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보는 사람의 심리
사카이 준코 지음, 장현주 옮김 / 경향BP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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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중2병’이라는 은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일본의 개그맨이 만든 중2병은 말 그대로 중학교 2학년 청소년들의 정서를 의미하며, 그러한 정신세계를 ‘초딩’이라는 말처럼 비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원래 중2병은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 ‘난 남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특성을 재미있게 표현한 은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전해진 중2병은 허세를 부리면서 주위 사람들을 깔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사람들은 누구나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그래서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부분에서든 크고 작게 우월감을 느낀다. 우리가 비교하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친구일 수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상사나 부하직원일 수 있고, 선배나 후배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비교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우열의 개념이 자주 포함된다. 여러 대상을 비교한 후에는 아무리 비슷한 수준이어도 무조건 구분해서 서열을 매긴다. 물론 서열화가 필요한 때도 있지만, 철저하게 서열을 정하는 분위기에 익숙해진 사회 조직은 개인의 개성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위계질서가 만들어낸 권위 의식은 과도한 우월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깔본다. 또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라면 불합리한 명령도 서슴지 않는다.

 

《깔보는 사람의 심리》는 우리 일상에 만연한 ‘상대방을 깔보는 심리’를 규명하기 위한 시도로 쓰인 책이다. 일본의 칼럼니스트 사카이 준코(酒井順子)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경험들을 돌이켜보며 ‘깔보는 사람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타인을 수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비교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우월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타인을 깔보게 된다. 따라서 경제적인 부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갑질’을 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깔보는 심리가 있는 건 아니다.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 흔히들 ‘약자’로 여기는 사람들도 타인을 깔보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 역시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의식한다.

 

저자는 타인을 깔보는 심리를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는 병’이라고 표현한다. 타인을 깔보는 사람들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나누는 극심한 서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깔보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우월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없다면, 병의 심각성을 스스로 인식하되 겉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마음속에 일어난 우월감을 직설화법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러니까 타인을 비교하면서 무시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말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려는 심리적 습관을 완전히 떨쳐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위계 사회는 은밀하면서도 더욱 강력해진 우월감을 생산해낸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타인과 구별하기 위해 끊임없이 비교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회가 평화로워질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타인을 깔보는 생각을 해도 말로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단순한 발상이다. 타인을 비교하면서 깔보려는 심리적인 병을 고치기 힘든 건 안다. 하지만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심리적인 병을 고치라는 식의 대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놓고 타인을 깔보는 ‘철면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속으로 타인을 깔보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익명의 가면 쓴 사람’이다. 익명성이 보장된 사이버 공간은 비뚤어진 우월감을 화산처럼 분출하는 장이다. 익명의 사람들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연예인이나 유명인 또는 사회적 약자들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일시적으로 짜릿한 만족감을 느낀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다는 것은 내재한 열등감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은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싶은 본능으로 발산하기 쉽다. 우월감과 타인을 깔보는 심리를 그러려니 하고 개인이 감내하는 건 일시적인 처방이다. 서로 비교하고, 깔보고, 물어뜯으면서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사회를 바꿔내는 데 한계가 있다.

 

 

 

 

 

※ Trivia

 

*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되자 ‘약자의 집단 따돌림’ ‘선제공격’의 피해자였던 층이 괴롭히는 쪽이 된 것입니다. (17쪽)

 

→ “‘약자의 집단 따돌림’나”로 고쳐야 한다.

 

 

* 49, 50쪽

발렌타인데이밸런타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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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3-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싫네요..;;;;

cyrus 2019-03-19 18:54   좋아요 0 | URL
‘발렌타인데이’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