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존 러스킨(John Ruskin)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러스킨의 생일은 2월 8일이다. 러스킨은 산업혁명으로 최성기를 구가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미술비평가, 사회 사상가로 활동했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과 러스킨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 1837년에 여왕이 왕좌에 오르면서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었고, 여왕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던 1843년에 러스킨은 『근대 화가론』을 펴내면서 미술비평가로 주목받았다. 빅토리아 시대는 여왕이 1901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막을 내린다. 러스킨은 1900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죽음은 대내외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대영제국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 영국 빅토리아 시대와 라파엘 전파에 대한 책들

 

 

 

 

 

 

 

 

 

 

 

 

 

 

 

 

 

 

 

 

 

 

 

 

 

 

 

 

 

 

 

 

* 존 러스킨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좁쌀한알, 2018)

* 이주은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이봄, 2016)

* [품절] 리처드 D. 앨틱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아카넷, 2011)

* 티머시 힐턴 《라파엘 전파》 (시공사, 2006)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 (예경, 2002)

 

 

 

1840년대 후반, 영국 화단의 보수성에 반기를 든 신진 예술가 집단이 등장한다. 1786년에 창립된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는 고전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화의 전통을 중시하고, 상류층 중심의 예술가를 배출하는 보수적인 곳이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가 가르치는 보수적인 화풍을 벗어나 라파엘로(Raffaello) 이전에 활동한 중세 화가들의 작품을 본보기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세 사람은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라는 이름으로 작품들을 남겼다.

 

‘Pre-Raphaelite Brotherhood’를 직역하면 ‘라파엘 전(全) 형제동맹’이다. 우리나라에선 ‘라파엘 전파’로 단순하게 번역되어 알려지는 바람에 라파엘로의 화풍을 이어받는 예술가 단체로 오해하기 쉽다.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 화풍을 거부하고 중세 예술을 선호했다. 라파엘로를 거부하는 화가들의 목적은 르네상스 미술을 모방하는데 급급하던 당시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을 넘어서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라파엘 전파는 전통적이고 엄격한 기법과 양식을 버리고 자연을 직접 관찰해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했다.

 

러스킨은 라파엘 전파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준 지지자다. 라파엘 전파가 혹평을 받으면 러스킨이 나서서 라파엘 전파를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러스킨은 1857년에 발표한 평론집 《라파엘 전파》에 밀레이와 홀트를 ‘온갖 만류와 반대를 무릅쓰고 견뎌대는’[주] 전도유망한 청년 화가로 소개했다. 러스킨과 밀레이는 서로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러스킨은 밀레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그의 화풍의 방향성까지 알려주는 정신적인 스승이 되어주었다.

 

 

 

 

 

 

 

 

 

 

 

 

 

 

 

 

* 이주헌 《그리다, 너를》 (아트북스, 2015)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밀레이가 러스킨의 아내 유페미아 그레이(Euphemia Gray, 애칭은 ‘에피’)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에피도 밀레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는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에피와 러스킨의 결혼은 사랑보다 집안 체면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 에피의 연애 행각을 비난할 수만 없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는데, 그건 러스킨과 관련되어 있다. 러스킨은 6년 동안 에피와 부부로 지내면서 단 한 번도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의 섹스를 피했다. 러스킨은 벌거벗은 에피의 몸에 난 털을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그는 음모(陰毛)를 싫어했다. 러스킨은 털 한 올도 없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성의 몸을 좋아했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과 시부모의 지나친 간섭에 싫증이 난 에피는 러스킨과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이 삼각 스캔들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자신의 친구이자 지지자인 아내를 뺏어간 밀레이와 대담하게도 자기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낸 에피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혼 소송을 접수한 교회 법정은 에피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에피와 러스킨은 부부 관계를 완전히 정리한다. 그 후 에피는 밀레이와 결혼하여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다.

 

 

 

 

 

 

라파엘 전파번역본 끝부분에 러스킨의 생애를 정리한 연표가 있다. 당연히 이 연표에도 러스킨, 밀레이, 에피의 삼각 스캔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에피와 이혼한 지 4년이 되던 해에 러스킨은 아일랜드 출신의 로즈 라 투셰(Rose La Touche)와 사랑에 빠졌다. 이때 로즈는 아홉 (!), 러스킨은 39, 곧 마흔()을 앞둔 나이였다. 러스킨은 로즈가 18살이 되던 해인 1866년에 청혼하지만, 로즈는 3년을 더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1869년에 러스킨과 로즈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만났지만, 그때도 로즈는 러스킨에게 확답을 주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이 차이가 많은 것도 있지만, 로즈의 부모 입장에선 이혼 경력이 있는 섹스리스(sexless)인 러스킨을 신랑감으로 볼 수가 없었다. 결국 1872년에 로즈는 러스킨의 청혼을 거절했다. 1875년에 로즈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러스킨은 큰 충격을 받았고, 말년에 강신술에 빠질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러스킨의 연표에 러스킨와 로즈 라 투셰의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 있지만, 상세하지 않다. 그리고 그 내용에 오류가 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로즈 라 투셰에게 청혼하나 투셰는 3년을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3년 후인 1872년 로즈는 러스킨이 사회주의자이자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청혼을 거절했다.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153쪽)

 

 

1866년에서 3년을 지나면 1869년인데, 책의 연표에는 ‘3년 후인 1872년’이라고 적혀 있다. 연도를 계산하면 저렇게 나올 수가 없다. ‘6년 후인 1872년’으로 쓰는 게 맞다.

 

 

 

 

 

 

 

 

 

 

 

 

 

 

 

 

 

 

* [절판] M. H. 에이브럼즈 《노튼 영문학 개관 2》 (까치, 1990)

 

 

 

절판된 《노튼 영문학 개관》 2권에 러스킨을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도 삼각 스캔들, 그리고 로즈와의 관계가 언급된다. 하긴 두 번이나 실패한 사랑은 러스킨의 명성뿐만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사건이므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번역본은 러스킨이 에피와 결혼한 것을 ‘재앙’이라고 했고, 부부 관계은 ‘예식’으로 순화하여 표현되었다.

 

 

 1848년 그가 에피 그레이와 결혼한 것은 하나의 재앙이었다. 6년간을 동거한 후에 단지 예식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구실로 하여 결혼무효 소송을 제기하였다. 남들은 그녀를 대단한 미인으로 여겼으나, 러스킨 자신은 자기 아내의 몸매가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증언하였다. 그녀의 미모를 예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라파엘 전파 화가 존 밀레이는 그녀의 남편의 초상화를 그릴 때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 무효가 성립된 직후 그녀와 결혼하였다.

 

(M.H. 에이브럼즈, 《노튼 영문학 개관 2》, 213쪽)

 

 

인용한 문장만 보면 러스킨의 이혼 스캔들을 편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러스킨은 에피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여성에 향한 편견과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녀가 러스킨을 만나 결혼한 것, 또 이혼 소송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시대를 만난 것이 재앙이었다.

 

 

 

 

[주] 존 러스킨, 임현승 옮김,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젊은 화가들의 새로운 도전』,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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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2-1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러스킨이 그 존 러스킨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처음 그의 이름을 들은 게 중학생 때였어.
2학년쯤 됐을 것 같은데 베스트셀러가 시큰둥한 거야.
어려운 책을 읽고 싶었지.
단골 동네 서점에 존 러스킨의 책이 있냐고 했더니
없다는 거야. 내가 알기론 그 주인 아저씨도 나름
책 꽤나 아시는 분인데 말야.
난 속으로 그럼 그렇지 이런 동네에서 그런 책이 있을 리
없지 했는데 그때 참 겁이 없었어.
모르긴 해도 그때 러스킨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기 전이었던 것 같아.
그때 누가 러스킨은 존경한다고 했걸랑 그래서 알고 싶었던 건데.ㅎㅎ

cyrus 2019-02-12 17:07   좋아요 0 | URL
<깨와 백합>이라는 책이 1972년에 을유문화사에서 문고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어요. 혹시 누님이 읽은 책이 이거 아닌가요? ㅎㅎㅎㅎ 그 책이 작년 12월에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라는 이름으로 나왔어요. ^^

stella.K 2019-02-12 17:41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그게 또 작년에 새로 나왔구나.ㅋㅋ

페크(pek0501) 2019-02-1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의 이혼은 꽤 큰 사건이겠고 무척 상처가 되는 사건이었을 텐데 잘 극복했나 보군요.
다른 사람과 재혼하여 여덟 명의 자녀를 두다니... 질질 끌게 아니라 때론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긴 한 것 같습니다.

cyrus 2019-02-18 15:24   좋아요 0 | URL
러스킨이 에피의 이혼 요구를 무시하고 질질 끌었죠. 왜냐하면 이혼 스캔들이 나면 미술비평가, 사회사상가로서 자신의 명성에도 흠집이 생기니까요. 아마도 러스킨은 본인의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고, 가족과 같은 친구 밀레이에게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기 싫어서 에피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