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 건너편에 대구콘서트하우스가 있습니다. 대구 시민회관을 리모델링해서 2016년부터 음악, 연극 등 각종 예술 공연을 펼치는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은 대구콘서트하우스 1층에 있습니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은 여성, 가족을 위한 각종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뒤늦게 확인한 사실인데 대구여성가족재단이 2012년에 출범했을 때 당시 사무실은 서구 평리동 종합복지회관 별관에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종합복지회관 별관까지 걸어가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4월부터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회의실에서 대구 남성을 위한 여성학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김홍미리, 나영, 박이은실, 손희정 외 그럼에도, 페미니즘(은행나무, 2017)

* 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동양북스, 2016)

 

 

 

412일은 오찬호 작가, 426일은 서민 교수, 510일은 여성주의 활동가 김홍미리 님이 강연을 해주셨고, 524일은 손아람 작가가 강연합니다. 무료 강연이라서 24일 당일에 강연 접수를 해도 대회의실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오찬호 작가와 서민 교수의 강연에 관심 있었지만, 두 날 모두 개인 스케줄이 겹쳐서 강연 신청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김홍미리 님의 강연은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김홍미리 님의 강연 주제는 성평등한 사회는 가능한가?’입니다.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은 성차별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성차별은 나빠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홍미리 님은 성차별은 나빠요라는 말 한 마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친한 친구가 여성을 차별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놈은 아닙니다. 저는 친구에게 여성을 차별한 발언의 문제점을 낱낱이 알려줬습니다. 친구는 기혼자입니다. 저는 친구에게 아내와 언젠가 태어날 자식들 앞에서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반응했습니다. 내가 했던 말도 여성을 차별하는 의미였어?”

 

 

 

 

 

 

 

 

 

 

 

 

 

 

 

 

 

 

* 수잔 팔루디 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arte, 2017)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성주의 운동 및 연구에 종사한 여성들은 성차별 ·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렸고,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 억압을 지적했습니다. 그녀들은 남성 중심주의가 반영된 제도나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를 둘러싼 사회에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그녀들의 질문을 거부했습니다.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들의 도발적인 질문에 무관심했습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여성들이 광장에 나서게 되자 남성 중심 사회는 슬슬 여성들의 반응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여성보다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페미니스트에게 인신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상황을 언급하면, 사회는 그 발언을 개인의 특수한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여자들은 불만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왜 너희(페미니스트)만 예민하게 구느냐?” 여성 문제를 거부하고 외면하는 사회일수록 페미니즘과 여성 정책에 대한 백래시(backlash)가 일어나게 됩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왜 이제야 말하나?”

 

여자를 위한 정책이 생기면 남자는 힘들어진다

 

한국 페미니스트는 일베충나 다름없는 메갈충이다.

사회악의 근원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 여성혐오 등 여성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사회 현상이나 문화를 계속 지적했지만, 사회는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김홍미리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수신 거부인 거죠. 오히려 페미니스트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좌파 남성 정치인들마저 여성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사회가 어떤 현상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순간, 사회 구성원 일부는 그 문제를 근절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변함없이 유지됐던 일상을 확 뒤엎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회는 안정적인 체제를 선호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요. 시행착오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죠.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사회의 수신 거부, 즉 백래시는 페미니즘이 있는 곳에 어디에나 있어왔던 현상입니다. 페미니스트는 백래시에 쉽게 두려워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페미니즘과 백래시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세력은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늘어놓는 사람들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백래시의 저자 수잔 팔루디, 김홍미리 인용)

 

 

그런 의미에서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패배주의적 행보를 증명한다기보다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백래시에 직면한 지금이야말로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드높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그래서 김홍미리 님은 "성평등한 사회는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미투 운동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봐 걱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홍미리 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걱정은 비현실적인 기우(奇遇)’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이 좀 더 전진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그 날 강연을 통해서 저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협소하게 바라봤던 제 자신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성은 여성 운동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김홍미리 님은 여성혐오, 성폭력, 성차별 등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에 접근할 때 관찰하지 말고, 문제를 경험하는 여성의 입장과 같은 방향에 서 보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남성도 여성의 질문에 수신할 수 있으며 차별을 근절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타자와 같은 위치에서 서 보는 것. 책만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향상되는 능력은 아닙니다.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지배적 남성성이 남아있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적 남성성으로 물든 실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상력을 키우는 일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책의 위치가 아닌 여성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에 동참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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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5-1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엄지 척!

cyrus 2018-05-15 16:01   좋아요 0 | URL
오랫동안 여성 운동에 참여했던 페미니스트들, 어디선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들이 대단하고 존경받아야 합니다. 저는 그분들이 생각하고 기록한 것을 받아적고 있을 뿐입니다.

stella.K 2018-05-1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좋겠다. 이런 강의 가까이서 들을 수도 있고.
마태님 강의 못 들어서 좀 아쉬웠겠는걸?
손아람 작가 들어보고 싶은데 난 아무래도...ㅠ

cyrus 2018-05-15 16:05   좋아요 0 | URL
서울은 대구보다 전문가 강연이 많아요. 요즘은 SNS로 강연 홍보를 많이 해요. 제가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아요. SNS 계정이 있는 분들 덕분에 대구에 하는 강연 정보를 접해요. ^^;;

꼬마요정 2018-05-14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엄지 척! 대단하신 CYRUS님. 존경의 의미로 대문자로..^^;;
(혹시 대문자로는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겠죠? 검색해봐도 걸리는 게 없긴 하지만요^^:)

cyrus 2018-05-15 16:06   좋아요 0 | URL
소문자로 써도 대문자로도 써도 돼요.. ㅎㅎㅎ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

마태우스 2018-05-1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제 강의는 부끄럽고요, 손아람 선생님 강의가 젤 좋을 걸요. 근데 김홍미리 선생님이 백래시 번역하신 분이군요 흠...그 책 진짜 어마어마하던데, 전 읽다가 잠시 포기상태에요.

cyrus 2018-05-15 16:17   좋아요 0 | URL
《백래시》 번역한 분은 김홍미리 님이 아니라 다른 분입니다.. ^^;;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있어요. 카페 ‘스몰토크‘인데요, 거기 가면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로 채워진 책장이 있어요. 거기에 《백래시》가 꽃혀 있어요. 독서모임할 때마다 틈틈히 읽었어요. 혹시 다음에도 대구에 오셔서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경상감영공원 근처에 있는 ‘스몰토크‘에 가면 됩니다. 대구역과 카페의 거리가 멀지 않아요. ^^

페크pek0501 2018-05-1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발로 뛰며 열심히 배울 거 하나 갖게 되었어요. 파이팅!!!

cyrus 2018-05-16 08:26   좋아요 0 | URL
페크님이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