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큐큐퀴어단편선 1
이종산 외 지음 / 큐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퀴어(Queer)는 레즈비언 · 게이 · 양성애자 · 트랜스젠더 등 세상의 모든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퀴어 소설은 성소수자의 일상을 전면으로 다룬 소설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성소수자가 등장하지 않는 퀴어 소설도 가능하다. 이런 퀴어 소설은 세상을 바라보는 성소수자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一般, 이성애자)’ 작가가 소설에서 ‘이반(異般: 성소수자)’ 서사를 조형하는 일은 매우 정교한 작업이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1인 퀴어 문학 전문 출판사인 큐큐가 선보인 국내 첫 퀴어 단편 선집이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여섯 편의 소설들은 서양 고전을 퀴어 서사로 변주한 것이다.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가 쓴 『가든파티』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맨스필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파티에 들뜬 부유한 사람들과 교통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비참함을 비교하며 인생의 한 단면을 펼친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그저 유복한 집 안에서 자란 소녀가 가난한 노동자의 죽음을 접한 후 겪는 심리 변화만 따라간다. 『가든파티』가 그랬듯이 이종산 작가의 『볕과 그림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삶의 진실에 깨닫는 인물의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죽음은 언제나 삶과 함께한다. 죽음은 삶, 그다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다. 그러나 이종산 작가는 ‘죽음’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의미도 주목한다. 사랑도 우리 삶의 일부이다. 상실은 또 다른 사랑을 통해 치유된다. 『볕과 그림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느끼는 상실의 감정을 어떻게 마주치면서 극복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삶은 고통스러우나 또한 그것을 ‘사랑’과 함께 안고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붙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기쁨과 묘한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고는 한다.

 

(작가 노트, 35쪽)

 

 

김금희 작가의 『레이디』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애러비』『죽은 사람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소설이다. 아련하고 애틋한 여고생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퀴어 문학의 고전이다. 도리언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했던 인물이다. 박상영 작가의 『강원도 형』에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인스타그래머 ‘도이언’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언론, 광고 같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외모 강박이나 외모지상주의는 점점 더 고착화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성소수자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외모지상주의는 성소수자의 몸에 대한 편견(“성소수자는 예쁘장한 외모를 유지하려고 화장을 한다”)을 낳을 뿐만 아니라 몸의 차이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임솔아 작가의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허먼 멜빌(Herman Melville)『선원, 빌리 버드』를 변주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타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여 ‘정상’으로 만들려는 ‘선한 폭력’이 어떻게 인간 대 인간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는 특정한 사람만을 ‘정상’으로 인정한다. 자신이 느끼는 삶의 결핍이나 통증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타자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자기의 유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정상성은 그 영역 안에 종속되어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135쪽)

 

 

강화길 작가의 『카밀라』는 레즈비언 뱀파이어가 나오는 세리든 르 파누(Sheridan Le Fanu)의 동명 소설을, 김봉곤 작가의 『유월 열차』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은하철도의 밤』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여섯 편의 소설은 생각하기에 따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들이 ‘평범하게’ 느껴졌다면 이 책을 만든 작가와 출판인들 입장에선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들의 사랑 또한 인간으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큐큐퀴어단편선’은 매년 한 권씩 선보인다고 한다. 여전히 세상에 호명되지 못한 성소수자들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자주 나왔으면 한다. 이야기는 멈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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