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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1 - 남자의 눈으로 본 남성문화
수요자 포럼 지음,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기획, 허주영 엮음 / 호랑이출판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요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면 가수 아이콘의 노래 <사랑을 했다>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란 말이 일상적인 말이 돼버린 것 같다. 감정 표현을 쑥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용기를 내서 진솔한 감정을 드러낸다. 더 진한 애정 표현까지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쯤 되면 ‘사랑’이 넘치는 시대가 된 것 같은데, 정말 사랑의 양이 증가했을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져서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합의하고 성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이기에, 상대방의 몸을 강제로 침탈하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떳떳하게 말할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하룻밤’ 성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즐기거나 또는 사랑하는 여성이 있으면서도 다른 여성의 성(性)을 구매하는 남자들이 있다. 그들은 상식적으로 성매매 행위가 나쁜 건 원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남성 문화를 너무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 가게 된다. 남성 연대(homosocial) 속에 성매매는 남성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된다.
나는 성매매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돈을 주면서 일면식이 없는 여성과 섹스를 하는 남성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볼품없고 비쩍 마른 몸을 이성 앞에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주변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성매매 업소에 가지 않는다고 거절하니까 친구들은 내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그들은 더 이상 내게 ‘떡 치러 가자’고 꼬드기면서 접근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나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정을 잃더라도 그 정도 반응은 감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군대에 있을 때가 좀 힘들었다. 군대 선임과 동기들은 성매매하지 않은 나를 ‘어리석은 놈’으로 취급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여성과 잤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면서 과시했다.
앞으로도 성매매를 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성매매를 안 한다고 해서 남성에게 성 구매를 부추기는 남성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방, 안마 시술소, 여관, 오피스텔, 노래방 등 일상에서 불법 성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성매매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회 속에 살아가는 나도 그렇고, 남자라면 마음만 먹으면 성매매를 할 수 있다. 모든 남자는 성매매의 잠재적 구매자이며 실질적 구매자가 될 수도 있다. 성매매를 같이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하는 남성 문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남성 중심의 잘못된 성 문화를 부끄럽게 여기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부산에 성매매를 주제로 공부를 하고, 토론하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이름은 ‘성매매 수요자 포럼(이하 수요자 포럼)’. 2년 전에 여성 인권지원센터 ‘살림’의 지원을 통해 모임이 만들어졌다. 수요자 포럼에 참석한 남자들은 성매매를 ‘수요’의 문제로 보고, ‘내부자’인 남성의 시선으로 접근해서 논의한다.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1》은 수요자 포럼에서 활동하는 남자 회원과 시민운동가 11명의 성매매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성매매가 필요악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성매매는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집창촌을 폐지하면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이런 것 때문에 공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매매가 만연된 우리 사회에 성폭력 건수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성을 구매하는 남성들이 있기 때문에 성매매가 사회의 필요악이라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여성의 성을 돈 주고 사도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절대로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회일수록 성매매 자체를 ‘부끄러운 일탈’로 인식하지 않는다. 왜 성매매를 안 하는 남자가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성매매는 남성 문제’라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 한 성매매 문제는 성매매 업소에 종사한 여성, 즉 공급자의 문제로만 논의하게 된다. 이러면 성매매를 매개로 한 남성 연대 문화는 유지되고, 정작 성매매의 실질적 수요자인 남자들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 ‘불편한 논쟁’을 슬쩍 피한다.
수요자 포럼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모임에 참석한 남자들은 ‘수요자인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 문제를 논의한다. 그들은 함께 모여 성매매 문제를 다룬 책을 읽고 토론하고, 전국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도 방문했다. 토론과 현장 공부가 거듭될수록 그들은 오랫동안 쉬쉬해 온 남성 연대 문화의 실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책에 나오는 수요자 포럼 남성 회원들은 진지한 토론과 고민을 거치면서 ‘완벽한 남성’이라는 환상을 스스로 깨부순다. 그들은 별생각 없이 남성 연대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던 과거를 반성한다. 이러한 반성은 우리 남성 모두가 해야하는 공통의 행위이지 특정 개인만의 행위가 아니다.
남성 문화에 향한 비판이 흐릿해지면, 성매매 문제에 대한 이해는 빈곤해진다. 그렇게 되면 성매매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고, 성매매의 잠재적 구매자이자 실질적 구매자인 남성들은 그 문제를 피하는 수준에 그친다. 남성들은 성매매에 대해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차별, 혐오를 서슴없이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성매매는 ‘남성 문화’와 연관 있는 ‘남성 문제’다. 남성의 자기비판과 성찰이 부재한 성매매 담론으로는 성매매를 근절하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남성들이 성매매 문제를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더 많이 목소리를 내고, 성찰하고,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