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부자연스러운 체형을 가진 존재이다. 보통 굉장한 힘과 잔인성을 가진 공포의 대상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이다. 예를 들면 살아 있는 뱀이 뒤엉켜 있는 머리를 가진 메두사(Medusa)는 괴물이다. 스핑크스(Sphinx)는 사자의 몸뚱이에 상반신은 여자였다. 이 괴물은 어려운 질문을 인간에게 던진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간을 죽여 버린다. 고대 인도에서 신체적 기형은 신성한 존재로 이해했다. 아스테카(Azteca) 신화에 나오는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은 날개 달린 뱀의 모습을 한 창조주이다. 그는 우주의 생성에 관여한 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지금 우리는 괴물을 어떻게 볼까? 물어보나 마나 인정하지 않는다. 괴물은 추하고 무섭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괴물을 정의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뭐라고 불러야 하지? 우리는 괴물이 아니라서 ‘정상’인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괴물’과 ‘기형’을 주제로 한 책을 지금 소개하는 건 최근의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고민은 ‘기형’이라는 말을 대신할 단어를 찾는 것이다. 기형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기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람직한가? 이번에 소개할 책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 [품절]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 (도서출판 자작, 2001)

* 필리프 코마르 《인체 : 에로티시즘과 해부학》 (시공사, 2001)

* 아먼드 마리 르로이 《돌연변이》 (해나무, 2006)

* [절판] 마크 S. 브룸버그 《자연의 농담》 (알마, 2012)

* 스테판 오드기 《괴물 : 가깝고도 먼 존재》 (시공사, 2012)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21세기북스, 2018)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 (도서출판 자작)《돌연변이》 (해나무), 《괴물 : 가깝고도 먼 존재》 (시공사)는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온갖 기형 증상을 보여준다. 결합쌍생아(샴쌍둥이), 거인증, 단안증(외눈증) 등 다양한 기형 증상에 대한 역사적 기록,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살핀 뒤 현재 ‘기형학(Teratology)으로 밝혀낸 그 원인의 의미를 설명한다. 기형학이 등장하면서부터 기형은 ‘혐오의 대상’에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환점이 있다고 해서 기형에 대한 대중의 왜곡된 시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기형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을 우리에 가두고 전시하는 프릭 쇼(freak show)는 20세기에 들어서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프릭 쇼의 무대 위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장애인이다. 프릭 쇼를 홍보하는 매체는 그들을 ‘이국적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방인’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프릭 쇼의 장애인들은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난 서구인이었다.

 

프릭 쇼는 ‘비정상적인 신체’를 전시하여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무엇이 ‘정상적인 신체’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프릭 쇼를 즐기는 관객들은 ‘비정상’과 ‘정상’의 이분법 속에 강력하게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누가 괴물이며, 정상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관객들은 충격과 호기심을 느낌과 동시에 무대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가 ‘정상’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기형과 괴물을 작품의 소재로 즐긴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인체 : 에로티시즘과 해부학》 (시공사)은 예술에서의 ‘기형’을 ‘가시적인 위험’을 경고하기 위한 신호로 본다. 괴물은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상징하는 대상이었고, 예술가는 그것을 ‘혐오’의 대상으로 설정하여 ‘아름다움’을 한층 더 부각한다. 괴물의 모습과 대비되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관객은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존재가 된다. 그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움’이란 ‘균형 잡힌 완벽한 신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균의 종말》 (21세기북스)에서는 ‘평균’ 개념으로 인간의 특징을 설명하려고 했던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는 ‘평균에 가까운 인간’을 ‘정상’으로 분류하여 이에 미치지 못한 사람은 ‘기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 ‘비정상’으로 지목될 때, 그와 대척점의 구도에선 사람은 정상적인 존재가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사회에서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과 같다. 혐오는 신체적 차이뿐만 아니라 성 정체성(gender identity), 섹슈얼리티(sexuality)를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로 전환하며 이를 통해 차별과 배제를 구성한다.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는 한때 기형으로 분류된 간성(intersex), 동성애, 성도착 등도 언급한다. 지금은 동성애자를 ‘기형’의 한 범주로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비정상’으로 지목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모두 가졌다는 이유로 양성인을 ‘완벽한 인간’으로 칭송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상황일 뿐, 시간이 지나면서 양성인은 기형적인 질환으로 간주하였다. 《자연의 농담》 (알마)은 기형을 ‘진화적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기형적인 모든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이 세계에서 살아남았는지 보여준다. 《돌연변이》의 저자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를 300개씩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유전적 변이로 인해 생긴 기형은 생물학적으로 인간 모두에게 발생 과정에서 해당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기형의 원인을 무조건 유전적 요인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기형을 일으키는 유전질환은 유전자 이상과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는 복합적인 사례가 대부분이다.

 

기형인 생명체들은 라틴어로 ‘자연의 농담(Iusus natura)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 말은 기형을 ‘자연의 실수’로 인식하는 오늘날의 관점과 대비된다. 실수는 ‘잘못함’ 또는 ‘잘못됨’이라는 전제가 들어가 있다. 기형을 ‘자연의 실수’로 보는 사고방식은 그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될 ‘잘못된’ 존재로 보는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자연의 농담》에서는 기형 이외에 ‘이형(異形)이라는 단어도 나온다. ‘정상’을 뜻하는 ‘전형(全形)’과 반대되는 표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형도 ‘자연의 일부’이며 오랜 진화의 결과인 ‘다양성’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타자의 생김새가 나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그것을 ‘전형’의 틀에 맞춰 ‘비정상’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기형 대신에 ‘이형’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 물론, 단어를 바꿔서 사용한다고 해서 기형에 대한 차별적인 뉘앙스가 퇴색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형’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이형과 전형을 비교하려는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 차이가 차별로 변질하고 다름이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혐오는 일상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무섭다. 잘도 숨어버리는 이 혐오야말로 우리 현실에 잠복하여 시시때때로 섬뜩한 손톱을 내미는 현재형의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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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19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놓은 책중에서 유일하게 읽은 책은 기형의 역사 하나뿐이네요^^;;;

cyrus 2018-11-20 19:58   좋아요 0 | URL
기형학을 처음 소개한 책일 겁니다. 이런 책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