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John Ruskin)《참깨와 백합》은 1864년에 대중을 상대로 한 두 차례 강연을 묶은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제목만 봐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참깨’는 첫 번째 강연 제목 「참깨: 왕들의 보물」을 뜻하며 올바른 독서법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다룬다. ‘백합’은 두 번째 강연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의미한다. 이 강연은 여성의 사적 · 공적 역할과 여성이 받을 수 있는 교육의 범위를 다룬다.

 

 

 

 

 

 

 

 

 

 

 

 

 

 

 

 

 

 

 

 

 

* 존 러스킨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민음사, 2018)

*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아라비안나이트 V》 (동서문화사, 2010)

*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5》 (열린책들, 2010)

 

 

 

첫 번째 강연 내용을 보면 ‘옛적 아라비아 마법의 곡물이며 닫힌 문을 여는 참깨로 빚은 빵’[주1]이라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아라비아, 마법, 닫힌 문을 여는 참깨. 이 세 개의 단어는 《아라비안나이트》‘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보물을 가득 숨겨둔 동굴 앞에 선 알리바바가 동굴의 문을 열기 위해 외친 마법의 주문이 ‘열려라, 참깨(Open sesame)이다. 러스킨이 말하는 ‘참깨’는 동굴 속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한 열쇠이며, ‘보물’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러스킨은 ‘최고의 지혜’로 채워진 유익한 책을 ‘왕들의 보물’로 비유하면서 독서의 참된 의미를 강조한다.

 

 

 

 

 

 

 

 

 

 

 

 

 

 

 

 

 

 

 

* 존 러스킨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좁쌀한알, 2018)

* 티머시 힐턴 《라파엘 전파》 (시공사, 2006)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 (예경, 2002)

 

 

 

백합의 꽃말은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고귀한 여성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러스킨이 ‘백합’에 보인 지대한 관심은 중세 시대 문화를 동경하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와 관련되어 있다. 라파엘전파에 소속된 화가들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사물 또는 자연물을 그림에 그려 넣었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꽃말에 관심이 많았는데, 꽃말은 자신들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로 활용했다. 라파엘전파가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러스킨이다. 그는 고전주의에 벗어나지 못한 주류 화단으로부터 비난받은 라파엘전파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한마디로 평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글’이다. 이 글에서 드러난 러스킨의 여성관은 여성을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 빅토리아시대의 케케묵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러스킨은 산업자본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한 진보적인 사상가였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인습에 얽매인 빅토리아시대 남성 지식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여성을 ‘전쟁(논쟁)을 중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로 본다. 러스킨은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는 여성의 역할을 찬양하고 있지만, 그러한 능력을 남성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여성은 중세 귀부인처럼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할 고귀한 존재’인 것이다. 러스킨에 따르면 여성이 다스리는 ‘가정’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야 할 평화적인 안식처이다.[주2] 그는 세상을 온갖 위협과 유혹으로 가득한 일터와 가정으로 나눈 후 남성과 여성을 각 공간의 책임자로 배치한다. 러스킨 본인은 ‘남성은 공적 영역,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철저히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구분을 반대하면서도[주3]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교육의 범위를 한정짓는다. 그는 여성은 ‘자기 계발을 위한 지혜’를 멀리해야 하며 ‘신학’을 공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러스킨이 선호하는 여성은 ‘남편을 섬길 줄 아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책세상, 2018)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2018)

* [절판]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이후, 2009)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은 자신의 주저 《성 정치학》에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대차게 비판한다. 이때 그녀는 러스킨을 궁지로 몰아세우기 위해 《참깨와 백합》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여성의 종속》과 비교한다. 밀렛은 《여성의 종속》을 ‘역사를 통틀어 여성이 처한 현실적 입장을 가장 조리 있게 저술한 저서’[주4]라고 높이 평가한다. 한술 더 떠서 《자유론》에 버금가는 강력한 주장을 담은 책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비록 러스킨의 편협한 여성관과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밀을 좀 더 좋게 평가한 것도 있지만,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밀렛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고전을 열렬히 호평하는 반응은 이례적이다. 사실 《여성의 종속》을 통해 알 수 있는 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한계가 있다. 《성 정치학》이 나온 1970년대 이후에 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논문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밀의 《여성의 종속》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은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빅토리아시대 남성은 여성을 ‘어른 아이’로 여겼다. 그러니까 그들은 여성을 미성숙한 ‘소녀’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러스킨은 소녀들을 고상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소녀를 가르칠 수 있는 가정교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제로 러스킨은 아홉 살의 소녀 로즈 라 투셰(Rose La Touche)에게 드로잉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했다. 이미 한 번 이혼으로 인해 사랑에 실패한 경험[주5]이 있는 러스킨은 로즈를 사랑하게 된다.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서도 러스킨은 소녀를 ‘순수한 존재’로 언금한다. 러스킨이 생각하는 백합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기 위해 보호받아야 할 순진무구한 소녀를 의미한다. 밀렛은 소녀에 집착하는 러스킨의 관심을 ‘노망난 에로티시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주6].

 

 

 

 

 

 

 

 

 

 

 

 

 

 

 

 

 

 

* 설혜심, 박형지 《제국주의와 남성성》 (아카넷, 2016)

* 존 러스킨 《존 러스킨의 드로잉》 (오브제, 2011)

 

 

 

사실 「참깨: 왕들의 보물」도 시대적 한계가 보이는 글이다. 러스킨의 강연을 듣는 대중은 주로 중산층에 속하는 부유한 사람들이다. 이 글에 젠체하는 러스킨의 오만한 엘리트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양질의 책을 읽어서 지혜로운, 고상한 국민인 ‘신사(紳士)를 치켜세우면서 저속한 ‘군중’을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군중’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사리분별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참깨: 왕들의 보물」과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서 드러나는 러스킨의 남성성은 ‘점잖음’을 중시하는 빅토리아시대 신사와 ‘백합’ 같은 고귀한 여성을 보호하고 싶은 중세 기사의 모습에 가깝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 코번트리 펫모어(Coventry Patmore)의 장편 담시 『집안의 천사』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집안의 천사’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러스킨은 「백합: 여왕들의 화원」뿐만 아니라 드로잉의 기초를 설명한 《존 러스킨의 드로잉》에서도 『집안의 천사』를 ‘뛰어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쯤 되면 그가 과연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 장 자크 루소 《에밀》 (한길사, 2003)

* 장 자크 루소 《에밀》 (책세상, 2003)

* 장 자크 루소 《루소의 에밀 읽기》 (한길사, 2003)

 

 

 

 

 

 

 

 

 

 

 

 

 

 

 

 

 

*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어크로스, 2018)

 

 

 

《참깨와 백합》 옮긴이는 러스킨을 ‘여성의 교육에 앞선 교육 개혁가’라고 소개했다.[주7] 러스킨은 사회 참여적인 교육가이지 ‘여성을 위한 교육 개혁가’로 평가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여성관과 여성 교육에 대한 입장은 《에밀》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유사하다. 루소도 여성을 남편과 가정을 위해 집안일 하는 존재로 한정 지었다.

 

 

《참깨와 백합》을 해설한 옮긴이의 설명은 빈약하다. 왜냐하면 1871년에 《참깨와 백합》 개정판을 내면서 새로 추가된 러스킨의 서문세 번째 강연 「The Mystery of Life and Its Arts」에 대해선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정판 서문과 세 번째 강연을 번역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해서 언급했어야 한다.

 

 

 번역하는 내내 바른 가르침을 받는 행복감으로 충일했고 저자의 탄탄한 지성과 면밀한 논리는 생명을 살리는 먹거리가 차려진 소박하나 소중한 밥상과 같았다.

 

(옮긴이의 말, 14쪽)

 

 

옮긴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참깨와 백합》을 읽는 내내 러스킨의 젠체함과 공허한 논리에 거부감이 생겨서 ‘밥상’ 같은 책을 엎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주1] 유정화 옮김, 「참깨: 왕들의 보물」, 80쪽

 

 

 

 

 

 

 

 

 

 

 

 

 

 

 

 

 

* [절판] 존 러스킨 《베네치아의 돌》 (예경, 2006)

 

 

[주2] 러스킨은 고딕 건축 양식과 베네치아 고딕 양식을 분석한 저서 《베네치아의 돌》에서 건축의 세 가지 미덕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건물의 효율성이다. 그는 자연재해와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기능성이 있어야 좋은 건물이라고 주장한다. 러스킨이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 언급한 ‘가정’은 기능성을 최대한 살린 건축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주3] 유정화 옮김, 「백합: 여왕의 화원」, 121쪽

 

[주4] 김전유경 옮김, 《성 정치학》, 191쪽

 

[주5] 필자의 졸문 「에피 그레이의 재앙」을 참조하길 바란다.

 

[주6] 김전유경 옮김, 《성 정치학》, 190쪽

 

[주7]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9쪽

 

 

 

 

 

난센스 퀴즈의 정답은 스킨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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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26 00:06   좋아요 0 | URL
급할 거 없습니다. 다음 달에 날씨가 좋아지니까 날 맞춰서 만나요. ^^

stella.K 2019-02-2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설마! 넘 심했다.ㅎㅎㅎㅎㅎㅎ

cyrus 2019-02-26 00:09   좋아요 0 | URL
러스킨이요? ㅎㅎㅎㅎ 러스킨과 에피 그레이의 이혼 스캔들이 너무나 유명해서 러스킨과 로즈 라 투셰의 관계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러스킨과 같은 시대에 산 루이스 캐럴도 소녀 앨리스 리델을 좋아했어요.. ^^;;

AgalmA 2019-02-26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 여성의 차이에 대해 결정론적 해석을 하는데 유전학이 어쩐지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폭력성의 관계 등등.
대니얼 리처드슨이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에서 고찰했듯이 복잡한 상황은 모두 무시한 채 인물에 집중하는 ‘기질적 귀인 오류’ 인지작용도 있죠.
이런저런 사고 오류에 대해 말해도 안 들으려는 사람은 안 들으니ㅜㅜ;;

cyrus 2019-02-26 00:22   좋아요 1 | URL
유전학의 흑역사가 우생학이에요.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라는 책을 쓴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몇몇 심리학자는 어용 학자입니다. 어용 학자는 특정 집단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이론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특정 집단에 반하는 타 집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이론을 만들어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입니다. 이들은 개인이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개인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동조하게 되고, 집단 구성원이 되어 동질감을 느끼려고 하죠. 이게 더 발전되어 나온 이론이 ‘집단 극단화 이론’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의 집단이 만들어지고, 집단의 폐쇄적인 환경으로 인해 개인의 의견은 무시되고, 집단을 대표하는 입장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집단은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타 집단의 입장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집단 극단화 이론의 단점은 동질감의 긍정적 기능을 무시하고 집단의 목소리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임금 인상을 원하는 정당한 노조 파업은 집단 극단화 이론에 따르면 집단이기주의로 규정될 수 있는 거죠.

오늘 AgalmA님이 소개한 <심리학자들일 알려주지 않는...>을 보면서 심리학 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