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 - 시공을 초월해 예술적 시각을 넓혀가는 주제별 작품 감상법
수잔 우드포드 지음, 이상미 옮김 / 시그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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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에베레스트(Mount Everest)에 오르려고 하는 거죠?”

 

“에베레스트가 그곳에 있으니까요(Because it is there).”

 

 

1924년 에베레스트 제3차 원정에 도전하는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는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주 명쾌한 답변을 했다. 이 유명한 답변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명언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요)라는 말로 알려졌다. 등산과 산 자체의 의미나 매력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표현한 말은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맬러리의 말은 산에 오르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왜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죠?”라고 묻는다면(실제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맬러리가 대답했던 말과 조금 비슷하게 말할 것이다. “매력 있는 이야기가 그림에 있으니까요.”

 

인간은 시각 중심의 미적 체험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또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그림을 보는(감상하는) 것은 삶의 안정감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활동이다. 인간은 이러한 오래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미적 취향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인간의 심미 활동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그림을 어떻게 봐야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대답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추상미술을 비롯한 갖가지 예술이 등장한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하면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다.

 

미술사가 수잔 우드포드(Susan Woodford)《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 Looking at Pictures)은 “그림을 어떻게 봐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그녀는 네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첫 번째 방법은 그림이 주로 어떤 목적으로 그려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 두 번째 방법은 그림에 반영된 시대상의 분위기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주는지 알아보는 것. 세 번째 방법은 그림이 현실적으로 그려졌는지 살펴보는 것. 마지막 네 번째 방법은 화가가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기술(technique)[주]을 구사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예술은 직관으로 이해해야 하며 감성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저자가 제시한 ‘그림 보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림을 보기 위해 도움이 되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을 모른다면 이런저런 잣대로 그림을 재단하고, 잘못 이해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그림 보는 법’은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명료한 것이다. 그림 감상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그 그림 속에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언급한 ‘이야기’는 그림의 형식(형태와 색채), 그림의 내용(그림에 묘사된 인물, 상황이나 사건 등)뿐만 아니라 그림 밖의 이야기(그림이 만들어진 사연, 화가의 삶)도 포함한다. 그림 속과 밖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는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하며 흥미와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 사람은 ‘아름다움’의 의미를 추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정의를 도출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잘 그려진 그림이라고 해서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아름다움의 의미는 상대적이다. 사람들이 아름답다면서 칭송한 그림을 보면서 아무런 전율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 그림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이나 모델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과거에는 현실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이 화가의 일차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화가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신만의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따라서 관람객은 화가가 그림을 통해 설명한 것, 즉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기 위해 능동적으로 감상해야 한다. 이것은 ‘머리’로 그림을 감상하는 자세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들어 있는 ‘단숨에’라는 표현만 보고서 ‘가벼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이해하면 오산이다. 이 책의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핵심 질문’은 독자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독자가 그림을 보는 것과 미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이 책의 마지막 질문이다. “좋은 그림과 위대한 그림을 구분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필요도 없다. 저자를 도발하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호기가 넘치는 독자라면 이 질문 자체를 의심할 수 있다. “좋은 그림과 위대한 그림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은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화가’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고, 색채의 조화에 관한 섬세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기술에 대한 강점과 한계를 안다. 그런데 ‘위대한 화가’를 설명한 저자의 말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자가 생각하는 ‘위대한 화가’는 ‘기적 같은 재능’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화가이다. ‘기적 같은 재능’이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화가의 오랜 노력 끝에 얻은 성취를 ‘기적 같은 재능’으로 표현하는 것에 반대한다. 화가는 하늘에서 내려온 예술의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그림’과 ‘위대한 그림’을 딱 잘라 구분하면서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그림이 위대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은 이미 앞서 말했듯이 재미나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다. 특별한 매력이 있는 그림 속과 밖의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인 셈이다.

 

 

 

 

 

※ 글쓴이의 변: 글을 쓰다 보니 ‘감상문’이 되고 말았다.

 

 

[주] 책의 본문에는 ‘테크닉(technic)’이라고 적혀 있다. ‘테크닉’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면 ‘기술’ 또는 ‘기법’이라고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테크닉’이 아닌 ‘기술(technique)’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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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3-2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cyrus님 그림 보는 거 좋아하시는군요!!

cyrus 2019-03-27 12:49   좋아요 0 | URL
미술관에 자주 가보지 않았지만, 그림을 보면 무언가 생각할 수 있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어서 좋아요. 종이책이 질리면 가끔 그림이 많은 미술 관련 책을 보곤 해요. ^^

레삭매냐 2019-03-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회화의 영역까지 파고
드시다니 대단합니다 !!!

cyrus 2019-03-28 17:16   좋아요 0 | URL
인상 깊은 주제를 다룬 미술 책이 눈에 띄지 않아서 한동안 미술 책을 안 읽었어요. ^^;;

페크pek0501 2019-03-30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상문이든 리뷰든 써지는 대로의 글이 좋지요. 흘러가는 대로 쓰는 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cyrus 2019-04-08 06:04   좋아요 0 | URL
가끔 내가 의도한 대로 글을 쓰지 못할 때가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되요. 그 생각을 쫓으면서 글을 쓰면 처음에 생각했던 글의 주제와 내용이 확 달라져버려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