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균관 스캔들>을 둘러싼, 여성들의 '올바르지(straight)’ 않은 욕망들 (1) 

 

       

   
 

“계집에겐, 관헌의 자격이 없다 하셨습니다. 헌데 스승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 나라 조선은 왜 이 모양일까요. 관헌의 자격을 지닌 사내들이 쭉 만들어왔는데 말입니다.” -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10회 대사 중

 
   

  

 

  

남자들의 세상: (위)남한의 국회 풍경, (아래) 북한의 당대표대회 모습
 


<성균관 스캔들>(KBS 2TV 월화 드라마, 2010년 8월 30일~11월 2일 방송)이 종영한 지 한 달 남짓이다. 이 드라마를 둘러싼 열기는 아직 식지 않고 있다. 모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2010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아본 드라마로 발표했고(<Google> Zeitgeist), 모 TV 웹진에서는 하반기를 대표하는 드라마로 꼽히기도 했다.(<10asia> 2010텐어워즈) 꾸준히 상승일로였기는 하나, 시청률이 평균 10% 안팎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은 의아하기조차 하다. 혹자는 인터넷, VOD, DMB, 스마트폰 등등을 합쳐야만 이 드라마가 가지는 파급력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TV 중심성을 벗어난 열풍이 바로 뉴미디어 시대에 새로운 기준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글은 무엇보다 <성균관 스캔들>이 여성텍스트라는 데 주목하고 싶다. 그것은 우선은 드라마 주 시청층에 있어서 성별적으로 특이한 점은 유독 여성들의, 그것도 세대를 아우르는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성 내부의 연령별 분석은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다. 대략 종합하면 애초 10대를 주 타깃으로 제작되었지만, 초반을 넘어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2,30대가 열광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여기서 한 시청률조사기관은 40대 여성이 가장 높은 시청점유율을 보였다고도 발표할 만치 다른 연령대 역시 만만치 않게 가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스 폐인’ 누나들은 과연 무엇에 열광했는가. 주지하듯 이 이야기는 몰락 남인 양반 김윤희가 몸이 좋지 않은 남동생 윤식을 대신해, 생계를 이유로 남장을 하고 성균관에 들어간 후 일어나는 일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원칙적 보수주의자 이선준, 혁명적 로맨티스트 문재신, 세속적 실용주의자 구용하가 윤희를 포함 ‘잘금 4인방’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노론을 중심으로 한 귀족 세력에 맞서, 임금으로 대표되는 중앙 권력을 공고히 하는 개혁에 주춧돌이 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임금의 계보, 그 대종을 잇는 금등지사 찾기의 과업을 함께 이루어야 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마지막 2회에서 결국 드러나게 된 윤식이 윤희, 즉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좌절되는 것으로 그려졌다. 임금은 강상(綱常)의 법도를 스스로 파기하고 패주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신하 위의 임금이라는 원칙조차 부인하게 될 것이기에 그러했다. 시간에 쫓겼기 때문인지 석연치 않았던 이 같은 결말에도 불구하고, <성균관 스캔들>은 비판보다 격려 위주의 의미를 부여받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주인공 윤식-남성을 수행하는 윤희-이 여성이 제기하는 남녀의 사회적 관계의 비대칭을 무리 없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똘망똘망한 여주인공은 자신이 여성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여성으로서의 처지를 내내 자각하고 있다. 필자는 특히 정약용과 윤희가 대면할 때마다 숨을 죽였다. 정약용은 윤희가 성균관에서 여성으로서 만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매번 윤희가 사실은 계집이라는 것을, 그래서 성균관에 가당치 않다는 것을 직시케 했다. 모두(冒頭)에서 언급했던 이 ‘스승’과 ‘계집’의 대화는, 공적 영역의 한계를 놓고 벌이는 성 대결의 일종으로 볼만하다. 그리고 이때 윤희가 쏟아내는 말, 예를 들어 “학문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계집은 백성이 아닙니까”라는 말은 그 자체로 글을 향한 여성들의 투쟁과 다름없다. 윤희는 드라마 전개 초반에 “빈부귀천, 노론남인, 당색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실력만 있다면 등과하여 벼슬을 할 수 있다”라고 한 이선준, 그러니까 소위 ‘먹물’ 남성에게 “조선이 그렇게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 안 해”라며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적대의 지점은 원작보다 드라마에서 추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약용은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물이고, 이선준에 대한 윤희의 감정도 원작에서는 시종 호의적이다.) 이선준은 남자인 양 성균관에 들어온 것, 남자들처럼 활을 쏘지 못한 것 등에 대해 “살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하는 윤희에게 정약용과 똑같이 “변명과 핑계일 뿐”이라고 훈계했던 참이었다. 이에 윤희는 “변명이라고 핑계라고 쉽게 말하지 마. 나한텐 너무 절실했으니까…… 넌 니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사실은 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 귀하신 도련님 주제에…… 너한테는 너무나 당연한 그 기회가, 나한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구쳐도 불가능한, 기적, 기적이란 말이야!”라고 울분을 토한다.

그러니까 도련님들, 즉 ‘정상적인’ 남자들은 차라리 기적이 필요한 세상 질서의 잔혹함에 무지하다. 혹은 그 불합리에 대해서 인지한다고 해도, 그 밖의 현실이 실지로 어떻게 운영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그들에게 여성은 돌봐야 할 백성이지, 함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젠더 범주의 결락은 재신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는 한문(眞門)으로 홍벽서를 뿌렸기 때문이다. 자고로 삐라는 원래 한글(諺文)로 적어야 하는 법이다. 윤희는 이에 대해 걸오에게 “글을 모르는 저자의 백성이나 언문이나 쓰고 사는 아녀자들은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누구를 위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건지, 그런 정신머리로 세상은 또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라고 일갈했다. “서학은 학문일 뿐, 주군은 오직 전하”라는 모순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존귀하다는 배움에도 계집은 관헌이 될 수 없다고 여긴 정약용도 윤희로부터 “삶과 학문이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이들은 “안 된다는 말로는 절 단념시킬 수 없습니다. 계집의 몸으로 글을 알고자 한 그날부터 전 단 한 번도 된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으니까요”라는 윤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본다.

그런데 <성균관 스캔들>에는 윤희가 진입하고자 고투를 벌이는 유생들의 글-학문의 세계뿐 아니라 원래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던 이야기-, 언문의 세계에도 얼핏 드러나 있다. 이선준을 두고 윤희의 경쟁자로 낙점되었던 효은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이야기책에 나오는 인간들은 어디서 자빠져 자고 있는 거야”라고 하더니 이선준을 만나 “있군요, 이야기책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라고 말한다. 그녀가 세책방을 드나들며 들춰대는 것은 “장안을 눈물바다로 만든 연예패설” 류의 소설, “첫날 밤 이렇게 하면 나도 황진이” 류의 자기계발서, “1등 신랑감 명부” 류의 실용서 등등이다. (이것은 물론 2010년까지 당대의 실질적 베스트셀러 명목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널리 읽히는 이야기들이 언제나 여성의 것, 혹은 여성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윤희에게 ‘관헌’의 글이 금지되었던 것처럼, 효은에게 허락되었던 이러한 ‘사가’의 독서 역시 언제나 과한 것은 아닌지 경계되었다. 왜냐하면 남자들의 세상은 글-이성-논리에 의해 구축되는 바, 여자들은 윤희처럼 여성이면서 글을 알고, 그로 인해 남녀유별의 법칙을 깨트리기도 할 것이지만, 또 한편 효은처럼 글들보다 미달태인 온갖 이야기들을 이성과는 상관없이 향유하면서 그 체제를 밖에서 흔들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윤희는 여성의 몸으로 성균관 박사가 되지만, 결국 여성으로서 선준과 결혼생활을 꾸리며 ‘양성평등’을 이루는데 머문다. 이것이 또 한편 <성균관 스캔들>이 흥행과 더불어 ‘공영’ 방송의 드라마로 안착할 수 있었던 지점일 터이다. 그렇다면 효은은? 드라마 종영 시 연출자는 드라마 구성상 효은의 분량이 많이 잘려나가 가장 미안했다고 밝혔다. 원래 효은은 4인방과 마찬가지로 자아성장을 이루며, 결국 ‘패설 작가’로 성장할 예정이었다고 전했다. 
  

 

  


여자들의 세계: (위) 글-학문에의 분투, (아래) 언문-이야기에의 탐닉
 


필자는 이 흐려진 효은의 위치가 이야기에 대한 여성의 탐닉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윤희와 효은은 쌍생아처럼, 글-학문에 분투하는 한편 언문-이야기에 탐닉하는, 언어와 여성이 맺어온 관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런데 전자는 전경화되고 후자는 후경화된다. 사실 원작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들>(정은궐 저, 파란미디어, 2009)은 공중파의 드라마가 구현했던 이야기보다 훨씬 로맨스의 문법에 충실하고 있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재자가인(才子佳人)이며, 이들의 농염한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른 캐릭터들 역시 ‘아버지, 형의 유산’에 자못 진지하게 몰두하기보다는 더욱 발랄하고 거침없이 자신들의 청춘과 우정의 나날들을 즐기고 있다. 몇만 부를 계획했을 뿐인 이 책은 50만 부를 훌쩍 넘어 팔렸고, 드라마 종영 이후 100만 부를 넘긴 메가 히트작이 되었다. 독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 매혹적인 이야기의 창작자는 마치 뒤로 물러선 효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출판사는 작가를 대신해 “사생활과 글쓰기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는데, 이는 로맨스라는 여성화된 장르 자체가 가지는 그림자적 위치를 드러내고 있다. 즉 환상을 실제와 관련시키는 것이 부담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탐닉하는 여성적 독서, 그럼에도 생겨나는 이야기에 대한 동경 등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 여성의 몸으로 성균관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갓집 규수가 패설 작가가 되는 것 역시 경천동지할 일이다.

만일 그녀가 2010년에 환생한다면? 오매불망 이선준에게 구앨랑은 집어치우고, 어느 팬 커뮤니티에 접속하여 그를 두고 팬픽이라도 쓰면서 현대판 패설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회에서는 이러한 ‘현대판 효은’들이 어떻게 <성균관 스캔들>을 즐길 수 있었는지, 이를 수행적 젠더라는 측면에서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윤희 어머니의 말마따나 “글이 재주가 되고 밥이 되는 계집은 기생년들 뿐”이었지만, “여자의 글재주는 독”이라는 유구한 언설에도 불구, 이야기에 탐닉하고, 글쓰기를 동경하는 여자들이 언제나 있었음을, 그 자취를 확인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환상 역시 종시 현실과 관련을 맺고 서로 습합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같은 여성들의 집단적 투신이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 동성 서사로의 정향에 대해서도 고민의 끈을 놓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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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2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현대에는 자식 교육을 어미들에게 맡겼지요. 그래도 여전합니다. 아이를 누가 길러야 훌륭한 인간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