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네가 있는 곳이 어디니?”
“상관하지 마.”
“왜 말 하려 하지 않는 거야?”
“그럼 네가 앰뷸런스를 부를 테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와서 내 생명을 구하려들 테니까.”
더스티는 몸서리를 쳤다. 이건 도움을 구하려는 외침이 아니었다. 작별인사였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더스티가 추궁했다.
“알려고 하지 마.”
“제발 말해줘.”
“난 죽고 싶어. 죽어야 해.”
“도대체 왜?”
“고통이 너무 심해. 이 고통이 어서 사라져주기만을 바랄 뿐이야.”
더스티는 재빨리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소년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낼 만한 무슨 단서를 찾아야 했다. 그가 나무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근처에 나무가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다 소년이 벡데일 지역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전국 어느 구석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심지어 외국에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문득 수화기 저편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랄까, 무거운 물체가 경첩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술집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철문이 열리는 소리 같기도 한 금속성의 삐걱거리는 소리였다. 더스티는 귀를 기울였다. 어쩐지 많이 들어본 소리였고, 그것도 최근에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였다. 이제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신이 생겼다.
소리가 멈췄다. 더스티는 다시 소리가 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귀를 기울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소년은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한번만 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대신 마치 혼잣말을 하는 듯 아련하고 초연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소년의 말은 아무런 단서도 주지 못한 채 더스티를 온통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미안해, 꼬마 더스티. 잘 있어, 꼬마 더스티.”
더스티의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예전에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듣게 되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더스티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들었던 때를 똑똑히 기억했다. 바로 지금처럼 있는 힘껏 전화기를 부여잡고 있던 그날 일이 떠올랐다. 킬버리 무어 황무지 위로 해가 떠오르는 걸 바라보며 침실 창문가에 서 있던 그때가 떠올랐다. 하루가 저물어 가면 그에 따라 삶도 같이 저물어가는 것만 같던 그날의 기분이 떠올랐다. 더스티의 귓가에 들려오던 몇 마디 말, 오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잘 있어, 꼬마 더스티.”
소년이 말했다.
“조쉬 오빠!”
더스티가 소리쳤다.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가 끊기기 전, 더스티의 귀에 들려온 소리는 금속이 덜그럭거리는 아까의 그 이상한 소리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소리와 함께 한 가지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스톤웰 공원… 나무들… 어린이 놀이터… 그네! 바로 어제만 해도 아빠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다가 그곳의 그네 위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그 위에 올라타기도 했는데, 조금 전 바로 그 소리가 들린 것이다. 더스티의 추측이 틀림없다면 소년은 기껏해야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더스티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현관을 향해 달려가 외투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그런 다음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전원을 켠 후, 메모지에 아빠 앞으로 간단히 메모를 남겼다.
‘잠깐 나가. 휴대전화 켜놨어. 금방 돌아올 거야. 더스티.’
더스티는 아빠가 메모를 읽기 전에 돌아올 수 있길 바랐다. 아빠가 메모를 보게 되면 이만저만 걱정하는 게 아닐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다. 소년을 찾아야 했다. 그것도 빨리. 더스티는 집 밖으로 나와 현관문을 닫은 다음 컴컴한 골목길을 전력을 다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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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이끼 2009-12-2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와 숲, 그리고 소년, 소녀.........
팀보울러 특유의 환상과 아픔, 사랑과 죽음이 함께하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그 유혹에 또다시 빠져든것만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