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통장의 낭만적인 규칙[1]

 

우리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지만, 최소한 1년에 한두 번은 속초에 간다. 나는 속초를 좋아한다. 남편도 좋아한다. 갈 때마다 좋다. 굳이 다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제주도에 가본 적도 있는데 왠지 나와는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속초가 더 좋다. 제주도는 둥글둥글, 아기자기한 느낌이지만 속초는 대범하고 씩씩한 느낌이다. 속초 쪽이 내게는 더 편안하다. 나는 둥글둥글하고 아기자기한 사람이 아니다.

 

속초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다. 바다는 푸르고 깊고 거칠다. 설악산에는 울산바위가 있다. 볼 때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것도 많다. 나는 속초에서만 냉면을 먹는다. 여기에서는 진짜 함흥냉면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경도 피란민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진짜 함흥냉면은 고추장으로 만든 양념장 대신, 매콤달콤한 회무침을 비벼 먹는다. 그리고 물냉면처럼 차가운 육수도 듬뿍 부어 먹는다. 거기에 입맛에 따라 설탕과 식초와 겨자를 쳐서 먹는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중앙시장에 갈 때마다 이성을 잃는다. 싱싱한 생선과 오징어 같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게다가 무척 싸다. 떡도 감자도 옥수수도 맛있다. 물이 맑아 수돗물을 틀어서 그대로 받아 마시기도 한다. 속초에서는 모든 것이 늘 풍요로운 느낌이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순하다. 무뚝뚝하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다. 지방 사람들은 대개 서울 사람들처럼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운데, 속초 사람들 역시 그렇다.

나의 친가와 외가는 속초에 있다. 아빠는 함경도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인가 할머니 등에 업혀 피란민 수송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줄곧 속초의 유명한 피란민 거주지인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살았다. 여름방학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허리에 낀 채로 맨발로 골목길을 지나 바다까지 달려가곤 했다. 발이 델 정도로 뜨거운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그대로 바다에 풍덩. 파도가 세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았다. 방파제에서도 놀았다. 테트라포드 사이에 빠지면 무척 위험한데도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래에 슬리퍼가 떨어져 기어 내려가 주워서 다시 올라온 적도 있다.

엄마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 외할아버지는 함경도에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단신으로 휴전선을 건너온 홀아비였다. 외할머니는 강릉에서 나고 자라 시집을 가서 아들 셋을 두었으나 어느 날 남편이 인민군에 징집된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억척스럽고 수완 좋던 외할아버지는 속초에서 사업을 시작해 커다란 트럭 한 대를 굴리고 외할머니와 결혼해 자식도 셋이나 낳고 뒷집에는 첩도 하나 두었다고 한다. 피붙이 하나 없는 남한에서 처음 생긴 피붙이인 우리 엄마를, 외할아버지는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내가 수영을 하던 바로 그 바닷가에서 아빠도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수영을 배웠다. 영랑호수 근처 영랑동에 살던 엄마는 날이 좋으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대로 바닷가로 가서는 교복을 입은 채로 모래 위에 가만히 누워보곤 했다. 모래가 참 따뜻했다고 한다.

 

갓 스물에 엄마는 해군 제복을 입은 아빠를 만났다. 엄마는 아빠가 시내에 사는 검소한 교육자 집안의 아들일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인사를 시키겠다며 데려간 곳은 갯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억센 함경도 사투리가 난무하는 아바이마을 청호동의 가난한 집이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야 나는 속초에서 산 적이 있다는 친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청호동은 문둥병자들이랑 거지들이 살던 동네 아니야?” 속초 사람들에게 청호동은 그런 곳이었다. 고고하던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강릉 살 때는 뱃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 대개 뱃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해변에 널려 있던 판자나 나뭇조각, 미군부대에서 나온 폐자재들을 얼기설기 이어 붙여 비바람을 피할 움막을 지었다. 그들 중 누구도 피란생활이 이렇게나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피란생활이었다. 전쟁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들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그들의 삶 전체가 전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제 아빠가 자란 청호동 빨간 우체통 옆집은 사라졌다. 시내와 청호동을 잇는 다리가 생기고, 바다였던 곳을 매립해 땅으로 만들고, 그 위에 이마트가 생기고 엑스포 공원이 생기면서 그렇게 됐다. 누구도 그 사실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큰아버지는 매립지에 땅을 분양받아 집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그 집 현관 앞에 놓인 의자에 식물처럼 앉아 계시다 돌아가셨다. 빨간 우체통 옆집에 살 때 할아버지는 매일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 배를 타고 오징어잡이를 하러 나가셨다. 할아버지가 두세 마디 이상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말수가 적은 대신 눈물이 많아 자식들이 집에 오면 갑자기 울곤 하셨다. 말하는 모습보다 우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길쭉하고 갸름하고 희고 순한 얼굴이었다. 눈은 살짝 처지고 코도 길고 갸름했다. 함경도 얼굴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낳은 자식들은 모두 할머니를 닮았다. 넓적한 얼굴에 강렬한 인상. 추운 지방 특유의 억척스러운 얼굴. 할머니는 무시무시하고 야박한 사람이었지만 종종 그 넓적한 얼굴에 장난기가 묻어날 때가 있었다. 나는 가끔 거울 속 내 얼굴에서 할머니를 발견한다. 희한하게도 그 많은 피붙이들 중 내 남동생만이 할아버지를 닮았다. 길쭉하고 갸름하고 희고 순한 얼굴. 살아 있는 누군가의 얼굴에 죽은 누군가의 얼굴이 비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속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설악문화센터라는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은, 아는 사람만 아는 사설 도서관인데, 집 근처에 있다면 매일 출근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곳이다. 좋은 신간들이 꾸준히 입고되어 눈에 잘 띄게 진열되어 있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설악산과 울산바위가 보인다. 소파는 편안하고 테이블도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다. 구석에 이해할 수 없는 진열대가 하나 있기는 한데(그래서 구석에 있는 것 같다) 직접 가서 그 실체를 확인해보시길. 2층에는 맛있는 커피를 파는, 오디오 시스템이 근사한 카페도 있다. 우리는 속초에 갈 때마다 이 도서관에 들러 몇 시간을 보낸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라는 젊은 프랑스 작가는 『속초에서의 겨울』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소설을 썼다. 프랑스어로는 Hiver à Sokcho. 나는 이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노르망디와 속초의 지도를 나란히 둔 채 그녀는 노르망디에서 속초를 떠올리고 속초에서 노르망디를 떠올린다. 속초라는 촌스럽고 억센 지명도 프랑스 여자의 소설에 등장하니 어떤 여운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음절이 모음인 것도 마음에 든다. 입을 동그랗게 오므린 채로 ‘초’라고 뱉을 때는 탄력이 느껴진다. 바닷속 깊숙이 잠수해 ‘초’라고 내뱉은 뒤 내 입을 통해 빠져나온 공기방울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출처-동아서점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donga/

 

중앙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동아서점이라는 기분 좋은 서점이 있다. 1956년도에 문을 연 서점이다. 우리 엄마도 이 서점에서 참고서를 샀다고 한다. 지금은 원래의 자리에서 이전해 건물을 새로 지었다. 백발의 아버지와 젊은 아들이 함께 서점을 지키고 있다. 서점 운영이 쉽지 않자 아버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을 속초로 불렀다고 한다. 아들은 고민 끝에 고향으로 내려가 서점을 이어받기로 결심했다.

 

아들인 김영건이 쓴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다. 할아버지가 차린 서점을 손자가 이어받아 꾸려 나간다는 것에 대한 솔직하고 정직한 이야기들이. 서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결국 고향으로 내려가는 착잡한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 아들은 이런 생각들을 한다.


속초엔 바다가 있지. 원할 때면 언제나 산책할 수 있지. 그리운 감자전과 도루묵과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지. 거리의 소음도 없지. 버스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부대낄 일도 없지.
인구가 팔만 정도인데도 인구 밀도가 매우 조밀한 이 작고 이상한 곳. 바닷가를 따라 마을이 긴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언제 어디서고 조금만 방향을 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어느 맑은 날, 시내를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울산바위가 어떤 거룩한 속삭임처럼 드러나는 곳. 바다와 이어지는 곳에 바다였던 옛 시간의 흔적이 무려 두 곳이나 호수로 남아 있는 곳. 걸어서 어디든 다다를 수 있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근래에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생긴 곳. 사람들의 말투는 다소 거칠지만 대체로 친절한 곳.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서점을 다시 열었다.✽

✽김영건,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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