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신 북스(Scarthin Books)

크롬포드, 잉글랜드

 

 서점 직원과 손님이 함께 만들어가는 정겨운 동네 서점

 

 

잉글랜드 크롬포트 피크디스트릭트에 위치한 스카신 북스의 초기 모토는 소수집단 다수를 위한 서점이었다. 이후에는 완벽한 휴식을 제공하자는 것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데이비드 미첼이 운영하는 이 서점에서는 신간과 중고 책을 모두 판매한다. 직원도 없이 방 한 칸에서 시작한 스카신 북스는 이제 12개 공간과 창고에서 직원 7명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며 지역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스카신 북스(출처 www.scarthinbooks.com)

 

40년 가까운 세월을 거쳐 이뤄낸 성공에 대해 스카신 북스에서는 직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했고, 다른 일에 눈을 돌릴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성장했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그리고 전에는 모두 서른 살 언저리였는데 이제 대부분 쉰 살이 넘었고, 조기 은퇴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싸우고 있으며 암을 걱정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스카신 북스 내부(출처 www.scarthinbooks.com)

 

 

서점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보세요!

즐거운 일이 생긴답니다.”

 

데이비드 미첼은 노샘프턴셔 주립 도서관에 매주 다니던 기억을 되살려 스카신 북스의 매장을 구성했다. 많은 책 사이로 통로가 미로처럼 이리저리 이어져 있어서 책장 사이에 할인 쿠폰을 숨기기도 쉽다. 예를 들어 높은 대들보에는 아주 키가 큰 아버지께 드리는 상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대들보에 아버지의 머리가 닿으면(받침에 올라서거나 까치발로 서는 것은 무효!) 3파운드 상당의 책 쿠폰을 드립니다!’ 데이비드가 좋아하는 곳은 아동 서적 코너다.

 

스카신 북스 아동 코너(출처: https://goo.gl/A2axqb

 

 

“1년 반 전에 아동 서적 코너에 책장을 새로 설치한 뒤, 이 지역 설치 미술가 케이티와 클레어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어 달라고 부탁했죠. 와인과 피자를 대접한 뒤에 두 분만 서점에 남겨 두고 저는 나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830분에 결과를 보러 갔죠. 천장에는 못 쓰는 책들을 붙여서 머리 위에 팝업북이 펼쳐진 것 같았어요. 조명은 천으로 감쌌는데, 동네 초등학생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린 천이었어요. 구석진 곳, 후미진 곳마다 종이로 만든 작품이 놓여 있었죠. 정말 아름다웠어요.”

    

 

 

책을 펼치면 새들이 노래합니다.”

 

스카신 북스에서는 정말 신기하고 다양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서점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41년에 발간된 야생 새의 노래(Songs of Wild Birds)라는 책이 있었다. 책 안쪽에는 이 책을 펼치면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라는 낙서가 있었다. 낙서를 쓴 연도는 1944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2010년 어느 날, 어떤 손님이 그 책을 구입해갔다. 그런데 며칠 뒤 서점 매니저 데이비드 부커는 책장을 살펴보다가 제자리에 다시 꽂혀 있는 야생 새의 노래를 발견했다. 데이비드는 그 책이 팔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책은 서점에 한 권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여겨 책을 꺼내 펼쳐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새 소리가 서점에 울려 퍼졌다. 알고 보니 그 책을 산 손님이 책을 집으로 가져가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새소리가 들리도록 특별한 장치를 설치한 뒤 다시 서점 책꽂이에 꽂아 둔 것이었다. ‘이 책을 펼치면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1944년의 낙서 아래에 새로운 낙서가 덧붙었다. ‘이제 정말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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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터 북스(Barter Books)

노섬벌랜드 안위크, 잉글랜드

 

책장 위로 장난감 기차가 달리는 오래된 기차역의 추억이 스며 있는 곳

 

옛날 옛적에 기차를 사랑하는 잉글랜드 남자와 책을 사랑하는 미국 여자가 있었다. 그 둘은 대서양을 지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났다. 남자는 용기를 내 안녕하세요?’라고 적혀 있는 쪽지를 여자에게 건넸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3년 뒤 그렇게 만난 스튜어트와 메리는 결혼했다. 그리고 각자의 관심사를 합치기로 마음먹었다. 잉글랜드 북쪽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 기차역 안에 서점을 연 것이다. 그리고 그 서점의 이름을 바터 북스로 정했다.

 

 

잉글랜드의 노섬벌랜드 안위크에 있는 바터 북스(출처 www.tenpennydreams.com)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다. 역사 안에 있는 일곱 개의 공간 중 하나만 썼다. 그러다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더 커졌다.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으로 손꼽히고, 놀랍게도 안위크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사업체가 됐다. 이런 자랑을 할 수 있는 서점은 많지 않다.

 

책장들 위로 모형 기차들이 달리고 책장 선반 위에는 시가 적혀 있는 이곳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꿈꿀 만한 공간이다. 예전에 대합실이던 공간에는 석탄 난로가 놓여 있고, 역장 사무실은 차를 마시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책장 사이에 소파를 두어서 손님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벽에는 서점에서 화가들에게 의뢰한 그림이 걸려 있다.

 

 

바터 북스 내부의 그림(출처 www.barterbooks.co.uk)

 

 

이 서점의 특별한 점은 또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대중의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 영국 정부는 세 가지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두 종의 포스터가 1939년 여름에 배포되어 영국 곳곳의 상점 쇼윈도에 붙었다. 하나에는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 또 하나에는 나의 용기, 나의 활기, 나의 결심이 우리의 승리를 낳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포스터는 공습으로 사람들의 기가 꺾였을 때 배포할 목적으로 남겨졌다. 그런데 결국 세 번째 포스터는 배포되지 않았고 그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0, 스튜어트와 메리 부부는 서점에서 판매할 책을 경매에서 구했다. 그리고 책이 담긴 박스 아래쪽에서 먼지에 덮인 포스터 한 장을 발견했다. 포스터에는 ‘Keep Calm and Carry On(‘침착하게 계속 나아가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세 번째 포스터에 적힌 문구였다. 스튜어트와 메리는 그 문구가 마음에 들었고, 포스터를 액자에 넣어 바터 북스 벽에 걸었다. ‘Keep Calm and Carry On’.

 

 

바터 북스 벽에 결려 있는 ‘Keep Calm and Carry On’ 포스터(출처 www.barterbooks.co.uk)

 

그 포스터를 좋아한 것은 스튜어트와 메리 부부뿐만이 아니었다. 포스터에 관심을 갖는 손님이 아주 많아서 1년 뒤에는 서점에서 복사본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포스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채 ‘Keep Calm and Carry On’이라는 문구는 점점 널리 퍼져서 포스터, 머그잔, 카드, 티셔츠에 프린트되어 21세기의 첫 번째 유행이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패러디를 낳았다.

 

내가 좋아하는 패러디는 ‘Keep Calm and Expecto Patronum!’(‘침착하게, 엑시펙토 파트로눔!’이라는 뜻으로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 주문을 넣은 것)이다. 물론 ‘Keep Calm and Read a Book’도 좋아한다. 세상에 좋은 충고란 없지만, 그래도 있다면 침착하게 책을 읽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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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바지(The Book Barge)

리치필드, 잉글랜드

 

 

강물 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배로 만든 서점

 

 

북 바지는 리치필드에 정박해 있다. 전장 18미터의 배가 서점으로 변신했다. 북 바지를 운영하는 사람은 사라 헨쇼다. 서점 안에는 소파가 놓여 있고 간식도 있다. 여기저기에 타자기가 장식으로 멋지게 놓여 있다. 책장 곳곳에는 직접 만든 책 쿠폰이 숨어 있다. 사라 헨쇼는 북 바지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정박해 있는 북 바지(출처 The Book Barge 페이스북)

  

사라는 지난 5년 동안 정말 바빴다. 배를 서점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리고는 은행에 가서 스타트업 창업 대출을 받으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행에 가서 사업 계획을 프레젠테이션 해야 했는데 사라는 사업 설명서를 단행본처럼 만들었다. 배로 된 서점이 얼마나 멋질지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버드나무에서 부는 바람의 그림들과 가상의 리뷰들로 책을 만든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지선 묘사(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도 넣었다.

 

그녀가 앉은 빛나는 왕좌 같은

바지선이 물 위에서 불탔네. 선미루는 금빛으로

돛은 자줏빛으로 물들었네, 바람이 이들에게

상사병을 앓아서 향기도 자줏빛이니.

 

북 바지가 전설적인 서점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업 계획서를 끌어안고 사라는 더없이 다정한 미소를 은행원에게 지어 보였다. ‘이런 서점을 만들게 도와주세요! ~~~!’

은행원들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거절했다.

 

사라는 낙담하고 포기하는 대신 방향을 틀어서 두 번째 안에 착수했다. 가족에게서 지원을 받아 배를 사고 개조해서 2009, 드디어 북 바지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사람들은 북 바지를 마법이라고 칭송했고, ‘세계 서점 베스트 10’ 같은 목록에도 많이 들었다. 북 바지가 여러 모로 마법이라 불릴 만하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까지 마법이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마법이 매출로 이어져야 했지만 경기는 침체되고 서점 세계는 변화하고 있었다. 어느새 사라가 받는 질문은 왜 배에 서점을 차렸어요?’가 아니라 애당초 왜 서점을 차렸어요?’로 바뀌었다.

 

서점이 멸종 위기에 처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 배를 개조한 서점인만큼 한자리에서만 책을 팔지 않아도 되는 장점을 이용하려고, 사라는 반년 동안 영국 운하를 도는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북 바지에는 주방이나 욕실,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활용해서 배가 도착할 곳을 미리 알리고, 그곳에서 책을 받고 욕실과 잠자리를 제공할 사람을 찾기로 했다. 사라의 계획에는 더 큰 뜻도 있었다. 책을 잠자리와 교환할 수 있다면 실제로 책이 가치 있다는 뜻이므로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책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북 바지의 주인 사라 헨쇼

 

용감한 행동이었다. 20115, 사라는 출발했다. 운하에 있는 암초의 위치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고, 매일 배를 정박하는 곳에서 과연 잠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휴대폰 전화번호를 주고 음식을 받아야 하는 것은 상대를 크게 신뢰하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반년 동안 사라는 15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여행했다. 배에서 비둘기를 길렀고, 도둑을 만났고, 전국 신문에 났고, 브리스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사라의 즐겁고 재미있는 책 떠다니는 서점(That Floated Away)에는 그녀의 모험담이 모두 담겨 있다.

 

활판 인쇄 워크숍, 아주 성공적인 독서 토론회 등 북 바지에서는 이벤트가 많이 벌어진다. 이따금 토요일 아침에 열리는 조찬 모임에서는 사라가 만들어주는 아침을 먹고 운하를 항해하는 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조찬 모임이 생긴 것은 사라의 애인 스튜 덕분이다. 목수인 스튜는 배에 화장실과 작은 주방을 만들고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 독서 공간도 만들었다.

 

 

  

북 바지 내부 모습

 

 

사라는 최근에 또 다시 새로운 큰 모험을 계획하고 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프랑스 버건디 지방에 있는 니베르네 운하 주위의 땅이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북 바지로 프랑스까지 항해하는 것은 사라가 늘 꿈꾸던 일이다(언젠가 흑해까지 가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사라는 스튜에게 매물 정보를 보여 주었고 두 사람은 함께 프랑스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서 둘러봤어요. 정박 허가를 받기까지 거쳐야 할 긴 싸움, 농가 주택 안에 살고 있는 박쥐들과 주위에 둥지를 트고 있는 새들과 치러야 할 싸움 등을 생각한 뒤에 잠시 머뭇거렸어요.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어를 조금밖에 못한다는 사실, 이 벽촌에서 영어책을 살 사람들은 고작해야 30가구밖에 없다는 사실, 운하로 항해를 나가기에 충분할 만큼 고요한 바다를 기다리려면 아주 오래 걸린다는 사실도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웃고 또 웃으면서 그 땅을 샀어요. 우리는 바보니까요.”

 

프랑스 이주에 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라와 스튜는 1년 넘게 북 바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근처 헬스클럽에서 샤워하고, 사라는 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으며, 저녁과 주말에는 북 바지에서 일한다. 그리고 이 배가 집인지 서점인지를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커튼 사이를 들여다보는 항구 한가운데에 있는 배 안에서 잠을 잔다.

이것이 책을 파는 데에 헌신하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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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금통장의 낭만적인 규칙[2]

 

동아서점은 설악문화센터와 함께 내가 속초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 서점은 주인이 쓴 글만큼이나 소박하고 따뜻하다. 서점에 가면 간혹 아들이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책장마다 붙어 있는 책 소개글을 직접 쓰는 것이다. 캘리그라피라고도 할 수 없는 동글동글하고 따뜻한 글씨체가 정겹다. 서점에 들르는 사람들이 이 좋은 책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아주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이 담뿍 묻어나는 글씨다.

 

이런 서점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 이런 서점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리의 서점이 그 거리에 얼마나 따뜻하고 멋진 색채를 더해주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서점이 사라지면 이 거리가 얼마나 삭막해질지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서점에 들를 때면 사진을 찍는 대신 책을 산다. 다행히 이 서점은 애써 책을 사야만 하는 곳은 아니다. 이 서점에 들어가면, 반드시 책을 사고 싶어진다.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좋은 책들만 골라놓았기 때문인지, 책 진열이 산뜻하기 때문인지, 책장마다 붙어 있는 다정한 손글씨 때문인지, 머리가 하얗게 센나이 든 아버지와 아들이 어색하게 카운터에 함께 앉아 있기 때문인지, 노란 불빛 때문인지, 쾌적한 분위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동아서점에서 나를 위한 한 권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한 권, 그렇게 두 권의 책을 산다. 내 돈을 내고 내가 책을 사는데도 고맙다는 기분이 절로 든다.

 

작년 2월에 태백과 정선으로 여행을 갔다가 하이원리조트의 곤돌라에 올라 스키를 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년 2월에 스키나 보드를 타러 가면 좋겠다. 당장 집에 가서 매달 5만 원씩 넣는 1년짜리 적금통장을 만들어야지!”

 

그랬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정말 슬프다. 우리 너무 가난한 것 같잖아.”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로 가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적금통장이란 건 짠순이의 생활 전략이라기보다는, 희망이나 계획이나 즐거운 공상의 현실적인 형태 같은 것이다. 나처럼 비계획적이고 씀씀이가 헤픈 여자에게는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된 것 같은 기쁨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적금통장은 내게 말한다.

1년 후에도 죽지 않았다면, 미치거나 망하거나 복구 불가능할 정도의 상실을 겪지 않았다면, 별일이 없다면, 별일 없이 사는 복을 누렸다면, 너는 1년 후에 코딱지만큼의 이자를 붙여서 이 돈을 다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열두 번의 자동이체는 네가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할 새에 진행될 것이고, 1년 후에 너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돈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행운이 아니라 네가 1년을 성실히 잘 버텼다는 뜻이다. 너는 1년 동안 죽지도 미치지도 망하지도 않았다. 네 통장에는 열두 번의 이체를 감당할 만큼의 잔액이 충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건 거기에 대한 상이다. 잘 버텼다.

 

적금통장의 규칙은 그것이다. 낭만적인, 은행원이 내 계좌를 조회하다가 실소를 터뜨릴 만큼 낭만적인 제목을 정한다(모바일, 인터넷뱅킹으로 쉽게 정할 수 있다). 매달 자동이체되는 액수는 적을수록 좋다. 10만 원이 넘지 않아야 통장에 대해서 잊게 된다. 5만 원 정도가 적절하다. 만기일에 정해진 액수를 찾게 되면 약간의 이자는 보너스로 통장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탕진한다. 절대로 아까워하며 다시 통장에 넣어서는 안 된다. 목적에 부합하게 탕진하라. 정해진 액수 안에서는 방종하라. 죄책감 따위는 느낄 것 없이 마구 써라. 인생은 짧다.

 

그리고 적금통장은 1년마다 내 인생을 갱신해준다.

1년이 지났다. 만기가 된 적금통장에서 두둑한 액수의 돈이 입금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스키를 타러 가지는 않았다. 추위를 즐길 만큼 따뜻한 집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좋아하는 속초에 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하고 신나게 돈을 썼다.

 

그 여행에서 나는 결혼하고 난 후 처음으로 큰아버지 댁에 들렀다. 큰아버지 댁은 티끌 하나 없이 깔끔했다. 당연하다. 함경도 사람들은 부지런하니까. 어릴 때 사촌들과 함께 훔쳐본 가족 앨범 속 베트남 파병 시절의 젊은 큰아버지 얼굴은 톰 크루즈를 닮았다. 이제 70대인 큰아버지는 평생 배를 타느라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피부는 검붉게 변색되고 머리는 듬성듬성 빠졌는데도 아직 옛 인상이 남아 있다. 팽팽한 얼굴이다. 함경도의 얼굴이다. 인생 따위에는 지지 않겠다는 얼굴이다. 나에게도 그 얼굴이 있다.

 

큰아버지 댁 현관 위에는 나무판에 두꺼운 글씨체로 새긴 가훈이 붙어 있었다. ‘도전’. 나는 큰아버지 몰래 그 무시무시한 글자를 가리키며 남편과 키득거렸다. ‘도전’이라니, 진정한 함경도 스타일이다.

 

생각해보면 함경도 사람들에게는 인생이 도전이었을 것이다. 춥고 척박한 땅.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살아남아 일가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도전이고, 도중에 아이들이 죽거나 죽을 뻔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던 것도 도전이고, 낯선 남쪽 동네의 모래톱에 움막을 지은 것도 도전이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다시 또 배를 타고 매일 새벽 바다로 나선 것도 도전이다. 매일 배를 타고서도 죽지 않은 것도 도전이고, 아이들을 더 낳고, 그 아이들을 굶겨 죽이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도 도전이다.

 

함경도 사람들은 억세고 거칠게 보인다. 한마디로 볼드체의 인간 유형이다. 그러나 또 억세고 거칠게 보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듯이 정이 많고 눈물도 많다. 나도 그렇다. 함경도의 핏줄이 내 몸의 4분의 3을 흐르고 있다. 나는 나의 함경도 핏줄이 마음에 든다. 나의 조상들이 그러했듯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굳이 ‘도전’을 가훈으로 새기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씩씩하게 살고 싶다.

 

나머지 4분의 1은 외할머니의 강릉 핏줄이다. 고고하고 도도한 강릉 핏줄. 나의 내향적이고 예민한 성격은 분명 외할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책을 좋아했다는 외할머니. 동네 멋쟁이였다는 외할머니. 90세가 다 될 때까지 매일 일기를 쓰고 재봉틀로 옷을 지어 입던 외할머니.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외할머니. 그 핏줄에는 어떤 우아함이 있지만, 우아함은 때로 오만함과 비겁함을 동반한다. 나는 늘 나의 4분의 1과 싸운다. 달아나고 싶은 마음,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마음, 고고한 체하고 싶은 마음, 더러운 빨래는 남에게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

함경도 사람이나 강릉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언젠가 아빠가 20대 초반에 쓴 일기를 발견해 읽어본 적이 있다. 그때의 아빠는 속초를 떠나 진해에서 해군 하사관으로 복무 중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육군에 지원했지만 호기심이 많던 아빠는 해군이 되기로 결심했다. 일기에는 군함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쓴 치기 어린 시 한 편도 있고,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대전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대구에도 있었다. 그 시절의 아빠는 전국 팔도에 좋아하는 여자들을 숨겨둔 모양이었다. 결국 자신을 쫓아 진해까지 내려온 고향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어를 독학하던 아빠가 한영사전이 필요해 집에 편지를 썼더니 할머니가 전신환으로 약간의 돈을 부쳐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빠는 집안 형편이 빤한데 그 돈을 받은 것이 고맙고 미안해 눈물이 났다고 썼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도 썼다.

 

한영사전 한 권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젊은 날의 아빠는 가난했었구나. 못지않게 가난한 집에 사전 살 돈이 필요하다고 편지를 부치는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 가난한 살림에 아들의 공부를 위해 전신환을 부쳐주던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돈으로 산 한영사전은 아빠에게 얼마나 귀했을까. 아빠는 그 사전을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보았을까. 어쩌면 그 한 권의 사전이 지금의 아빠를 만들었겠구나. 그 사전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었겠구나.

 

속초는 나에게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진해에 다시 가고 싶은 적은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속초에는 늘 가고 싶다. 사실은 그곳에서 살아도 좋을 것 같다. 그곳에는 바다가 있다. 여기에서는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기껏해야 공원에나 가겠지만 속초에서는 언제든 가볍게 바다에 갈 수 있다. 진해에도 바다는 있지만 속초의 바다와는 다르다. 속초의 바다는 좀 더 박력 있고 거칠다. 파도가 치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어도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속초에는 산도 있고 호수도 있다. 도시를 근엄하게 내려다 보는 울산바위가 있다. 공기는 맑고 도로는 한산하다. 맛있는 냉면도 있고 싱싱한 생선도 있다. 근사한 도서관도, 기분 좋은 서점도 있다.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도 있고 질리지 않는 닭강정도 있고 맥도날드도, 심지어 버거킹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느긋하다. 그래서 속초에 가고 싶다. 늘 그렇다.

 

언젠가는 함경도에도 가보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내 피의 4분의 3이 휴전선을 건너 떠나온 곳. 그곳에 나의 뿌리가 있다. 그 춥고 척박한 땅 곳곳에 지금의 나를 만든 유전자의 조각들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다.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궁금하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국경을 넘었지만, 나의 뿌리가 있는 쪽의 국경은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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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NMEIHONG 2018-06-26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여행을 저도 다녀왓어요. 하지만 진정한 아내의 삶이지쳐가는 현실주의자에서

QUANMEIHONG 2018-06-26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탈락되갈 아이디를 지키면서 진로를다지기를 결심합니다
 

적금통장의 낭만적인 규칙[1]

 

우리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지만, 최소한 1년에 한두 번은 속초에 간다. 나는 속초를 좋아한다. 남편도 좋아한다. 갈 때마다 좋다. 굳이 다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제주도에 가본 적도 있는데 왠지 나와는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속초가 더 좋다. 제주도는 둥글둥글, 아기자기한 느낌이지만 속초는 대범하고 씩씩한 느낌이다. 속초 쪽이 내게는 더 편안하다. 나는 둥글둥글하고 아기자기한 사람이 아니다.

 

속초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다. 바다는 푸르고 깊고 거칠다. 설악산에는 울산바위가 있다. 볼 때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것도 많다. 나는 속초에서만 냉면을 먹는다. 여기에서는 진짜 함흥냉면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경도 피란민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진짜 함흥냉면은 고추장으로 만든 양념장 대신, 매콤달콤한 회무침을 비벼 먹는다. 그리고 물냉면처럼 차가운 육수도 듬뿍 부어 먹는다. 거기에 입맛에 따라 설탕과 식초와 겨자를 쳐서 먹는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중앙시장에 갈 때마다 이성을 잃는다. 싱싱한 생선과 오징어 같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게다가 무척 싸다. 떡도 감자도 옥수수도 맛있다. 물이 맑아 수돗물을 틀어서 그대로 받아 마시기도 한다. 속초에서는 모든 것이 늘 풍요로운 느낌이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순하다. 무뚝뚝하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다. 지방 사람들은 대개 서울 사람들처럼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운데, 속초 사람들 역시 그렇다.

나의 친가와 외가는 속초에 있다. 아빠는 함경도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인가 할머니 등에 업혀 피란민 수송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줄곧 속초의 유명한 피란민 거주지인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살았다. 여름방학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허리에 낀 채로 맨발로 골목길을 지나 바다까지 달려가곤 했다. 발이 델 정도로 뜨거운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그대로 바다에 풍덩. 파도가 세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았다. 방파제에서도 놀았다. 테트라포드 사이에 빠지면 무척 위험한데도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래에 슬리퍼가 떨어져 기어 내려가 주워서 다시 올라온 적도 있다.

엄마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 외할아버지는 함경도에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단신으로 휴전선을 건너온 홀아비였다. 외할머니는 강릉에서 나고 자라 시집을 가서 아들 셋을 두었으나 어느 날 남편이 인민군에 징집된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억척스럽고 수완 좋던 외할아버지는 속초에서 사업을 시작해 커다란 트럭 한 대를 굴리고 외할머니와 결혼해 자식도 셋이나 낳고 뒷집에는 첩도 하나 두었다고 한다. 피붙이 하나 없는 남한에서 처음 생긴 피붙이인 우리 엄마를, 외할아버지는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내가 수영을 하던 바로 그 바닷가에서 아빠도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수영을 배웠다. 영랑호수 근처 영랑동에 살던 엄마는 날이 좋으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대로 바닷가로 가서는 교복을 입은 채로 모래 위에 가만히 누워보곤 했다. 모래가 참 따뜻했다고 한다.

 

갓 스물에 엄마는 해군 제복을 입은 아빠를 만났다. 엄마는 아빠가 시내에 사는 검소한 교육자 집안의 아들일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인사를 시키겠다며 데려간 곳은 갯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억센 함경도 사투리가 난무하는 아바이마을 청호동의 가난한 집이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야 나는 속초에서 산 적이 있다는 친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청호동은 문둥병자들이랑 거지들이 살던 동네 아니야?” 속초 사람들에게 청호동은 그런 곳이었다. 고고하던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강릉 살 때는 뱃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 대개 뱃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해변에 널려 있던 판자나 나뭇조각, 미군부대에서 나온 폐자재들을 얼기설기 이어 붙여 비바람을 피할 움막을 지었다. 그들 중 누구도 피란생활이 이렇게나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피란생활이었다. 전쟁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들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그들의 삶 전체가 전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제 아빠가 자란 청호동 빨간 우체통 옆집은 사라졌다. 시내와 청호동을 잇는 다리가 생기고, 바다였던 곳을 매립해 땅으로 만들고, 그 위에 이마트가 생기고 엑스포 공원이 생기면서 그렇게 됐다. 누구도 그 사실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큰아버지는 매립지에 땅을 분양받아 집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그 집 현관 앞에 놓인 의자에 식물처럼 앉아 계시다 돌아가셨다. 빨간 우체통 옆집에 살 때 할아버지는 매일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 배를 타고 오징어잡이를 하러 나가셨다. 할아버지가 두세 마디 이상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말수가 적은 대신 눈물이 많아 자식들이 집에 오면 갑자기 울곤 하셨다. 말하는 모습보다 우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길쭉하고 갸름하고 희고 순한 얼굴이었다. 눈은 살짝 처지고 코도 길고 갸름했다. 함경도 얼굴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낳은 자식들은 모두 할머니를 닮았다. 넓적한 얼굴에 강렬한 인상. 추운 지방 특유의 억척스러운 얼굴. 할머니는 무시무시하고 야박한 사람이었지만 종종 그 넓적한 얼굴에 장난기가 묻어날 때가 있었다. 나는 가끔 거울 속 내 얼굴에서 할머니를 발견한다. 희한하게도 그 많은 피붙이들 중 내 남동생만이 할아버지를 닮았다. 길쭉하고 갸름하고 희고 순한 얼굴. 살아 있는 누군가의 얼굴에 죽은 누군가의 얼굴이 비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속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설악문화센터라는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은, 아는 사람만 아는 사설 도서관인데, 집 근처에 있다면 매일 출근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곳이다. 좋은 신간들이 꾸준히 입고되어 눈에 잘 띄게 진열되어 있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설악산과 울산바위가 보인다. 소파는 편안하고 테이블도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다. 구석에 이해할 수 없는 진열대가 하나 있기는 한데(그래서 구석에 있는 것 같다) 직접 가서 그 실체를 확인해보시길. 2층에는 맛있는 커피를 파는, 오디오 시스템이 근사한 카페도 있다. 우리는 속초에 갈 때마다 이 도서관에 들러 몇 시간을 보낸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라는 젊은 프랑스 작가는 『속초에서의 겨울』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소설을 썼다. 프랑스어로는 Hiver à Sokcho. 나는 이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노르망디와 속초의 지도를 나란히 둔 채 그녀는 노르망디에서 속초를 떠올리고 속초에서 노르망디를 떠올린다. 속초라는 촌스럽고 억센 지명도 프랑스 여자의 소설에 등장하니 어떤 여운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음절이 모음인 것도 마음에 든다. 입을 동그랗게 오므린 채로 ‘초’라고 뱉을 때는 탄력이 느껴진다. 바닷속 깊숙이 잠수해 ‘초’라고 내뱉은 뒤 내 입을 통해 빠져나온 공기방울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출처-동아서점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donga/

 

중앙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동아서점이라는 기분 좋은 서점이 있다. 1956년도에 문을 연 서점이다. 우리 엄마도 이 서점에서 참고서를 샀다고 한다. 지금은 원래의 자리에서 이전해 건물을 새로 지었다. 백발의 아버지와 젊은 아들이 함께 서점을 지키고 있다. 서점 운영이 쉽지 않자 아버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을 속초로 불렀다고 한다. 아들은 고민 끝에 고향으로 내려가 서점을 이어받기로 결심했다.

 

아들인 김영건이 쓴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다. 할아버지가 차린 서점을 손자가 이어받아 꾸려 나간다는 것에 대한 솔직하고 정직한 이야기들이. 서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결국 고향으로 내려가는 착잡한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 아들은 이런 생각들을 한다.


속초엔 바다가 있지. 원할 때면 언제나 산책할 수 있지. 그리운 감자전과 도루묵과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지. 거리의 소음도 없지. 버스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부대낄 일도 없지.
인구가 팔만 정도인데도 인구 밀도가 매우 조밀한 이 작고 이상한 곳. 바닷가를 따라 마을이 긴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언제 어디서고 조금만 방향을 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어느 맑은 날, 시내를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울산바위가 어떤 거룩한 속삭임처럼 드러나는 곳. 바다와 이어지는 곳에 바다였던 옛 시간의 흔적이 무려 두 곳이나 호수로 남아 있는 곳. 걸어서 어디든 다다를 수 있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근래에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생긴 곳. 사람들의 말투는 다소 거칠지만 대체로 친절한 곳.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서점을 다시 열었다.✽

✽김영건,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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