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 정치학
케이트 밀렛 지음, 김전유경 옮김 / 이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은 여성 혐오(misogyny)와 함께해왔다. 문학 속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페미니즘 비평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누군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젠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남성 작가 또는 남성 비평가 여러 명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문단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에 속해 있다. 이들은 지금도 문단을 주름잡는 대선배들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너 서클에 속한 남성 작가와 남성 비평가들은 자신의 패거리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권위는 이너 서클 자체를 거부하는 작가나 비평가들을 공격하는 데 활용한다.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에 반영된 여성 혐오를 지적한 페미니스트 작가나 비평가는 문단을 파괴하는 악마로 취급받아왔다. 어느 사회나 페미니즘은 잘못된 특권 의식을 지닌 여성을 조롱하기 위한 수사로 소비되곤 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ity is the political)라는 구호로 제2세대 페미니즘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1970년대에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은 남성 작가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쓴 박사학위 논문 성 정치학(Sexual Politics)1970년에 출간된 이래 지금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밀렛은 이 책에서 사회 곳곳에 침투한 가부장제라는 권력 구조를 역사와 문학비평을 통해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헨리 밀러(Henry Miller),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등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밀렛은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성 정치학의 제3(문학적 고찰)의 첫 장(‘D. H. 로렌스’)에서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야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로렌스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남근 우월주의자. 그들은 남근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지배하려고 하며 여성들은 남근을 숭배하거나 남근을 과시하는 남성성에 억압당한다. 소설 내용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야한 묘사조차, 엄연히 따져보면 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밀렛은 여성의 억압, 즉 남성의 여성 지배는 가부장제가 가져온 뿌리 깊은 토대를 지니고 있으며, 이제는 여성을 통제하는 거대한 권력 구조로 발전되었다고 지적한다.

 

밀렛은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념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이론과 그의 추종자들도 비판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여자아이는 자신은 남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의 클리토리스와 남자아이의 남근을 비교하면서 남성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되고, 남근을 가지고 싶어 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여성의 심리를 남근 선망(penis envy)이라고 하였다. 밀렛은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 이론을 비판한다. 그녀가 보기에 남근 선망 이론은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남성 우월적인 개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는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밀렛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남성 작가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장 주네(Jean Genet)이다. 밀은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의 영향을 받아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테일러와 함께 여성의 종속을 썼다. 장 주네는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희곡을 썼는데, 주네가 묘사한 동성애자들은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다. 그들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권력 관계를 폭로하고 해체하려고 한다.

    

성 정치학은 가부장적인 남성지배의 문화에 익숙한 남성 작가들의 책에 침을 뱉은 도발적인 책이다. 성 정치학의 초판 서문에 그녀가 지향하는 문학비평과 글쓰기 정신이 드러나 있다. 밀렛은 책의 저자이기 전에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문학에 저항하는 독자가 되어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리뷰를 쓰고 있는 나는 그녀의 확고한 신념을 본받고 싶다.

 

 

 

  문학비평이라는 모험적 작업에 대한 나의 신념은 이러하다. 비평은 작품에 충실하게 아첨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문학이 묘사하고 해석하며 심지어 왜곡하기까지 하는 에 대한 폭넓은 통찰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초판 서문, 26)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저항하는 독자들’이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페미니즘 비평은 다양한 분파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고, 성 정치학도 후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프로이트 이론을 분석 도구로 삼는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밀렛을 비롯한 급진(radical) 페미니스트의 프로이트 비판이 가혹하다고 반박한다.

 

이번 한 달 동안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성 정치학을 읽었는데, 책의 문제점과 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분은 밀렛이 동양의 여성 문제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그녀는 1970년 기준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세계에서 매춘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고 언급했다[주1]. 정말로 1970년대 중국에 매춘이 없었을까? 그러나 밀렛은 중국에 매춘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또 다른 분은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밀렛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2]

 

 

 성 혁명과 이를 이끌어 온 여성운동은 기사도 정신의 가면을 벗기고, 그 정중한 예의라는 것이 교묘한 조작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해야만 한다. 또한 공동의 대의를 위해 계급의 전선을 뛰어넘어야 하고, 숙녀와 공장 노동자가, 방탕한 여성과 지체 높은 여성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2부 역사적 배경, 159)

 

※ 글꼴을 굵게 표시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표시한 것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는 기득권 부르주아 여성들과 연대하는 것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그녀들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부르주아 여성들은 겪는 프롤레타리아 여성들과 똑같은 형태의 억압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관심사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을 위해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내가 감탄할 정도로 통찰력 있는 레드스타킹 멤버는 성 정치학을 이렇게 평가했다.좋은 책인 건 분명하나 페미니즘 문학이나 페미니즘 비평에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 분의 말에 동의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 원주, 248.

 

[2] 밀렛의 주장에 대한 레드스타킹 멤버들의 비판적 입장은 레드스타킹공식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성 정치학의 두 번째 모임(1월 14일) 후기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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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9-01-31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제적 계층의 차이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인종적인 차이도 너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 같아요.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보다는 흑인 남성이 당하는 억압에 더 공감할테니까요. 저만 하더라도 한국에 살고 있을때는 사실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에 공감했던 거 같은데 여기 살다 보니 흑인 여성의 이야기에 훨씬 더 공감이 가고 백인 여성 이야기는 좀 삐딱하게 보게 되거든요.

cyrus 2019-02-01 15:14   좋아요 0 | URL
교차성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래디컬 페미니즘의 한계점이 보입니다. 다만 래디컬 페미니즘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이론 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페미니스트들 간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계층, 인종 등과 관련된 첨예한 쟁점들이 나올 것입니다.

stella.K 2019-02-01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근우월주의는 <채털리 부인...>만 있는 게 아니지.
너무 많고 많아졌어. <롤리타>도 그렇고
특히 영화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게
유명한 사람들 성추행 해 놓고 모른다고 그러고,
아니라고 그러고, 항소하고 그러는 거 보면서
정말 그게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를 성범죄로 인지하지 못하는 거.
워낙에 세상이 남성위주다 보니까 당연하고 문제로 인식 못하는 것 같아.
여자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몰랐던 것 같고.
오늘 안희정 유죄 확정 받던데 왤케 시원하던지.

cyrus 2019-02-01 20:55   좋아요 1 | URL
남근뿐만 아니라 남성의 얼굴에 나는 수염도 우월한 남성성을 과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해요. 양쪽 수염 끝이 뾰족하면서 살짝 위로 올라간 카이저 수염은 발딱 선 페니스를 연상합니다. 재미있는 건 남성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싶어 하지만, 여성의 몸이나 얼굴에 털이 나는 걸 싫어합니다.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날입니다. 오늘의 판결 결과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문제 제기한 ‘권력형 성범죄’의 법적 처분이 상식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줬으니까요. ^^

레삭매냐 2019-02-01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 메리 설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

cyrus 2019-02-01 20: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AgalmA 2019-02-04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의 판이 남성들에 의해 짜여지다 보니 구조든 언어적 표현이든 그들 중심인 거 파악은 되는데요. 여전히 ‘여성적‘이란 표현이 나약하고 어리석다, 혹은 교활하고 사악하다는 뜻으로 두루쓰이는 걸 볼 때마다 이게 바뀌기는 할까 싶어요. 애초에 상반되는 저 뜻이 문맥에 따라 이해되는 것도 웃기고ㅎ;;
마초이즘적인 니체의 책 읽다보니 바그너 욕하며 ‘여성적‘을 가져 오길래 우리의 위대한 반철학자 니체도 이 부분에선 어쩔 수 없군 하며 씁쓸 웃음을^^;; 루 살로메랑 결혼에 성공했으면 좀 나아졌을까요. 글쎄요...
테리 이글턴 <유물론> 읽으니 D. H. 로렌스가 니체를 열렬히 좋아했다고 하대요^^;;

cyrus 2019-02-10 14:43   좋아요 1 | URL
로렌스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니체도 알아야 하는군요. 로렌스가 저를 피곤하게 만드네요.. ㅎㅎㅎㅎ

AgalmA 2019-02-10 23:58   좋아요 0 | URL
잘 몰랐는데 D.H 로렌스가 해외에서는 인지도가 많은가 봅니다?
국내에 번역은 안 되었지만 제프 다이어가 D.H 로렌스 전기를 쓰려 하다가 실패한 이야기 <Out of Sheer Rage>도 있더군요. 하긴 영국에서 현재 국민 작가급이라는 제프 다이어도 국내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cyrus 2019-02-11 13:54   좋아요 0 | URL
지금 서구에서의 로렌스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1960년대 말에 성해방 운동이 일어났을 때 로렌스의 인기는 엄청 났었을 거예요. 로렌스 전기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