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토요일, 나는 도서전 전시장을 나와 역으로 가서, 사랑하는 남자와 시골에서 합류해 남은 주말을 보낼 예정이었다. 프랑수아는 주말이면 으레 그러듯 전날 쿠르세유의 집에 가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날 당시 막 구입한 그 집은 몇 해 사이에 그의 피난처이자 요새가 되어 있었다. 금요일 저녁 그가 그 집의 문턱을 넘으면서 내뱉는 기쁨과 안도의 한숨은 방전된 무선전화기가 충전기에 연결될 때 내는 낭랑한 신호음과 흡사했다. 그 집은 프랑수아가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받침돌이었고, 그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단념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프랑수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쿠르세유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시골 역에 정차하는 완행열차에 타자마자 그에게 전화를 걸기로 되어 있었다.


지하철이 몽파르나스 역에 섰을 때 나는 머뭇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던 것 같은데, 결국 내리지 않았다. 떠나기에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도서전에서 일어난 그 일이 쌓이고 쌓였던 긴장과 피로(프랑수아가 걱정했지만 나는 쉽사리 인정하지 않았던)를 단번에 노출시켰다. 나는 계속 지하철을 타고 11구를 향해 갔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프랑수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동네에 도착하자, 조그만 슈퍼마켓 U에 들렀다. 아이들은 자기들 아버지와 주말을 보내러 갔고, 프랑수아는 시골에 있었다. 슈퍼마켓으로 향하면서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조용한 저녁을 보낼거라고, 나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거라고 생각했다.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슈퍼마켓 진열대 사이를 어슬렁거리는데, 누가 나를 불렀다. 나탈리가 즐거운 낯빛으로, 크게 놀랄 일도 아니라는 양 뒤에 서 있었다.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동네 슈퍼마켓 U에서 곧잘 마주쳤다. 우연이 몇 번 거듭되면서, 우리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게 되었다. 일단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볼 인사를 나누고 나면, 으레 이런 말이 오고갔다. 어머, 웃기다, 정말 신기하네, 나 평소엔 이 시간에 절대 여기에 안 오는데. 누가 아니래, 나도야……


요구르트 진열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탈리도 도서전에서 사인회를 하면서 그날 오후를 보냈고, 그녀의 신간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었다》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내가 있는 출판사 부스를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결국 시간을 내지 못했고, 초대받은 파티도 있어서 집으로 곧장 돌아와야했으며, 파티에 가져갈 샴페인을 한 병 사려고 슈퍼마켓에 들렀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다 내가 그 파티에 가자는 제안을 삼 초 만에 수락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전만 해도 혼자 저녁을 보내게 된 걸 기뻐하던 내가 말이다. 


몇 해 전, 그러니까 아직 프랑수아를 만나기 전의 일인데, 나는 나탈리 그리고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저녁이면 온갖 파티를 찾아다녔다. 당시 셋 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독신이었고, 재미있게 지내고 싶었다. 그 모임을 우리는 JDN(주디스, 델핀, 나탈리)의 야회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각자 초대받은 파티(생일 파티도 좋고, 집들이도 좋고, 송년회도 좋았다)에 나머지 두 사람도 데려가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 모임은, 어느새 아무도 정식으로 초대받지 않은 온갖 기발한 장소에까지 드나드는 모임으로 변했다. 우리는 인연도 없는 비영리단체의 건물 개관식, 대중 무도장, 기업의 직원 송별 파티, 신랑신부를 모르는 결혼식에까지 몰려다녔다.


나는 파티를 좋아한 반면, 이른바 저녁식사 초대(친구들끼리의 식사가 아니라 사교적인 성격의 식사 말이다)는 최대한 피했다. 그런 회피는 내가 때와 장소에 따른 행동 규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런 자리에 가면 나는 낯가림이 심한 여자아이로 되돌아가고 그 결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건 적성에 맞지 않고 여기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강렬한 자각으로 인해, 네 명 이상이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대개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그런 사태를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찾아낸 변명인지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 친밀한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타인과의 관계는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JDN은 점차 뜸해지다 결국 중단되었는데,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각자의 생활이 달라졌다는 단순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 날 저녁 슈퍼마켓에서 내가 파티에 같이 가자는 나탈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순전히 춤 때문이었다. 최근 춤출 기회가 통 없었던 것이다(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좋은 낯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겁에 질렸지만, 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파티 한복판에서도 얼마든지 혼자 춤을 출 수 있었다).


이런 시시콜콜한 설명 때문에 내가 다른 길로 샌다는 인상을, 맥락이며 배경을 생생히 묘사한다는 명목하에 횡설수설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아니다. 일련의 사실은 내가 어떻게 L을 만나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만남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이 이야기를 따라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만남이 내 삶에 야기한 혼란에 비추어보건대, L이 나를 지배하게 하고 어쩌면 나 또한 L을 지배하게 만든 요소를 명확히 하는 일은 나에게 중요하다. 더욱이 L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의 손이 가볍게 스쳤다.


L과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춤을 추던 플로어를 먼저 벗어난 것은 나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음악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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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회 5화: “나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요. 만나서 기뻐요.”


<실화를 바탕으로>


★ 2015년 르노도상 수상 ★ 고교생이 뽑은 공쿠르상 동시 수상 ★

현대 프랑스 문학의 젊은 거장 델핀 드 비강.

사실과 허구의 경계마저 허무는, 강렬한 문학적 도발!


“그때는 왜 몰랐을까.

누가 나를 일부러 닮아갈 수 있다는 걸.

나를 완전히 부숴버릴 수 있다는 걸……”


교묘하다! 치밀하다! 집요하다!_‘고교생이 뽑은 공쿠르상’ 심사평

이것이 바로 진짜 소설의 힘이다! _<라크루아>


갑작스러운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쓸 수 없게 된 베스트셀러 작가, 델핀.

그리고 어느 날 그 앞에 나타난 여인, L.

델핀은 L에게서 운명 같은 우정을 예감했지만, L의 바람은 전혀 달랐다…


+ 저자 델핀 드 비강 



1966년 파리 근교의 불로뉴비양쿠르에서 태어났고 그랑제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살면서 퇴근 후 늦은 밤부터 글을 써나간 끝에 2001년, 거식증으로 고통받은 경험을 담은 자전 소설 《배고픔 없는 나날》로 데뷔한다. 이후 단편집 《귀여운 남자들》, 장편소설 《12월 어느 저녁》 등 다양한 색깔의 작품을 선보이던 작가는 《길 위의 소녀》로 프랑스 서점대상과 로터리상을 동시 수상하며 대중에게 뚜렷이 각인됐다. 연이어 발표한 자전 소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자살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문을 여는 파격적 스토리로, 프낙상을 비롯해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었다. 작가는 건조한 무채색 문체로 묵직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왔고,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자전적 이야기에 인간 보편의 문제를 완벽하게 담아내 ‘그림자의 작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실화를 바탕으로》는 한 소설가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시 한 번 작가의 실제 삶을 녹인 자전인 듯, 완벽한 픽션인 듯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한편, 웰메이드 심리 스릴러의 매력도 한데 구현해냈다. 출간되자마자 평단과 독자에게서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고,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과 ‘고교생이 뽑은 공쿠르상’을 동시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작가는 현재 파리에 거주하며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출간 전 연재 


+ 이번 주 월~금 5회를 김영사 알라딘 서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번 주 출간 예정! 출간 전 연재 재미 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출간 전 연재 이벤트

연재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 주신 분 중 3분께 <실화를 바탕으로>를 드립니다.

좋아요+공유+댓글과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연재 종료 후, 10/31 (월)에 마지막 회차에 댓글로 발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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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피자가맛나 2016-10-2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꿀떡꿀떡 넘기고 삼키는 글이 아니라, 조곤조곤 저작하는 느낌의 문장이 호감입니다.

고귀한 수영이 2016-10-28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아직도 저렇게 주변과 잘 동화되지 않고 어울리는데 서툰 면이있어서 그래서 더욱 L과의 관계에 지배적인 의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간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Chloe 2016-11-0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들지않은 음악이 흘러나왔다기 때문이다에서 제가 그 상황에 있는거 같은 느낌이
들었네요. 마지막회도 무척 기대라서 당장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