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단편소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를 읽다가 익숙한 지명을 발견했다.
* 에도가와 란포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관음은 도쿄로 치면 아사쿠사쯤 되는 곳인데, 경내에는 여러 가지 구경할 만한 작은 전시실도 있고 극장도 있었다. 시골인 만큼 그런 것들이 한층 더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요즘에야 말도 안 되지만 그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교사가 연극을 보러가는 것조차도 금지했다. [주1]
* 미리엄 실버버그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현실문화, 2014)
아사쿠사(浅草)는 일본 도쿄에 있는 구역이다. 이 구역에 도쿄에서 가장 큰 절인 센소지(浅草寺)가 있다. 센소지 주변에는 에도 시대부터 형성된 번화가가 있다. 절과 신사를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상인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졌다. 근대 일본 사상과 문화를 연구한 미리엄 실버버그(Miriam Silverberg)는 센소지의 거리 문화를 ‘참배와 놀이의 문화’[주2]라고 했다. 메이지 정부 시절에 아사쿠사는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고, 센소지 일대는 일곱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아사쿠사 제4구와 제6구는 도쿄를 대표하는 향락지가 되었다. 이곳에 기형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만 모아 구경거리로 세우고 묘기를 시키는 프릭 쇼(freak show)나 기이한 것들의 모습을 담은 활동사진을 전시하는 쇼가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기이한 것들을 구경하는 문화를 즐겼고, 이를 ‘미세모노(見世物, 구경거리, 웃음거리)’라 불렸다.
아사쿠사는 서양 문화에 익숙한 중 · 상류층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모던한 유흥 장소’였지만, 그곳에 거지, 넝마주이, 불량아 등 도쿄의 밑바닥에 있는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기도 했다. 아사쿠사는 계층에 구애받지 않고 ‘에로 그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래서 실버버그는 아사쿠사에서 볼 수 있는 그로테스크, 즉 자본주의가 만든 계층 피라미드 ‘밑바닥’에 속한 하층민의 그로테스크를 주목한다.
* [절판 / 안 읽었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 《어둠의 거리》 (혜림사, 1999)
실버버그가 아사쿠사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살펴보기 위해 참고한 문헌 중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 ‘아사쿠사 구레나이단(淺草紅團)’이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은 상인에서부터 밑바닥 사람들까지 아사쿠사에 살아가던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어둠의 거리》 (혜림사, 1999)라는 제목이 붙여진 번역본이 나왔는데 절판되었고,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년 전인가? 헌책방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그곳에 가면 책이 있으려나.
[주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pp. 86.
[주2] 미리엄 실버버그 지음, 서미석, 강진석, 강현정 옮김,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현실문화, 2014, pp. 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