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테레사 포르카데스 이 빌라 지음, 김항섭 옮김 / 분도출판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성경 읽기는 곤욕스럽다. 여성을 자연스럽게 대상화하고 여성 혐오적인 표현도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 신자들은 그 내용을 읽는 데 있어 상당히 힘들어한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성경을 읽으려니 성경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 같고, 그대로 읽자니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성경 구절들이 너무 쉽게 무시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어쩌면 마음 한편에 불편을 간직한 채 후자를 택해 왔는지 모르겠다.

 

여성 신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거룩한 신적 질서로 고착해온 기독교의 구조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새로운 방식의 성서 해석을 시도해왔다. 이러한 시도 중에 가부장적 남성인 하나님을 재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여성 하나님’ 중심의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확장된 다양성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여성 신학의 시도는 여전히 남성적 신의 범주에 머문다. 남성적 신의 자리에 양육 능력이 있고, 사랑이 충만한 여성적 신이 대신한다고 해도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을 넘어서지 않는 한 하나님은 ‘여성화한 남성 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젠더 이분법 안에서 추구되는 ‘여성화’ 시도는 기독교 내 가부장적인 질서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성도 지도자 및 지식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교회가 어떻게 남성 중심적인 교권 제도를 고집하는 교회로 변했는가. 그렇다면 페미니즘 관점을 적용하여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배치하는 제도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까.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진정한 의미의 여성과 신학이 무엇인지 접근한다. 책은 여성 신학 대신에 ‘여성주의 신학’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그것의 의미와 역사를 다룬다.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 위대한 여성들을 소개한다.

 

책의 저자는 여성주의 신학을 ‘비판 신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한다. 여성의 소명(“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창세기 2:18,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에베소서 5:22)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은 신앙적으로 포장된 기독교적 윤리 담론이다. 여성 신자가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상황이라면 그녀의 삶은 모순될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는 전근대적, 아니 성서가 그리는 봉건적 여성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여성주의 신학의 목표는 두 가지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와 ‘(성경이 그리는) 여자로 살아가기’가 충돌하는 ‘모순의 경험’을 비판하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 대안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주의 신학(teologia feminista)과 여성 신학(teologia femenina)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여성 신학은 신학적 접근을 통해 가부장적인 종교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여성의 종교 경험에 주목한다. 그런데 저자는 여성 신학이 반드시 비판적 관점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여성이 있듯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여성 신자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여성 (개인의) 관점’이지 여성주의적 관점이라 할 수 없다. 종교를 믿는 많은 여성이 종교 안에서까지 남녀평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성의 관점’은 남성 체제 유지를 위한 신학이 되어 성경의 가르침을 도그마(dogma)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말하는 여성과 남성은 어느 쪽이든 복종이나 지배 없이, 호혜적 관계를 맺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이다.

 

남성 중심 사회 내부의 여성들을 타자화한 채 배제된다. 그런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의 여성 억압적 문화에 따라야만 ‘정상’인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여자들은 ‘미친년’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현실에 순응하거나, 미쳐버리거나, 이 두 가지 선택지에만 놓여 있었던 건 아니다.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은 두 가지 길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그 길들 사이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저자는 당시 시대적 제약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여성들을 보여준다. 주류 역사에는 잊혔지만 그녀들은 여성의 예속에 반대했고, 하나님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존재로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이 발굴해 낸 선구적인 여성들은 시대적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차별과 불의의 제도에 맞서 싸웠다.

 

지금의 종교는 현실의 문제를 바꾸기보다는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탐탁지 않은 접근 방법이다. 이렇다 보니 봉건적 남성들 중심으로 해석된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교회는 사회와 정반대로 간다. 여성주의적 관점 없이는 교회뿐만 아니라 신학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교회가 들어야 할 목소리는 그동안 가부장제 아래서 자기 정체성과 목소리를 스스로 찾고자 시도하는 여성들의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17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7 17:40   좋아요 1 | URL
성경에는 여성차별적인 내용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성인)을 찬양하는 내용도 있어요. 그런데 후자의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성경이 남성 중심 글쓰기의 산물이라서 종교 발전에 기여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지 않아요.

레삭매냐 2018-09-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독교의 경우를 보면, 여성들의 수가 압도적
인데 교회 내 결정권에 있어서는 목소리가 반
영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단적인 예로 여성 목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남성 목사 수에 비해 적다는 게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8-09-17 17:43   좋아요 0 | URL
네. 교회 내부 안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불평등한 구조를 완전히 뒤집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