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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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 p29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 p30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 p33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꿈의 기억을 떠올려 메모하는 겁니다. 다음에는 꿈의 작은 단편 중에서 하나, 두어 개의 이미지나 관념을 선택하고 이를 연관시켜보면서, 이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기록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꿈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체험(우리 삶에서 의미심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 p88

 

한 가지 설명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인간이 세계 어디에 살든 기본적으로는 같다는 설명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육체가 하는 내적인 경험입니다. 같은 기관, 같은 본능, 같은 충동, 같은 갈등, 같은 공포를 가졌으니 인간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공통되는 바탕에서, 융 박사의 이른바 원형이 산출된다는 것입니다. 원형은 인간이 공유하는 신화의 관념이라는 것이지요. - p107

 

그것은 우리가, 우리는 이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관념에는 우리의 존재 및 우리의 깨달음과 의식의 잠재력에 다른 차원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것이다, 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것 이상의 어떤 것이지요. 우리의 삶은, 지금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깊고 넓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정말 우리 안에 있는 존재,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숨결을 주고 깊이를 주는 존재의 몇 분의 1의 깊이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깊이밖에는 살지 못합니다. 이 깊이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한 느낌으로 경험할 때 홀연히, 모든 종교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p119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무, 돌 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사실 이 세상 만물을 다 ‘그대’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2인칭인 ‘그대’를 보는 자아는 3인칭 ‘그것’을 보는 자아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어떤 나라와 전쟁에 돌입하게 될 때, 언론이 노출시키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적국의 국민을 순식간에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랍니다. - p156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조간에 어떤 기사가 실려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남이 나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모르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조의 포란실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 p179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러저러한 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 됩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작가, 저 작가로 옮겨다니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썼는지는 줄줄 외고 다닐 수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은 안 됩니다. - p190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굳게 믿는 미신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하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 p227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참구한다면, 진정으로 자기를 보존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의식의 영웅적 변모의 과정에 든 거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전에는 이렇게 생각해 왔지만 지금부터는 저렇게 생각해보는 것……. 의식의 변모는 이로써 시작되는 것이지요. - p233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우리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이하의 무엇으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 p239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바로 그겁니다. 만일에,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용입니다. “안 돼,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야”라든지 “나는 아무개가 하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야”, 이런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용입니다. - p272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해서, 마지막 일,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혼자 해야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분석 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더 넓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궁극적인 용은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는 우리의 자아, 이게 바로 용입니다. - p273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들떠서 행복한 상태, 흥분해서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천복을 좇으면 되는’ 겁니다. - p286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악마와 결혼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지요. 그러나 희망도 있어요. 우리를 부름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던짐으로써, 여행을 상상 밖의 영광으로 승화시키는 노인은 도처에 있으니까요. - p292

 

나는 그 여자에게, 고통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그 고통을 비롯되게 했다, 이런 믿음을 갖게 했어요. 니체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지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건데, ‘운명에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가 말했듯, 우리가 우리 삶의 어떤 한 측면에 대해서만이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면 만사는 해결됩니다. 더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동화시키기가 까다로우면 까다로울수록 이것을 성취한 인간은 그만큼 더 위대해지는 거랍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삼켜버리는 악마가 그런 우리에게 권능을 부여합니다. 삶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돌아오는 상 또한 그만큼 큽니다. - p298

 

어머니는 ‘여기’에 있으니까요.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돌보고, 아버지를 찾으러 떠날 나이가 될 때까지 아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개성과 운명을 찾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개성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고, 몸과 때로 마음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그 개성이라는 게 신비로운 겁니다. 개성이라는 것은 곧 우리의 운명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버지 탐색으로 상징되는 이 운명의 탐색을 떠나는 거지요. - p307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자기’를 넘어서는 것, ‘자기’에 대한 모든 관념을 넘어서는 것, 이로써 자기라는 것은 불완전한 존재의 드러남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어야 합니다. - p382

 

적어도 목적이 있는 인생은 완전한 인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왜? 서로 다른 목적이 복잡하게 얽힌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나 우리가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는 잠재력이 있는데,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잠재력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누가 나에게, “그럼 당신은 그 잠재력을 어떻게 사오?”라고 묻겠지요. 내 대답은, ‘천복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에는, 우리가 중심에 이르렀을 때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우리가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혹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만일에 돈을 벌기 위해 그 궤도를 이탈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잃는 겁니다. 중심에 어물기 위해 돈 버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천복을 얻는 겁니다. - p413



 
 
 
신화와 인생 - 조지프 캠벨 선집 
조지프 캠벨 지음, 다이앤 K. 오스본 엮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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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지금 모습 그대로,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평생 누릴 특권이다. - p19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여러분은 마치 어마어마한 실패인 양 보였던 파멸 직후의 순간들이 사실은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만들어 준 사건들이었음을, 그것이 명백한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에게 벌어지는 일 가운데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비록 그 순간에는 부정적인 재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재난은 여러분을 뒤로 물러서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자면) 여러분이 힘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재난이 생기는 것이다. - p55

 

 

여러분은 자신이 육성해 온 이득을 잘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그것들을 놓칠 경우, 여러분은 대략 10년쯤 지나서 부정적인 반작용을 경험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하나의 문턱에서 또 다른 문턱으로 움직일 때에는 차라리 점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더 아래로 내려갈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점점 더 많은 것이 피어날 것이다. 여러분의 중심으로부터의 잠재력은 다음 모험에 필요한 미래 예측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 p84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여러분이 (지금까지 지내 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그 삶 자체가 어떤 (일관적인) 줄거리를 이룬 듯 여겨질지 몰라도, 실제로 여러분이 그 과정을 겪어 온 과정은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뜻밖의 일 뒤에 또 뜻밖의 일이 뒤를 따르는 식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돌아보면, 여러분은 비로소 그것이야말로 완벽했음을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내 지론은,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 p90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런 느낌이 없을 경우, 여러분은 그저 삶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살아가는 셈이다.

여러분이 (의례적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바와 정반대되는 행동이 바로 공감이다. 성배를 발견하는 사람은 그 장소에 온 사람인 동시에 공감의 삶을 사는 사람을 상징한다. 공감의 역동성을 자신의 동기로 삼는 사람만이 성배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나와 너의 동일성에 관한 자연스러운 인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성배의 중심이다. - p105

 

“결국 모든 삶은 전체의 실현, 즉 자아의 실현이다. 때문에 그 현실을 ‘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은 그것을 실현하는 각각의 운반자에 매여 있으며, 운반자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운반자는 개별적인 운명과 목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융 - p107

 

부름은 곧 어떤 사회적 지위로부터 떠나라는, 즉 여러분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보석을 찾으라는, 즉 여러분이 사회적으로 속박되어 있을 때에는 찾기가 불가능한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중심을 잃은 상태가 되며, 스스로가 그렇게 중심을 잃은 상태라고 느낄 경우, 여러분은 떠날 때를 맞이한 것이다. 영웅이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걸 찾으러 갈 때, 그게 바로 출발인 것이다. 여러분은 문턱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위험한 모험이니, 이는 여러분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관한 지식의 영역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11

 

우리가 (부름에 응답해 여정을) 떠나지 않을 어떤 이유를 생각해 낸다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안전한 사회 속에 남아 있는 경우, 그 결과는 부름을 따랐을 때에 생기는 결과와 판이하게 달라진다. 여러분이 떠나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름을 거부할 경우, 일종의 말라붙음, 즉 삶의 감각이 상실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여러분 속의 모든 것은 (지금 본인에게) 요구되는 모험이 끝내 거부되었음을 안다. 그로 인해 분노가 형성된다. 여러분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기를 거부하면, 결국 그것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 p112

 

화해는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이고 현세적인 계획을 여러분이 떨어져 나온 삶의 방향에 맞게 조화시키는 것이다. - p115

 

“만물은 나아가고, 일어나고, 되돌아온다. 나무는 꽃을 피우나 이는 오직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뿌리로 되돌아감은 정일(靜溢)을 찾음이다. 정일을 찾음은 천명으로 합일함이다. 천명으로 합일함은 영원에 합일함이다. 영원을 하는 것은 깨달음이요, 영원을 깨닫지 못하면 혼란과 마(魔)가 인다.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 아니다.” -노자 - p142

 

여러분은 차라리 불완전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감수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환생을 거듭하는 한, 여러분은 불완전하다. 따라서 여러분은 스스로의 불완전에 대해 충실해야만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낸 다음, 여러분의 길을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 p192

 

기쁨이 있는 장소를 찾으라.

그러면 기쁨이 고통을 태워 버릴 것이다. - p216

 

다른 사람이 하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악의? 무지? 오만? 사랑?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이다.

즉 여러분 자신을 찾는 것이다. - p219

 

여러분을 가로막는 상징을 발견하고 나면, 이번에는 그 상징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바의 중요성에 부합되는 사고와 경험의 양태를 찾아내도록 하라. 그 상징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를 알아내지 못하는 한, 여러분은 그 상징을 제거할 수 없다.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경험의 중심-일찍이 그 상징으로 인해 대체된-을 발견한다면, 그 상징은 용해될 것이다. “이것은 과연 무엇의 은유일까?” 하고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그것을 발견하면 그 상징은 그 가로막는 힘을 잃거나 아니면 오히려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성인답게 그런 구체화를 용해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그 상징이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나면 여러분도 만족스러운 설명을 얻게 될 것이다. 상징은 원래의 용도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즉 여러분은 그것을 장애물로 여기는 대신에, 오히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무언가로 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 p224

 

여러분이 자신의 삶에

권위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 - p230

 

 

어른이 되고 나면,

여러분은 자기 삶을 움직이는 힘을

반드시 재발견해야 한다.

 

긴장, 정직의 결여,

그리고 비현실적 감각은

여러분 삶의 잘못된 힘을

따름으로써 나타난다. - p260

 

 

명상을 할 때에는

여러분 자신의 신들에 관해 명상하라.

 

삶의 목표란 뭔가 더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탈것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눈을 저 높이에,

즉 대립자의 쌍들 사이에 고정시키고

이 세상 속에서 여러분의 ‘놀이’를 바라보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파도와 함께 흔들리는 법을 배우라.

 

조이스의 말마따나,

세상의 쓰레기 속에서도

‘광휘를 발하는’ 채로 남아 있으라. - p272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신을 죽여야 한다.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모든 고정관념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 p274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거기 들어가서 네 할 일을 하라.

그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슬픔을 본질이라고 인식하라.

시간이 있는 곳에는 슬픔도 있게 마련이니.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없앨 수는 없지만,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는 있다. - p278

 

 

보디사트바는 가르침을 전할 때 자신의 말을 듣는 자들과 같은 모습을 취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각자의 내면에 있는 ‘지혜의 자아’에게 전해져 그 자아를 깨우고 삶으로 불러낸다. - p282

 

진정한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대립자의 쌍들의 너머까지

반드시 나아가야만 한다. - p288

 

나는 상황이 내 계획대로 되기를 욕망하고, 그런 욕망은 나로 하여금 다른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심리학적 변화란 이처럼 이전까지만 해도 애써 견뎌 내야 했던 것을 이제는 알고,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 p298

 

 

여러분의 힘을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 낮은 체계에 헌신하도록 한다.

 

만약 내 안에 이런 종류의 힘, 즉 역사의 물결에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나는 그(역사의 물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 p305

 

 

예술가는 어떤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의 동력을 발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 p381

 

 

여러분이 만약

선과 악을 구분할 경우,

여러분은 예술을 잃는 셈이다.

 

예술은 도덕 너머로 나아간다.

 

여러분의 공감의 범위가

곧 여러분의 예술의 범위다. - p402

 

 

여러분은 반드시

희열을 느끼고 돌아와

그것을 통합해(서 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 p414

 

신은 (나와) 다르고, 또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고, (이처럼) 자신과 신을 다르게 생각하고 숭배하는 사람은 그 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니, 그런 자라면 신들의 짐승과 다를 바 없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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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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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라는 개념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용어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커뮤터케이션은 어원 그대로 어떤 공적인 (communis) 영역의 권위를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자유로운 혹은 야생적인 개체를 주어진 공동체의 규칙으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와 달리 소통은 글자 그대로 '막힌 것을 터 버린다'는 뜻의 소(疏)와 '새로운 연결'을 뜻하는 통(通)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개념입니다. 결국 이 개념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극복하여 새로운 연결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소통이란 개념이 혁명적인 뉘앙스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p6

 

흔히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장자는 이런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진리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종교, 국가, 자본 등 초월적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완강히 거부하고, 우리의 삶을 되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 p7

 

여행에서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장소가 있듯이, 철학에도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공간이 존재한다. 칸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이러한 정신적 공간을 '초월론적 자리'(transcendental position)라고 명명할 수 있다. 여기서 초월론적 자리란 삶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지만, 여전히 임시적이고 유동적인 성격을 갖는 정신적 지평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임시적 지평이, 삶을 조망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지평으로 간주될 때, 이제 '초월론적 자리'는 곧 '초월적 자리'(transcendent position)로 변질되고 만다. - p26

 

타자와의 마주침은 타자가 속한 시스템과 내가 속한 시스템 사이, 혹은 양자 간의 차이에 직면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 p60

 

어느 경우든 타자의 발견이란 사건은, 나 자신이 나만의 규칙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적인 사태이다. - p68

 

국가와 종교는 모두 초월적인 목적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유혹하며 지배하려고 든다. - p78

 

기존의 삶의 규칙이 지닌 문제들은 오직 새로운 삶의 규칙을 통해서만 대상화되고 해소될 수 있는 법이다. - p79

 

유아론이란 타자가 배제된 담론 일반을 가리킨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유아론적 사유에서도 타자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아론 속에서의 타자란 진정한 타자, 즉 타자성을 가진 우연한 타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때 타자란 주체의 생각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관조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 p124

 

자신이 옳다는 판단을 중지해야만 우리는 타자의 움직임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섬세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 p143

 

그런데 이런 옳고 그름의 특정한 사태는 타자의 결에 따라 언제든 민감히 반응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필요로 한다. 장자는 이런 마음이 자신의 판단을 비워 두는 것, 즉 부단한 판단중지의 사태로부터 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리, 즉 타자의 시비 판단에 따르는 것과 자신의 판단을 중지함으로써 마음을 비워 두는 것은 상호 불가결한 원리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장자는 두 가지 원리의 병행인 '양행'을 강조했던 것이다. - p144

 

내가 판단중지의 상황이라고 풀이한 천균의 상태는, 단순히 고요한 상태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상태는 빠르게 회전하는 물레의 모습처럼 강렬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역동성에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맡긴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타자의 타자성에 부합될 때까지 부단한 판단중지를 수행하는 주체의 끈덕진 의지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판단중지의 상태에서만 타자에 부합되는 새로운 제안이나 행동을 마련할 수 있다. - p145

 

가령 라캉이었다면 장자가 천균과 도추의 개념을 통해서 묘사하고 있는 판단중지의 상태를 '실재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들』에서 라캉은 '실재적인 상태'를 'PΛ-P', 즉 모순의 상태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이것은 바로 장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저것과 이것이 자신의 짝을 잃은" 상태, 즉 저것인지 이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판단중지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라캉도 '상징적인 것'이 지배하는 꿈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일종의 판단중지와도 같은 상태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 p148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니던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선,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했던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149

 

이제 우리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장자의 양행이란 것이 결국 사자의 원리인 동시에 아이의 원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양행은 사자처럼 기존의 모든 사유를 판단중지하고, 아이처럼 언제든 타자와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천균'과 '도추' 개념에서 드러난 망각과 회전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순진무구함과 망각" 그리고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라는 니체의 어린아이 이미지를 보게 된 것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 p150

 

단독자는 기존에 자신이 고집한 특정한 공동체의 규칙을 타자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삶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 p156

 

정화열이 말한 의미의 '존재'(existence)는 관례대로 '실존'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의 지적처럼 어원 그대로의 실존의 "바깥"(ex)을 향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존의 중심은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타자에,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주체와 타자 사이에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그가 말한 '탈중심'의 의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탈중심적 존재'야말로 장자가 강조한 단독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단독자도 외부로 향해 있는 주체, 혹은 타자와 마주치는 주체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 p156

 

망각이란 항상 "비움"이라는 개념을 동시에 수반하는 것이다. 이런 공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공백은 타자를 담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57

 

'심재'란 글자 그대로 '마음을 재계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결국 심재는 마음의 작용을 금욕적으로 절제하는, 즉 마음의 비움이나 망각을 가리키는 수양론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자도 '비움'이란 바로 '마음의 재계', 즉 '심재'라고 직접 설명했던 것이다. - p183

 

만약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아비투스가 자신이나 타자의 삶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꿈이라고 조롱받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꿈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기존의 모든 공동체가 자신이나 타자의 삶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90

 

장자만큼은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간 뒤에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자의 도는 발견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211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에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이미 우리는 기로 듣는다는 것이 타자로부터 나오는 수많은 미세한 소리들을 민감하게 지각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