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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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면? 뜻하지 않는 재난과 질병으로 장애인 또는 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다. 활기 넘치는 젊음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 몸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할’ 가능성에 늘 노출돼 있다.

 

장애와 죽음의 공포에 떠는 우리 몸은 계속해서 ‘좋은 몸’이 되라는 정언 명령을 듣게 된다. ‘좋은 몸’이란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이성애자’의 몸이다. 경제 성장을 지향하는 국가 통치는 국민의 몸을 생산의 주체, 혹은 생산에 참여하지 못한 타자로 나눈다. 병든 몸, 늙은 몸, 장애를 가진 몸, 출산하지 못하는 몸, 그리고 퀴어(queer)[주1]한 몸은 생산 ․ 재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비(非)국민’으로 분류된다. 인간은 누구든 자기 위치에서 ‘좋은 몸’에 대한 강박을 짊어지고 산다. ‘정상성’의 굴레 속에서 인간은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이성애자’로 살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 채근하고, 통제한다. 또 ‘좋은 몸’에 부합되지 않은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자신의 정상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개인들의 강박을 사투로 만드는 것은 ‘정상적인 몸’과 그렇지 않은 몸을 구분하게 만드는 권력과 그로부터 비롯된 지식이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다양한 몸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는 지식이 무엇이며, 사회 안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쓴 김승섭 교수는 인간의 몸을 위계화 하는 지식에 향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식은 타인을 차별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생산되어 왔다는 것이다. 모든 지식에는 누군가의 관점이 반영하기 마련이고, 어떤 지식은 권위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의학 지식은 성인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해서 발견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남성 의학자와 의사들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증상이나 의약품의 부작용 등을 진지하게 분석하지 않았다. 진화가 잘 된 백인과 진화가 덜 된 유색인종을 분류하는 인종주의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인종주의 과학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일본에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일본은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함을 과시하는 동시에 조선을 통치해야 할 과학적 근거를 찾으려고 했다.

 

과거의 구습으로 남게 된 지식과 그로 인해 생긴 폐해를 지금에서야 따지면 뭐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차별과 불평등을 부추기는 지식은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으며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지식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험한 수준이다. 무관심으로 가장한 차별은 혐오를 강화하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를 낳을 뿐이다.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 속의 크고 작은 지식은 타인에 향한 차별,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게 만든다. 그러한 지식 일부는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거나 특정 세력의 필요에 따라 날조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과 의료 복지 수준은 선진국에 뒤지지 않지만, 정작 성소수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성소수자의 건강 실태를 전면적으로 파악하는 연구 분위기조차 조성되어 있지 않다. 성소수자들에게 필요한 지식이 빈곤할수록, 또 덜 알려질수록 성소수자의 몸은 소외되고, 아무도 그들의 몸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지식이 있어야 할 곳에 편견과 가짜 뉴스가 채워진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는 건강하지 않은 존재로 이야기되며, 건강하지 않은 존재는 사회와 질서를 위협하고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비국민’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일을 계속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의 말을 빌리자면, 김승섭 교수의 글쓰기는 ‘성찰하는 일에 친숙해지는’[주2]이다. 정상적인 몸, 건강한 몸, 우월한 인종, 순수한 민족이라는 것은 과장되었고 어떤 의미에서 허구적이다. 우리는 조작된 환상의 몸이 아닌 ‘진짜 몸들’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나쁜 몸’, ‘이상한 몸’을 규정하는 지식을 어떻게 간파하고 벗어날 것인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당연한 것들’에 질문하는 일은 각자가 서로 다른 진짜 몸과 삶의 실체를 알아가는 일이다.

 

 

 

 

 

※ Trivia

 

* 29쪽

 

1890년 미국의 여성 소설가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이 발표한 단편소설 「노란 벽지(The Yellow Wallpaper)」의 줄거리입니다.

 

→ 「노란 벽지」가 발표된 해는 1892년이다.

위키피디아 ‘Charlotte Perkins Gilman’ 항목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Charlotte_Perkins_Gilman#Short_stories

 

 

 

* 258쪽

 

20세기 초 미국 남부 앨라배마 메이컨 카운티의 면방직 공장의 사장이었던 브루커 T. 워싱턴(Brooker T. Washington)은 여러 자선사업가들의 자금을 모아 흑인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학교, 공장, 기업 등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합니다.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의 오자다.

 

 

 

 

 

[주1] 지정 성별, 성별 정체성, 성별 표현, 성적 지향의 측면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인구 집단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시우, 《퀴어 아포칼립스》, 현실문화, 2018, 277쪽 참조.

 

[주2] 오드리 로드, 주해연 ․ 박미선 공역, 《시스터 아웃사이더》, 『시는 사치가 아니다』, 후마니타스, 2018,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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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2 16:41   좋아요 0 | URL
일상의 절반은 책 읽는 시간이라서 책 안 읽으면 마음이 허전해요. 독서와 글쓰기가 저의 헛헛한 시간을 채워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