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은 아메리카 대륙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는 해였다. 콜럼버스(Columbus)를 보내 이 대륙의 실체를 확인한 스페인에게는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역사적인 해로 여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잘살고 있었던 원주민(Native Americans)들에게는 고난을 예고하는 불행의 해였다. 이른바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되었다. 문명이라는 허울 속에 원주민들의 삶과 역사는 모조리 짓밟혔고, 지금은 일부 후손들만 살아남아 보호 구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0)

*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서해문집, 2004)

 

 

 

콜럼버스는 대서양 횡단이 세계 역사를 바꾸는 항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새로운 땅보다 황금에 더 관심이 많았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언급한 ‘지팡구(Jipangu, Zipangu)를 찾고 싶어 했다.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일본을 ‘황금의 나라’로 소개했다. 그가 ‘일본은 막대한 금을 생산하고, 그곳의 궁전이나 민가는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라는 식으로 기록한 덕에 지팡구는 한때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인식된 바 있다. 콜럼버스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본 아메리카를 인도의 일부(Indias, 인디아스)라고 여겼고, 바하마 제도에 속한 여러 섬과 쿠바를 지팡구나 중국 정도로 생각했다.

 

 

 

 

 

 

 

 

 

 

 

 

 

 

 

 

 

 

 

 

 

 

 

 

 

 

 

 

 

 

 

* 콜럼버스, 라스 카사스 엮음 《콜럼버스 항해록》 (범우사, 2000)

* 콜럼버스, 라스 카사스 엮음 《콜럼버스 항해록》 (서해문집, 2004)

* [절판] 라스 카사스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북스페인, 2007)

* 김선욱, 박병규 엮음 《항해와 정복》 (동명사, 2017)

 

 

 

 

콜럼버스는 지팡구로 가는 거창한 항해 계획을 실현하는 데 10년의 긴 세월을 허비하였다. 재정적 후원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나서 자란 15세기 이탈리아는 수많은 작은 도시국가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그의 항해 사업을 도울만한 국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후원에 의존하게 됐다.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지만,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Isabel I)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Fernando II)의 연합군이 주도한 영토 회복 운동(Reconquista)이 성공하면서 통일을 이룩했다. 콜럼버스는 이 스페인 공동 왕(가톨릭 양왕)에게 자신의 항해 사업을 제안했고, 공동 왕은 그에게 항해를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1492년에 콜럼버스는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첫 번째 항해에 나서게 되었다. 《콜럼버스 항해록》은 1492년 8월 3일부터 1493년 3월 15일까지 220여 일의 1차 항해의 경위를 기록한 책이다. 현재 이 책의 원본은 분실되었고,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eme de las Casas) 신부가 이 원본의 내용을 요약한 필사본만 남아 있다. 그래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는 라스 카사스 신부가 편집한 것이다. 라스 카사스 신부는 ‘인디언의 보호자’란 별명을 얻을 만큼 원주민의 인권을 위해 애쓴 성직자다.

 

국내에 2종의 《콜럼버스 항해록》 번역본이 있다. 범우사 판은 라스 카사스 신부가 항해 일지에 직접 단 주석들까지도 옮겼다. 서해문집 판도 라스 카사스의 주석이 나오긴 하지만, 주석이 빠진 내용(1493년 1월 15일 자)도 있다. 신부는 3인칭 시점으로 (콜럼버스) 제독은 ~을 했다”는 식으로 항해 일지를 기록했는데, 범우사 판은 이 서술 방식을 그대로 옮겼다. 반면 서해문집 판은 콜럼버스가 화자인 1인칭 시점의 일기체 형식(“나는 ~을 했다”)으로 편집되어 있다. 서해문집 판의 장점은 고대 문명과 신대륙 항해에 관련된 풍부한 도판이다. 그래서 읽으면 지루하지 않다. 콜럼버스가 항해에 나서게 된 역사적 배경과 고대 원주민의 문화에 대해서 충실히 설명돼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문화뿐만 아니라 덤으로 아스테카 문명과 마야 문명의 문화도 소개하고 있다. 항해 일지 속에 콜럼버스가 스페인 공동 왕에게 보낸 서한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서한 역시 콜럼버스 항해(총 네 차례)의 과정을 가늠할 수 있는 문헌이다. 《항해와 정복》(동명사)에 콜럼버스가 쓴 서한들이 수록되어 있다.

 

 

 

 

 

 

 

 

 

 

 

 

 

 

 

 

 

 

 

 

 

 

 

 

 

 

 

 

 

 

 

 

 

 

* [절판] 앤서니 그래프턴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2000)

* [절판] 가일스 밀턴 《수수께끼의 기사》 (생각의나무, 2003)

* 존 맨더빌 《맨더빌 여행기》 (오롯, 2014)

* 움베르토 에코 《전설의 땅 이야기》 (열린책들, 2015)

 

 

 

“책 속에 세상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책은 여행과 탐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남긴 여행기와 항해 일지는 여행과 모험의 취향을 자극했다. 절판된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은 고대의 옛 문헌들이 대항해 시대에 끼친 영향을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들어있는 ‘케케묵은 텍스트’란 고대에 만들어진 지도, 지리서, 여행기 등을 뜻한다. 콜럼버스는 ‘탐험가’ 이전에 《동방견문록》과 고대인들의 지리서를 탐독했던 ‘독서가’였다. 콜럼버스 같은 항해가들은 처음에 옛 문헌들을 탐독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지만, 그곳을 직접 관찰하고 확인하면서부터 지리에 대한 옛사람들의 생각이 허구임을 깨달았다.

 

《동방견문록》 다음으로 널리 읽힌 《맨더빌 여행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서술의 차원을 넘어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준 책이었다. 존 맨더빌(John Mandeville)은 1322년 예루살렘 성지 순례에 나섰고 무려 34년이 지나서야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인물(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이다. 그는 성지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 자바와 수마트라까지 다녀온 여정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가 쓴 여행기는 수백 개의 사본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수수께끼의 기사》 (생각의나무)는 ‘여행기의 저자’이자 ‘기사’로 알려진 존 맨더빌의 정체를 추적한 책이다.

 

‘케케묵은 텍스트’는 사실과 거짓, 과장이 뒤섞여 있지만, 유럽 너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충분했다. 콜럼버스도 이 책을 읽고 항해를 위한 영감을 얻었다. 탐험가들은 여행을 통해 확실한 지식을 얻고 나서부터 세계를 설명하는 ‘권위 있는 문헌’이었던 과거 지리서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된다. 한 사람이 ‘독서가’(또는 ‘몽상가’)에서 ‘탐험가’로 변모하는 과정은 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근대적 지식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콜럼버스를 ‘근대적 지식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전설의 땅 이야기》 (열린책들)에 콜럼버스를 지상 낙원을 찾고 싶었던 ‘중세의 마지막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콜럼버스의 한계를 지적한 그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공동 왕에게 3차 항해의 결과를 보고한 서한에 지상 낙원이 있다고 언급했다(《항해와 정복》, 『콜럼버스가 3차 항해에서 가톨릭 양왕에게 보낸 편지』). 하지만 그는 1차 항해 결과를 보고한 편지에서 자신이 참고한 고대 문헌에 나온 내용은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추측’이라고 밝혔다. 그는 분명히 자신에게 영감을 준 고대 문헌들의 부정확함을 비판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업적을 스페인 왕에게 인정받아 아메리카 대륙을 다스리는 총독의 권한을 손에 쥐고 싶었으며 다음 항해를 위한 후원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스페인 왕에게 보낸 서한에 아메리카 대륙을 ‘지팡구’인 것처럼 과장되게 묘사했다. 그렇다면 항해 일지와 서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콜럼버스의 모순된 모습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업가다운 면모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케케묵은 텍스트들’의 환상에 빠져나오지 않은 중세인의 구시대적 면모로 봐야 하나. 콜럼버스도 알고 보면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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