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으면 친숙하게 느껴지는 작가가 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가 쓴 작품들이 뭔지 알고 있었지만, 그중에 읽은 건 하나도 없었다. 올해 1월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그 후》였다. 소세키의 중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소세키의 초기 문학 중 걸작으로 알려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봤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진 못했다. 언젠가 다시 시도해보려고 한다.

 

 

 

 

 

 

 

 

 

 

 

 

 

 

 

 

 

 

 

 

*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그 후》 (현암사, 2014)

* 나쓰메 소세키, 윤상인 옮김 《그 후》 (민음사, 2003)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고등유민(高等遊民)이다. 고등유민은 ‘인텔리 백수’를 뜻하는 단어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부유한 실업가이다. 그는 가족에게 용돈을 받아 비교적 풍족하게 살아간다. 다이스케가 살았던 일본 메이지(明治) 말기는 출세주의가 오늘날 못지않게 치열했던 시대였다. 에도(江戸) 시대의 봉건 가신들은 메이지 시대의 귀족이 되었고, 러일전쟁(1904~1905년)으로 큰 부를 쌓아 올린 신흥 부르주아들은 혼인을 통해 상류사회에 들어가고자 했다. 유산계급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곧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었다. 금전적 기반을 가족에게 의지하고 있던 다이스케 역시 그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대학 동창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두 사람은 가족에게, 사회에게 버림받아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자연의 아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사이에서 다이스케는 번민했다. [중략] 그는 자신의 생활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후》, 윤상인 옮김, 256쪽)

 

 

※ 글꼴을 굵게 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자신에게 떠안겨진 무겁고 벅찬 현실 때문에 고뇌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문장이다. 작품 해설(민음사 판본)에 따르면 ‘자연’은 소설의 핵심 주제이면서도 다양한 의미가 있는 단어다. ‘자연의 아들’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인위적인 사회제도를 거부하는 존재이다. 다이스케가 미치요와 결혼해서 살아가려면 현실에 순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이스케는 예전처럼 한량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제는 미치요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직업을 구해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의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 전에 다이스케, 즉 ‘자연의 아들’이었던 그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 반대한다. 소설의 6장 후반에 노동의 의미를 두고 히라오카와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일을 한다면 단지 생활만을 위한 일이어서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모든 신성한 일이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빵과는 무관한 법이야.”

 

(《그 후》, 윤상인 옮김, 107쪽)

 

 

 

민음사 판본의 역자는 다이스케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사회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가 쓴 글의 제목이다. 라파르그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위다.

 

 

 

 

 

 

 

 

 

 

 

 

 

 

 

 

 

 

* 폴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새물결, 2005)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가들이 ‘신성한 노동’이라는 일종의 교리를 만들어 동물실험을 하듯 민중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노동자 계급이 일에 대한 격렬한 열정이라는 이상한 꿈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라파르그는 방직기계 한 대가 1분 동안 작업한 양이 숙련 여공이 100시간동안 일한 정도로 보면서 노동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을 불태울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라파르그가 보기에 자본주의 구조 아래서 ‘일할 권리’는 ‘착취당할 권리’일 뿐이다. 그는 하루 노동시간을 3시간으로 정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소비가 이뤄지고, 개개인에게는 더욱더 많은 휴식이 주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존 러스킨 《존 러스킨의 생명의 경제학》 (아인북스, 2018)

* 존 러스킨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좁쌀한알, 2018)

* 티머시 힐턴 《라파엘 전파》 (시공사, 2006)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 (예경, 2002)

 

 

 

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을 위한 노동’을 강조하는 다이스케의 입장이 존 러스킨(John Ruskin)에 근접하다고 생각한다. 러스킨은 영국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평론가로 활동했지만, 인간적 가치를 금전 가치로 환원하는 자본주의를 혐오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산업자본이 노동자를 기계로 전락시키는 참상을 목격한 러스킨은 시각 · 건축예술로 관심을 옮겼다. 그가 예술 분야에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파편화된 사회를 인간 정신이 구현되는 곳으로 되돌리려는 열망이었다.

 

국내에선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책(현재 ‘생명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에서 러스킨은 노동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는 단순히 임금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창조의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귀한 가치를 구현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러스킨이 생각한 ‘노동을 위한 노동’인 것이고, 이는 다이스케의 입장과 비슷하다. 다이스케가 들려주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전국시대에 일본을 통일한 무장)의 요리사 이야기에서 ‘노동을 위한 노동’에 대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최고의 요리사를 고용한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맛보고는 맛이 없다면서 꾸짖는다.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요리사는 평소와 다르게 이류, 삼류 음식을 만든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 음식이 맛있다면서 칭찬한다. 다이스케는 요리 기술을 위해 일하는 요리사가 매우 불성실하고 타락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의 요리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류 음식을 만든 거라고 본 것이다. 다이스케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거부하고,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을 선호한다.

 

러스킨이 1851년에 발표한 《라파엘 전파》의 첫 번째 글은 『위대한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이다. 러스킨은 빅토리아 시대 런던 미술계를 점령했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소속 화가들을 옹호하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도 그는 자신의 노동관을 언급한다. 『위대한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라파엘전파에 관한 내용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글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추구해야 할 예술과 노동을 역설한 러스킨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창의성과 성취욕을 갖춘 노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노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중세에 활동했던 장인들이다. 따라서 러스킨은 노동자가 모두 이런 장인이 될 수 있을 때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정신적 공황이 심해지는 산업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러스킨은 신앙심으로 충만한 중세의 영성과 근대인의 삶을 일체화시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라파엘전파가 추구했던 것은 중세의 미학이다. 러스킨과 라파엘전파 소속 화가들이 생각하는 중세는 때 묻지 않은 소박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이다.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현인, 2018)

* 나쓰메 소세키 《런던 소식》 (하늘연못, 2010)

* 도가와 신스케 《나쓰메 소세키 평전》 (AK커뮤니케이션, 2018)

 

 

 

《그 후》를 읽다 보면 다이스케가 ‘일본의 러스킨’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영국에서 2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한 나쓰메 소세키는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에 심취했고, 박물관이 된 칼라일의 집을 세 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수필에 가까운『칼라일 박물관』은 소세키가 칼라일의 집을 방문하면서 느낀 소회를 기록한 글이다. 칼라일도 러스킨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했는데, 영국 문화와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소세키가 칼라일과 동시대에 활동한 러스킨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소세키의 초기작인 『환영의 방패』『해로행』[주]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두 작품을 위한 삽화가 나온다면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그림으로 정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좀 더 분석해봐야겠지만 존 러스킨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요긴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 故 노재명 씨가 번역한 하늘연못 번역본에 적힌 '해로행'의 작품명은 ‘북망행’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재명 씨는 '북망행'으로 제목을 바꾼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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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1 17:08   좋아요 1 | URL
미래에 자본의 힘이 도시 밖을 넘어 시골에도 미친다면 자급자족하는 공동체 사회도 이상향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반유행열반인 2019-02-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양이...만 읽어봤는데 집에 있는 다른 소세키 작품들(그 후, 마음)도 차차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cyrus 2019-02-12 16:25   좋아요 1 | URL
나쓰메의 장편소설을 다 읽어본 독자들의 평을 보니 장편소설 모두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하네요. ^^

blueyonder 2019-02-12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소개해 주신 여러 권을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cyrus 2019-02-12 16:29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blueyonder님 덕분에 과학 정보를 많이 알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