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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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지식(정보)의 홍수시대다. 인류 역사에서 이토록 많은 지식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저토록 빠른 속도로 공유된 시기는 없었다. 지식인으로서 최고의 수준은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난해한 것을 쉽게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 내부의 거대한 지력을 외부로 세련되게 발산(output)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며 그것이 바로 최고 레벨의 지성이다. 그다음 수준은 어려운 것을 그저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지식 안에 고착된 사람으로서 사람 간의 지식의 유동성에 무지하거나 전달할 역량이 부재한 경우다. 무엇보다 최악의 수준은 쉬운 것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이들을 지식인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에 제법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시민과 동시대를 산다는 건 즐겁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 그는 한국 대중 지식인 중 단연 으뜸이다. 최소한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나는 과거 여러 서평과 논설을 통해 유시민의 세련된 언변과 정제된 지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선사해왔다. 현실 정치를 접고 전업작가로 데뷔한 이래 그의 지성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세계를 변혁하지 못하는 지식은 무의미하다. 자기 안에 고착된 정보는 힘이 없다. 자아를 기꺼이 벗어나 타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지식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정치적·사상적으로 보수적인 내가 여러 가지 면에서 제법 진보적인 그의 말과 글을 주목하는 이유다.

   『역사의 역사』는 유시민의 최신 비블리오그래피다. 출간된 지는 조금 됐으나 아직까지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역사의 '역사'를 다루었다. 인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서와 그 책을 집필한 역사가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서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라는 항목에 이 책을 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학의 역사'가 아닌 '역사 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에 더 가깝다고 부언한다. 그러면서 역사학과 역사 서술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역사학은 학술 연구 활동이지만 역사 서술은 문학적 창작 행위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이 후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러한 전제는 독자에게 무언가 양해를 구하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 책을 역사학 책으로 보지 말고 좀 더 유연하고 캐주얼하게 역사 르포나 문학 정도로 읽어달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저자의 전공은 역사학이 아니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지금까지 그는 역사와 관련한 많은 책들을 집필했다. 한국 사회에서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뜨거운 감자인 '현대사'를 주제로 책을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신간 『역사의 역사』가 그의 전작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인류사를 빛낸 역사 관련 찬란한 고전들을 정면으로 소개하며 리뷰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전공 분야인 역사를 본격적으로 관통하려 했던 저자의 부담이 이해될 만하다. 저자의 바람대로 유연하고 넓은 마음으로 책장을 연다.

   역사서의 시조를 얘기할 때 항시 거론되는 두 명의 역사학자가 있다. 그들은 바로 헤로도토스(Herodotos)와 투키디데스(Thukydides)다. 저자도 두 역사학자를 책의 최전방에 소개했다. 키케로로부터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 헤로도토스와 랑케로부터 '역사 서술의 창시자'로 지목받은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보는 관점과 글을 서술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전자가 '이야기'를 중시한 반면 후자는 '사실(실증)'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에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분명한 역사서이면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텍스트다. 저자는 두 역사가의 차이를 조밀하게 포착하면서 그들이 훗날의 역사가들 즉 랑케, 토인비, 다이아몬드, 하라리 등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었는지를 풀이한다.

   저자는 동·서양의 다양한 역사가들을 선택했다. 그중 규모와 실증 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업적을 남긴 사마천(司馬遷)을 건너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헤도로토스와 투키디데스 다음 순번으로 사마천을 배치했다. 저자는 사마천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책 속에는 사마천과 그의 대작 『사기(史記)』에 대한 찬사가 아낌없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구 역사가들이 『사기』를 잘 모르기(몰랐기) 때문에 세계적인 차원에서 객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사마천 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이전의 역사서가 저마다 별 하나를 그렸다면 사마천은 우주를 그렸고, 인류 역사에서 혼자 힘으로 그런 작업을 해낸 역사가는 오로지 그 한 사람뿐이었다."

   이 외에도 저자가 선택한 역사학자들의 리스트는 녹록지 않다. 과학과 역사를 처음으로 조우시킨 이슬람 역사학자 이븐 할둔(Ibn Khaldoun),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지향한 실증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랑케(Leopold von Ranke), 유물론과 변증법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집대성한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정의한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 그리고 슈펭글러(Spengler, Oswald)부터 하라리(Yuval Noah Harari)까지의 현대 역사가들도 폭넓게 다루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가들도 놓치지 않는데 민족주의 역사학의 계보라 할 수 있는 박은식-신채호-백남운 등도 자상하게 소개했다. 동·서양의 배분, 이슬람권의 반영, 현대 사학계의 폭넓은 할애, 대한민국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소개 등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저자의 배분이 돋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저자의 모든 저작들을 탐독했다. 그가 쓴 책 중 읽지 않은 게 없다. 그의 전작 중 나는 『청춘의 독서』를 최고로 꼽아왔다. 큰 아픔을 겪은 후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고독과 의지가 『청춘의 독서』에서 진정성 있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거기에 한 권 더 보탤 수 있게 됐다. 『역사의 역사』도 그가 쓴 수십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잘 쓴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부족함이 없다. 내가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작가로서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저자의 절제력과 차분함에 있다. 여러 맥락에서 다분히 진보적인 저자의 색채를 절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고민한 흔적이 인상적이다.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를 저자 특유의 쉽고 맛깔나는 필치로 차분하게 서술한 점도 돋보인다. 역사에 관한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다.

   유시민은 이제 완전한 작가가 된 듯하다. 최근 그의 외연에서 정치인의 색채는 거의 다 빠졌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 노무현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정계 복귀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 섞인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나도 그의 정치 복귀를 지지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정치보다 '썰전'이나 '알쓸신잡'이 더 잘 어울린다. '작가'는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글 쓰고 강연하는 게 지식인 유시민의 가장 적확한 아우라가 아닐까 한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소신과 신념만으로 정치가 가능했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금까지 읽히는 고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그는 모 인터뷰에서 다음 책은 여행 에세이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대된다. 독자로서의 나의 소박하고 순수한 기대가 정치라는 이유로 배반당하지 않기를 소원한다.

   완전한 작가로 발돋움한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인문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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