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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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중편소설 <설국>은 읽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분량 자체가 짧을 뿐더러 극도의 매력적인 문체가 읽는 동안의 '일시정지'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어의 운율과 일본인의 혼을 모르고서는 오롯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설국>의 번역자는 고통스럽다. 일본어 원문이 아닌 번역본으로는 본래의 가치를 절반 가까이 잃어버리는 태동적 한계를 지닌 소설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설국>의 첫 문장은 매우 유려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니 설국雪國이었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는 가장 유명한 명문장으로 꼽힌다. <설국>은 국내에서 다양한 출판사로 번역됐다. 이 소설은 자못 독특한 신비함을 갖고 있는데, 첫 문장을 어떻게 번역했는지에 따라 소설 전체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즉 <설국>의 첫 문장은 소설 전체의 문체적 조망성을 규정하는 신비한 마력을 지닌 것이다.

   이러한 문체상의 독특함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가 됐다. 1968년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는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문체가 아니었다면 결코 문학적인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유명작은 의외로 짧은 소설들인데 <설국> 외에도 단편 <이즈의 무희>가 대표작이다. 두 소설 모두 비슷한 소재와 비슷한 문체를 가졌다. 플롯은 없고 이야기 전개도 단순하다. 인물 사이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대화와 행동이 작가 특유의 세밀한 문체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설국>의 내용은 간단하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주인공 시마무라가 나가타현의 온천 마을의 기녀妓女 고마코를 만나는 이야기다. 사건도 없고 갈등도 없다. 소설이라면 으레 갖추고 있을 만한 이렇다 할 이야기의 전개展開나 절정絶頂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애소설이 분명한데도 전혀 연애소설 같지 않다. 가와바타는 단 한번도 소설에서 사랑이 어떠니 이별이 어떠니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소설은 그저 지루할 정도로 사소한 변화들, 그리고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그저그런 일상적 행위들을 묘사한다.

   나는 <설국>의 주제를 '아름다움'으로 갈무리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니카타 현의 눈 덮인 묘사는 과히 압권이다. 작가는 발군의 감성적 묘사로 눈의 고장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독자는 각 문장이 빚어내는 하얀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기 머리속에서 재해석하여 가슴속으로 밀어넣게 된다. 이는 배경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표현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시마무라의 시점인데, 그가 살피는 시선과 내면의 심리는 이야기를 추동하는 근력이 된다. 시마무라가 목도하며 관심을 갖는 두 여인(고마코, 요코)의 모습은 '생기'와 '절제'로 대변되는 여성성의 아름다움에 닿아 있다.

   가와바타가 그려낸 여성성의 아름다움은 중첩된 미美로서의 아름다움이다. 즉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시마무라가 열차를 타고 가며 잠긴 상념과, 이야기 전개상으로 그 어떤 적절성도 가진다고 볼 수 없는 엔딩 장면, 혹은 기모노를 입은 여인의 들어오는 장면에서 풍기는 분위기 등은 문장을 읽어내는 자체만으로 미의식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미지적인 장면이 아니라, 그야말로 소설로서만 구사할 수 있는 그런 장면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결국, <설국>은 여성에 대한 찬사다. 눈 덮힌 풍경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여성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순간을 두고 타오르는 여자의 마음을 매우 감각적으로 포착했다. 특히 고마코가 내뿜는 활력이야말로 여성성의 원형적原形的 정열情熱에 닿아 있는데 이는 작가의 절묘한 여성심리 묘사가 추동한다. 순간에 끊어오르는 여자의 열정이란 그런 것일까. 작가가 그려낸 여성 내면의 아름다운 형용은 '과감'이고 '생동'이며 '진실'이고 '절제'였다. 소설을 깊이 읽어 내려가다 보면
, <설국>은 결국 고마코의 스토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설국>의 본질적인 주인공은 시마무라가 아닌 고마코다. 물론 소설의 시점은 분명 시마무라의 시선에 있다. 그러나 소설 전체를 흔드는 생명력에서는 '모든 미美의 흡수'를 발현한 고마코에 보다 높은 밀도가 부여된다. 사실 두 남녀는 서양과 동양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아름다운 일본'을 주창한 가와바타의 작품세계를 집약한 인물구도가 된다. 시마무라가 서양적인 교양을 익힌 지식인이라면, 고마코는 산천초목, 삼라만상, 사계절의 미를 나타내는 일본의 자연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겨울, 고마코를 다시 찾아온 시마무라의 마음은 한없이 얼어붙어 텅 빈 동굴과 같이 되었다. 바로 그때, 고마코의 애정이 시마무라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동굴을 메워가게 된다. 맨 처음 고마코는 시마무라의 눈에 비치는 환상이었지만, 이윽고 시마무라의 시선을 초월하여 일본의 자연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가와바타의 이러한 미의식은 일본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의 아름다움 속에서 독자적인 문학의 세계를 창조해 근대 일본문학사상 부동의 지위를 구축했다. 그것이 동력이 되어 노벨상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가와바타의 노벨상 수상을 공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동아시아권에 노벨문학상을 주어야 하는 기류가 흐르는 와중에 그나마 제대로 영문으로 번역된 소설이 <설국>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상했다는 소문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소문의 진위여부와는 별도로 <설국>은 인상적이고 훌륭하며 매력적인, 지극히 문학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가와바타와 노벨상을 두고 어쩔 수 없는 경쟁을 펼쳤던 미시마 유키오의 평은 이를 잘 압축한다. '여인의 단정한 의상을 연상케 하는 문체에 의해 묘사된 대낮의 신비세계는 가와바타씨의 절묘한 동화이며, 동화란 또한 가장 순수한 고백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미시마 유키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공히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제의 자살은 많은 풍문을 낳았다. 당시 일본문단은 노벨문학상이 두 사람의 일본작가를 죽였다고 떠들어댔는데, 한 사람은 받지 못해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받았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미시마의 자살동기를 좌절된 노벨상의 꿈에서 찾거나 가와바타의 자살을 노벨상의 중압에 기인된 것으로 해석하는 상상력은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흥미로운 소문과는 무관하게, <설국>은 노벨상에 값하는 문학세계를 충분히 구축한, 과히 아름다운 소설이다. 누가 뭐래도 그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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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페딘1T 2017-08-2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혹시... 어떤 번역본으로 읽으면 좋을런지 여쭤봐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