혈액형이므로 매우 편파적인 측면이 많다.

 

 

 

 

 ♣ 진짜 ‘나’를 알려는 자세

 

철학관의 훈수나 타로점을 믿지 않고, 혈액형별 성격 분석에 시큰둥한 나 같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바넘 효과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또 다른 편견이 될 수도 있다. 보편타당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고 편견이나 선입견을 극복한 판단적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 바넘 효과의 진실 유무를 떠나 세상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영혼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매우 궁금해 한다. 소크라테스가 지적하기 이전부터 자신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이러한 이해를 통해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심리적 에너지 낭비를 막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좋아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점은 강점으로 키우려하는 반면, 누군가가 자신을 미워하고 평가 절하하는 부분은 약점으로 숨기려고 한다. 자기 스스로 속이는 일종의 자기기만을 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긍정적인 것만 노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주변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타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을까. 전문적인 성격분석 서비스나, 인터넷에 나도는 여러 가지 성격 검사도 있지만, 주변 사람을 통해서 더 잘 알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서, 직장인은 동료를 통해서, 또한 친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들이 나에 대해서 하는 말이 자신의 성격을 아는 데 가장 큰 팁이 된다. 주변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자신을 아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또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자신을, 사람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사람들은 일이 잘되고 상황이 좋을 때보다는 힘들거나 난관에 부딪쳤을 때 원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다. 상황이 좋고, 어려움이 없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적절한 사회기술로 상황에 대처하지만 위기상황일 때는 기술보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내비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일은 끝이 없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성장하기도 하고 퇴화한다. 또 자신을 알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눈과 귀를 닫고 자기가 아는 대로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수천 년 전에 죽은 그리스 철학자는 오늘도 ‘너 자신을 알라’고 한다. 이에 심리학자 융은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라고 답하기도 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3-09-2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이 글을 읽으니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소크라테스를 가장 현명한 인물의 본보기로 삼았고, 평생을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던 몽테뉴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가 말했던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는 우리와 남들 사이만큼이나 차이가 있다"는 말은 두고두고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싶더군요.

* * *

운은 우리들을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 운은 우리들에게 그 재료와 씨를 제공할 뿐이다. 우리의 마음은 운보다도 더 강하며, 행복 또는 불행한 조건의 유일한 원인이 되고, 자기 마음대로 운을 돌리며 적용한다.(몽테뉴)

"항상 동일한 인간으로서 행세하기는 대단히 어려움을 명심하라."(세네카)

cyrus 2013-09-25 21:37   좋아요 0 | URL
몽테뉴의 명언이 제 글과 잘 어울리면서 좋아요. 오렌님 덕분에 몽테뉴와 세네카의 좋은 명언 알아갑니다. ^^

김성환 2014-11-17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