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읽는 시간 -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 심리학
문요한 지음 / 더퀘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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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은 친숙한 것을 좋아하고 낯선 것을 불편해한다. 심리학에 ‘단순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단술노출 효과’란 자주 보는 것만으로 호감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알고 있는 악마가 아직 알지 못하는 악마보다 낫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새로운 것은 호기심과 동경을 불러일으키지만,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불안감과 경계심도 동반한다. 따라서 친숙함은 익숙한 것에 길들게 함으로써 낯선 상대방에 다가서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동기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낯선 사람, 낯선 경험에 대한 새로운 접촉과 관계 맺기를 가로막는 것이다. 따라서 풍성하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친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 항해에는 반드시 여러 개의 목적지가 있다. 그곳에는 가족, 친구 등이 모여 살고 있다. 인생이란 항해에서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명확히 결정해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항해하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면 ‘건강한 인간관계’로 나아가는 길목을 알려주는 ‘나만의 항해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해마다 달라지는 지리 정보를 재빨리 감지하고 이를 지도에 반영해 업데이트를 해야 하듯이 ‘인간관계 지도’도 상황에 맞게 바로바로 업데이트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의 틀을 가정 안에서 배우게 된다. 사회에서 맺는 동료나 친구와의 관계는 이미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그 틀이 만들어진 것이며 결혼 후의 부부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보고 배운다. 어머니의 애정은 아이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어머니가 곁에 있을 때 아이는 낯선 주변을 더 많이 탐색했다. 심리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의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어려서 어머니와 올바른 애정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동은 성장한 이후 대인관계를 잘 갖지 못한다. 그러나 무조건 자녀를 사랑하기만 한다고 해서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고,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애착 대상, 즉 부모로부터 분리될 때 또는 분리될 것을 예상했을 때 느끼는 불안을 그대로 방치하면 대인관계를 피하거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린 시절 몸에 밴 이러한 애착의 패턴들을 지닌 채로 가정을 떠나 사회로, 결혼 관계로 나아간다. 우리가 흔히 관계 맺기 어려워하거나 빈번히 실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은 인간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저지르게 되는 실수와 갈등의 원인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동시에 인생의 발목을 잡는 과거의 관계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언한다. 《관계를 읽는 시간》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바운더리(boundary)다. 바운더리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내가 아닌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자아의 경계인 동시에 관계의 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통로이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 기능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보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류’이다. 전자는 자신을 돌보는 것이며, 후자는 상대방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인간관계가 생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순응형, 돌봄형, 지배형, 방어형이라는 4가지 틀로 나타난다.

 

《관계를 읽는 시간》은 인간관계 변화의 출발점으로 ‘바운더리’에 주목한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관계 방식, 이것을 이해하고 바꾸지 않는 한 관계에서 겪는 괴로움도 반복된다. 그 관계 틀을 알아보고 바꾸는 여정은 ‘바운더리 심리학’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바운더리 심리학은 ‘지금 모습으로 충분하다’는 위로의 심리학이 아니라 관계를 재구성하는 ‘변화의 심리학’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계 맺음이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성장 과정을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성찰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또 어떠한 형태의 애착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이 그럴싸하게 심리학을 이용한 자기계발서와 구별되는 점은 단기적으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문제 원인을 알아볼 수 있게끔 하는 데 있다. ‘족집게’ 자기계발서가 당장의 문제 상황을 잘 해결해 주는지 몰라도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못한다. 우리가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복잡하게 꼬여버린 인간관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관계가 회복한다고 해서 그다음부터는 아무 문제없이 잘살게 되는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문제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저자는 사람을 만나면서 반드시 겪게 될 사회적 고통(이별 또는 상대방 간의 갈등에 직면하면서 느끼는 고통)은 관계를 잘 돌보라는 신호라고 말한다. 어떤 난감한 상황을 만나든 그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자신의 관계를 돌아볼 기회이다.

 

개별적인 인간은, 그리고 그런 두 인간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당연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내 관계에 대한 바운더리는 몸과 마음에 익은 습관과 같아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쉽지 않다. 자신의 삶에서 상대방과의 관계가 늘 불편했다면,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나 자신과 정직하게 만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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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0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과의 대화는, 저의 경우엔 일기 쓸 때와 혼자 산책할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cyrus 2018-12-02 12:39   좋아요 1 | URL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일정에 맞추면서 살아가게 되면 내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는 여유마저 줄어드는 같아요. 그래서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