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중세는 신을 정점으로 한 위계적인 질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신, 즉 하나님이 모든 세계의 주체였다. 그러나 근대 문명이 들어서면서 신의 왕관은 벗겨지고, 중세의 위계질서는 무너진다.

 

 

 

 

 

 

 

 

 

 

 

 

 

 

 

 

 

 

 

* 르네 데카르트 《방법 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문예출판사, 1997)

* [품절] 프랜시스 베이컨 《학문의 진보》 (아카넷, 2002)

* 프랜시스 베이컨 《신기관》 (한길사, 2016)

 

 

 

근대 문명은 ‘이성’의 발견에서 시작한다. 이것의 출발점은 데카르트(Descartes)‘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이다.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은 인간이 ‘이성적 인간’임을 선언하면서 시작한다. 이성은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다. 데카르트는 참과 거짓을 식별하고 사태를 잘 판단하는 능력을 ‘이성(양식, 良識, Bon sens)’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성적 인간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주체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무기 삼아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자연은 인간의 손에 마음대로 내맡겨지게 된다. 이제 인간은 세계를 ‘인간을 위한 세계’로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상은 프랜시스 베어컨(Francis Bacon)의 명제로 이어진다. 그는 “지식은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을 알면, 자연을 지배할 힘을 가지게 된다. 베이컨은 지향하는 과학적 방법론은 실험에 수행되는 탐구이다. 그가 쓴 《학문의 진보》《신기관》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진보에 대한 희망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책이다.

 

대부분 서양사는 서구 근대가 르네상스, 종교 개혁, 그리고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역사적 추동력에서 시작됐다고 기술한다. 이 근대의 발전 과정에서 핵심은 단연 ‘이성’이다. 이성은 진리를 밝히는 ‘빛’으로 간주했다. 이 빛은 세계의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다고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생각했다. 이 시기에 탄생한 과학이 이성의 효용성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성의 빛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비출 때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의 모든 비밀은 밝혀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2003)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16)

 

 

 

 

 

 

 

 

 

 

 

 

 

 

 

 

 

 

 

 

 

 

 

 

 

 

 

 

 

 

 

 

* [품절] 크리스 호록스 《미셸 푸코》 (김영사, 2003)

* [품절] 요하나 옥살라 《HOW TO READ 푸코》 (웅진지식하우스, 2008)

* 하상복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김영사, 2009)

* 양운덕 《미셸 푸코》 (살림, 2012)

 

 

 

그러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이성이 인간을 위한 이로운 도구라고 본 계몽주의의 믿음을 비판했다. 그는 근대의 핵심인 이성을 도마에 올렸다. 《광기의 역사》에서는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광기)을 명확히 규정하는 사회의 통제적 관행에 대한 고발을 통해 권력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푸코가 말하는 ‘권력’은 국가 권력이라든가 특정 집단의 세력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 이후 이성의 배후에는 지식과 권력의 작용이 자리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실증적 · 합리적 사고와 연결된 권력에 의해 개개인의 삶은 억압받고 통제된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감시 기능’을 체화한 권력을 조명한다. 이 책은 감옥을 정점으로 하는 감시 처벌의 기구(가정, 학교, 병원, 공장 등)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감옥의 탄생’이다. 그러나 푸코는 단순하게 감옥의 탄생 과정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감시의 체제를 통한 권력의 실체와 은밀한 전략을 파헤쳤다. 그가 주목한 것은 만인이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던 전근대 사회가 한 사람이 만인을 주시하는 시선을 가진 근대적 ‘감시 사회’로 변화되었다는 점이었다.

 

 

 

 

 

 

 

 

 

 

 

 

 

 

 

 

 

 

* 한병철 《투명사회》 (문학과지성사, 2014)

* 한병철 《심리정치》 (문학과지성사, 2015)

 

 

 

오늘날 사회는 투명성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투명성이 더 많은 민주주의가 더 많은 정보의 자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는 투명한 정보 시대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주는 ‘디지털 빛(Digital Light)’이다. 그러나 투명성을 ‘강요’하는 사회, 즉 ‘투명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 체계가 가동된다. 이 투명사회 속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한다. 그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한다.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는 개인의 욕구를 채워주고자 하는 ‘스마트한 권력’이다. 이 세련된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게 만든다. 소셜네트워크에 글이나 사진으로 자신을 노출하는 순간 그 내용이 공유되고 개방된다. 우리는 항상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그리고 북플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남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엿보고 때때로 자신을 노출한다. 투명성은 사회 구성원들을 감시 체계로 몰아넣는다. 그리하여 투명성의 강요에 의한 감시는 낯선 것과 이질적인 것을 규정하여 사회를 안정시킨다. 사람들은 자발적인 노출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낯섦, 이질성을 없앤다. 감시 체계가 강화될수록 인간관계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신체는 소멸하고 ‘빅 데이터(Big Data)’와 같은 실증적인 정보와 수치화된 기록만 남는다. 인간의 실질적 존재와 친밀한 관계는 빅 데이터 속으로 흡수되고 만다. 빅 데이터는 감시뿐만 아니라 인간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나남출판, 2010)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백’을 강요하는 근대 사회가 담론을 생산하여, 그 담론은 지식이 되어 곧 권력이 된다고 말했다. 근대의 섹슈얼리티 담론은 이성애와 동성애, 성도착자를 구분하여, 특히 여성과 아동의 성 정체성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래서 그는 서구인을 ‘고백의 짐승’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비유를 빌리자면, 현대인은 ‘노출의 짐승’이다. 투명사회 속에 흐르는 권력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수많은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엮여있는 권력. 지식과 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우리가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지식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생산됐고, 누구를 위한 권력이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베이컨의 명제는 요즘 사회에 맞지 않는다. 식자우환(識字憂患). 오히려 지식을 아는 것은 근심이 된다. 권력 속성이 있는 지식은 힘이 아니라 ‘병(病)’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병. 차별과 배제, 그리고 폭력에 이르는 무서운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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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9-20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투명한 정보 시대에 대해 공포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인터넷 블로그에 글뿐만 아니라 자기 사진까지 올리는 사람의 그 용기를 우러러봅니다. 닮고 싶어집니다.

<서치>라는 영화를 최근에 봤어요. 요즘 시대가 아니면 만들기 불가능한 영화예요.
사라진 딸의 SNS를 뒤져서 딸의 행방을 찾는 내용입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SNS의 편리함보다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과연 우리는 노출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cyrus 2018-09-21 18:29   좋아요 0 | URL
여성들은 자신이 구매한 속옷을 입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상품 후기로 올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진도 음란 사이트의 표적이 됩니다. 남자인 제가 생각해도 그런 일은 정말 끔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