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18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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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번쯤은 투명인간이 되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맘껏 때리거나 선생님 책상의 시험지도 몰래 훔쳐볼 수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 갖고 싶은 게임과 옷을 챙길 수도 있고, 음식점에서는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성 친구의 샤워 장면을 몰래 숨어들 수도 있다. 특히 공부하라는 사람이 없으니,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투명인간>에서는 이런 소소한 재미에 반하는 엄청난 시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차나 물건, 사람들에게 쉽게 부딪쳐 다치거나 생명이 위험했다. 옷을 입자니 유령처럼 보일 테고, 벗고 있자니 추위와 싸워야 했다. 밥을 먹더라도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음식물이 그대로 보여 기괴한 모습이었다. 보이지가 않으니 남들 앞에 말을 걸 수도, 물건이나 음식을 살 수도 없었다. 문제는 이런 어려움을 이야기할 가족이나 친구도 사라졌다. 자유가 아니 외로움만 남은 것이다.


  <투명인간>은 <우주전쟁>, <타임머신>과 같이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고전을 쓴 하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으로, 1897년에 출판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신선했다. 투명인간이 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위기상황부터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나, 사건의 흐름에 맞춰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 구성해 놓은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빛을 굴절시켜 사물을 투명하게 만든다는 근거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나와 있고, 투명인간이 된 직후의 즐거움과 재미에 반해 수없이 다가오는 난관이 잘 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깨끗이 닦여진 유리창과의 거리를 가름하는 것처럼 투명인간의 행동과 움직임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최고 클라이맥스인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육박전의 생동감이 조금 반감된 느낌이다. 


  투명인간은 약간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인해 최고의 소재가 되었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로 리메이크되었고, 최근에는 마블과 DC에서 만들어내는 슈퍼히어로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투명인간이 자신의 특수성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켰으면 아이언맨이나 슈퍼맨을 뛰어넘는 ‘원조 슈퍼 히어로’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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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열린책들 세계문학 163
다니엘 디포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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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빈슨 크루소를 모티브로 한 책이나 드라마가 계속 유행 중이다. 사람의 발자취가 없는 원시림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외국 프로그램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면서, 오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과 팁을 만화로 풀어쓴 만화 시리즈도 유행했고, 김병만이 주축이 되어 무인도와 같은 제한된 환경에서 생활해나가는 예능프로그램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마치 지구 문명이 멸망하고, 돈으로 해결되는 경제구조가 무너진 영화 속의 상황들이 곧 현실에 닥칠 것처럼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목적 없이 1등만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의 삶이 너무 팍팍해서 그런가? 아니면 거품처럼 부풀어진 경제적 환상에 염증을 느껴서인지 모르겠지만, 돈벌이 기계가 되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자연에서 자급하며 살아가는 법을 찾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이런 생존기를 볼 때마다 로빈슨 크루소가 대체 누구냐 하는 궁금증은 커져갔다. 그의 이름이야 여기저기서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가 어느 책에서 등장했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지했다. 소인국과 대인국을 여행했던 걸리버와 혼동하기도 했고, 급기야 실존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라는 책이 <로빈슨 크루소>(1998)의 이야기를 리메이크한 소설이라는 소개글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로빈슨의 모험 이야기를 언급하며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풍자한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을 보고, 로빈슨의 삶도 정확히 알아보고, 어떤 게 내용이 바뀌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어 두 권 모두 구입했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부모님을 떠나 더 넓은 사회로 여행을 떠난다. 아니 갑갑한 현실에서 도망치듯 영국행 배에 오른다. 하지만 첫 항해에서 배가 난파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고, 두 번째 항해에서는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지만 탈출에 성공해 브라질에 정착한다. 그는 농장을 꾸리며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방랑벽에 충동적으로 기니로 출발했고, 이 때 만난 폭풍으로 배가 난파되어 홀로 무인도에 버려졌다. 망망대해의 무인도에는 숲과 바다, 하늘뿐이었고, 낮과 밤이 전부였다. 하지만 해안에 밀려온 난파선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기면서 자급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그의 무인도 생존기를 보고 있으니 이런 무인도에 홀로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푸른 바다와 하얀 해변에서 하루 종일 뒹굴 거리면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물론 몇 달, 몇 년을 이렇게 '여유롭게' 생활할 수는 없겠지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 며칠만이라도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목적 없이 살아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무인도라는 공간적 낭만보다는 한국, 아니 가족과 직장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1719년 출판된 소설답지 않게 로빈슨의 심리상태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놀라웠다.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행동한다지만 늘 충동이 앞서고, 그에 따른 자부심과 후회, 갈등이 혼재한 모습이나, 하나의 결정 뒤에 숨어있는 복잡한 감정 변화가 다채로웠다. 한 사람의 일생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전 세계에 방영한다는 <투르먼 쇼>에서 짐 캐리가 보여준 것처럼 만족, 분노, 사랑, 질투, 각성 등의 감정변화를 실시간으로 드러난다. 로빈슨의 여행은 감정변화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 앞에선 자신을 책망하며 신을 찾다가도 그 고비를 넘기면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오만함을 반복하는 모습은 이성적이라만 다중적고도 모순적인 우리들의 심리상황을 보는 것 같다. 하루에도 열 천 번도 더 변하는 사람의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이나 어른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변화가 없어 보인다.

 

   특히 신과 야만인에 대한 로빈슨의 태도 변화가 인상적이다. 평소에는 하느님의 존재나 의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폭풍우로 인해 배가 좌초되어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는 그간의 행동을 반성하며 주님을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평온함이 익숙해지자 이런 절대자에 대한 믿음도 약해졌다.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마음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을 신께 의지하는 오랜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주변의 위기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의존적인 생명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로빈슨이 표류하고 있는 섬에 찾아와 식인을 하는 야만인들 보고 처음에는 죽여 없애야 할 인류의 적으로 생각했지만, 자신이 어떤 권리로 그들을 판단하고 처단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면서 자신과 그들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게 된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없어져야할 존재들이 아니라 다른 문화 속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들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로빈슨은 목숨만 남은 동물이 되었다가,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이 되기도, 생각하고 갈등하는 인간이 되기도, 넓은 아량으로 야만인을 용서하는 신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로빈슨의 모험은 육체적 생존을 위한 모험기가 아니라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거쳐 정신적 깨달음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디포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이야기와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섬세한 심리묘사까지 1719년에 출판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채롭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오감과 희로애락은 무인도에 갇힌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1)의 확장판을 본 것 같았다.

   이 여세를 몰아 이 책의 리메이크 작인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를 펼친다. 원작과는 이야기가 어떻게 다르고,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다시금 로빈슨과 함께 긴 항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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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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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p170)

  ’는 82년생 김지영 씨의 정신과 치료를 맞고 있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ADHD가 의심되는 자녀는 둔 맞벌이 가장이다. 아내는 안과 전문의였지만 결국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하지만 곧 나아지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육아는 힘들고, 수입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여성과 육아,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변함이 없었다. 사회와 가정, 남성들 속에서 여성은 움츠려들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84년생 김지영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기록한 글은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지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 한다.

우리의 지영 씨는 남존여비의 고착화된 성역할과 내조의 여왕식의 가족 역할을 통해 언제나 수동적이고 보조적인 존재였다. 개인의 소질이나 개성과는 상관없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보상조차 재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자는 응당 그래야 돼라는 사회적 편견 속에 오빠의 뒷바라지와 동생의 학비를 벌기위해 동부서주했지만 정작 자신이 원했던 것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성은 가정에서부터 서브 자녀로 시작되었다.

어렵게 학업을 마쳤지만 취업의 벽은 높기만 했다. 벽 꼭대기에 앉은 남성은 실력보다는 성별을 먼저 고려했고, 설상가상으로 결혼과 출산의 족쇄마저 달려있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차별과 성희롱을 이겨낸다고 하더라도 가정과 육아, 직장생활의 3중고를 이겨내는 슈퍼우먼이 되어야했다.

이렇게 그녀는 세상에 함몰되어 갔고, 지친 육체는 공허함과 허탈감을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었다. 84년생 김지영 씨는 꿈도, 희망도, 내일도 사라졌다...

  안타깝다. 그저 미안하고 부끄럽다. 뭐라 해줄 말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위로의 말이라고 어설프게 꺼냈다가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붙는 격으로 서러움만 키울 것 같다. 서글서글하고, 당찬 모습이 아름다웠던 나의 지영 씨는 오늘도 자유롭지 못했다.

미안해, 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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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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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딱 들어맞는 재미나고 독특한 일러스트가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노란 방바닥에 팬티만 입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뒹굴 거리고 있는 청년이 있다. KO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처럼 엉덩이를 세운 채 바닥에 엎어져있는데 포정은 너무나 편안해 보인다. 그의 등 위로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낮잠에서 깬 모양인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고, 방바닥에는 어젯밤에 먹었을 법한 맥주 한 병과 오징어가 뜯지도 않고 놓여 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어떤 이의 방해도 없이 늘어져있는 모습이라니... 이건 누가 보더라도 논팽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리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붙은 부제목도 ‘야매 득도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저자 하완은 그럭저럭 다니던 편집 회사를 그만 둔 백수다. 물론 완전한 백수라기보다는 디자인을 전공한 덕으로 일러 프리랜서를 하는, 약간의 수입이 있는, 복 받은 백수라고 해야 옳겠다. 그는 규칙과 질서에 얽매인 회사를 때려치우면서 열심히 노력해 성공해야한다는 정형화된 사회 목표에 괜한 딴지를 건다.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상사 눈치를 보며 출퇴근 시간에 얽매여 있어야하는 조직의 허울을 벗어버렸다.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고, 미래를 준비하기 싫어서라기보다 그렇게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한 답이겠다. 하완은 그렇게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팬티 차림으로 방바닥을 뒹굴며 글을 썼다.


  열심히 살아야하는 목적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찾으려는 그가 당차 보이기도 하고 용기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드는 생각하나는... “그래서,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이, 뚜렷한 방향이나 목적 없이, 톱니바퀴 같은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관조해보는 것은 좋지만, 구체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은 없다. 물론 이런 무대책의 대책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핵심이겠지만, 돌아올 곳이 있어 떠나는 해외여행과는 달리 일상탈출 이상의 의미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퇴사나 여행, 자유는 현재로 회귀할 중심점이 있어야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을 텐데, 이 책에서는 바람에 밀려 해수욕장 안전선을 넘는 튜브처럼 자꾸만 수평선 쪽으로 떠내려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인 ‘하마터면 불행할 뻔했다’를 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진다. 바로 자족! 열심히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갖지는 않을 것. 돈은 많이 못 벌겠지만 부족한 만큼 아껴서 생활하는 것,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자족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실업자로 살아가는 그가 어쩌면 정말 득도를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뜻밖의 무소유’라 겸손해 했지만, 거친 세상에 휘말리거나 더럽히지 않고 오롯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젊음의 강인함을 느낀다. 자신을 마주하며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하완 님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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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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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동안 손에서 놓은 뒤에 대시 책을 잡으려할 때 이런 책이 제격이다. 어렵지도 않고,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는 책인데다,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다른 책을 이야기하고 소개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잠자는 독서욕을 자연스럽게 깨울 수 있다. <책은 도끼다> 역시 광고 일을 하고 있는 방우현 님이 책을 소재로 한 강연을 엮어 놓았기에 나와 멀어져버린 책과의 거리를 좁혀줄 좋은 선물일 것 같다.

 

   전 지구적 찜통더위로 온 세상이 난리다. 보일러가 틀어진 밀폐된 사우나에 온 것 같이 숨을 들이킬 때마다 답답한 열기가 온 몸에 가득 찬. 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선한 꽃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각박한 현실에 비껴나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샘터를 만나는 기분이다.

   여백 가득한 이철수 님의 판화와 풀 한포기와 한 점 바람결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김훈 님의 글, 사랑을 분석해 왜곡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알랭 드 보통의 책과 자연과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사랑하게 되는 고은 님의 시가 우리를 뜨거운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처럼 상큼하게 다가온다. 질곡 많은 세상 골짜기를 여유롭고 무심한 듯 흘러가는 가을바람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처럼 강렬한 김화영 님의 여행기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과 마주하라고 말한다. 과거와 미래에 구속되지 말고 지금에 충실하면서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밀란 쿤데라와 톨스토이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살짝 어렵고 난해하다. 원작 자체의 분량도 있겠거니와 사랑 이야기 속에 이념이나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며 점심 식사 후의 나른함 때문인가... 아무튼 책 속의 책은 얕으면서 깊고, 맑으면서도 심오했다. 하지만 안네 카레니나는 꼭 읽어봐야지.

   끝으로 오석주, 최순우 님의 책을 살펴보면서 동양의 그림과 사상을 이야기한다. 무한한 여백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우리의 옛 그림을 통해 앞만 보고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들을 꼬집는다.

 

   다시 시작하는 책읽기 초장부터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졌다. 옛날에 읽었던 책도 다시 읽어보고 싶고, 이름만 들었던 책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놓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사놓고는 책장에 잠 재우고 있는 책도 있는데...

   책을 읽어야겠다. “얼어붙은 내 머리의 감수성을 깨는 도끼를 통해 보다 여유롭고, 아름답게,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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