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클래식 클라우드 6
백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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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기법(참고 : 두산백과)

 

  헤밍웨이의 굴곡진 삶을 따라 독자를 안내한다. 예술가들의 고향이던 파리를 시작으로 그가 살았던 도시와 그가 썼던 글을 따라간다. 글쓰기의 밑바탕이 된 기자생활과 죽음과 인생의 무게를 경험하게 된 전쟁, 네 번의 결혼과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남성적이고 거친 그의 하드보일드한 삶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런 삶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는지 살펴본다.

   마치 헤밍웨이를 안내를 받아 그의 소설과 내면으로 여행한 것 같다. 고집 세고 무뚝뚝한 노친네의 불성실한 가이드로 많은 발품을 팔았지만, 저녁 즈음에 들른 선술집에서 발그레한 취기로 열정적으로 쏟아놓은 그의 무용담으로 인해 가장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되었다.

 

  최근 <무기여 잘 있어라>, <노인과 바다>를 읽었고, <헤밍웨이 단편선>을 같이 읽고 있어서인지 지면 속의 텍스트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배경이나 주인공이 나눈 대화,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까지 다시 한번 되새김하게 된다. <무기여 잘 있어라>의 프레더릭이 전쟁에서 봤던 것과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이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잡았던 청새치가 어떤 존재였는지 되짚어보게 된다.

   그래서 한 작가의 글이나 이와 관련된 것을 몰아서 보는, '전작주의자'의 느낌도 덤으로 얻게 된다.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낳은, 자식과도 같은 글들을 읽으면서 그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물론이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착각마저 들게 된다. 어쩌면 나도 이미 헤밍웨이의 전작주의자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최고의 대문호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내 지인이라니...

 

  헤밍웨이는 행복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결혼생활을 네 번이나 바꿨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전쟁에 끊임없이 참전했으며 술과 투우, 낚시에 탐닉했다.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포함한 각종 사고를 당했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 정신병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극한의 상황까지 끊임없이 몰아붙였지만, 그 틈새는 쉽게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가족과 친구, 이웃까지 몰아세우며 자신을 방어해 봤지만, 그 무게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겉으로는 무소불위의 초인이 되어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사랑에 못 말라 했던 여린 헤밍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세계 명작을 남긴 전설적인 소설가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나온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얼굴을 표지로 삼았다. 거친 수염을 기른 체 정면을 바라보는 고집 쎈 얼굴이다. 하지만 먼 곳을 응시한 그의 깊은 눈을 바라보면 웬지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대문호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험난했던 삶과 충격적인 결말은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빼버린 채 간략하게 써 내려간 하드보일드, 그 자체라고 생각된다. '헤밍웨이'라는 단어는 이미 우리 시대의 마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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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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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는 84일째 아무런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엄청나게 큰 청새치가 그의 낚싯바늘을 물었고 이틀간의 사투 끝에 작살로 겨우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배에 매달고 오는 도중에 피 냄새를 맞은 상어 때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살점이 뜯겨버렸고, 앙상한 뼈만 매단 채 겨우 되돌아올 수 있었다.


  노인은 오직 고기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허기와 부상을 견딘다. 살이 갈라지고 목이 타들어 간다. 잠은 고사하고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다. 낚싯줄 하나로 연결된 적은 심연에 웅크린 채 완강히 버텼다. 적은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자신이 되어버렸다. 바다는 현실과 이상을 가르는 경계가 되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잡으려고 했던 청새치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84일간의 불운을 돌파해줄 행운의 열쇠였고, 자신을 따랐던 소년과 재회할 수 있는 허가증이었다. 또한 노년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말 상대였다. 비록 힘들게 성취한 결과물이 타인의 몫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이것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청새치의 상징과도 같은 긴 뿔(주둥이)을 소년에게 선물함으로써 노인이 찾은 희망은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정작 헤밍웨이 자신은 청새치를 잡고도, 그 희망의 끈은 놓쳐버렸다. 탕! 엽총 소리와 함께 노인의 무기는 사라졌다. 다음 책에선 헤밍웨이를 따라가 봐야겠다.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 낼 수 있는지 보여 줘야겠어. - P67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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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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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공학의 3원칙]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의 원조격인 소설로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로 시작하는 로봇공학의 3원칙을 만들어낸 아이작 아시모포의 단편집이다. 이 3원칙은 로봇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차용하는 개념으로, 이를 통해 아시모프는 SF소설의 거장이자 전설이 되었다.

  이야기는 기술문명이 발달해 우주로 발을 넓혀가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로봇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인간을 도와 많은 일을 했지만, 인간은 나날이 발전하는 로봇의 능력에 점처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나 다른 행성에서의 광물 채집 같은 힘든 작업을 맞겼다. 이런 배경 위에 9편의 단편들이 독립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엮어져 있다.

 

  <로비_소녀를 사랑한 로봇>에서는 한 소녀를 돌보는 보모 로봇, 로비가 등장하는데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두려움으로 멀리 보내지게 된다. 하지만 소녀에게 위험한 순간이 닥치자 로비는 그녀를 구하게 되고 다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휴먼스토리로 인간을 도와야 한다는 로봇공학 1원칙이 등장한 소설이다.      

  <스피티_술래잡기 로봇>은  로봇공학의 세가지 원칙이 온전하게 등장하는 단편으로 스피티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하는 2원칙과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3원칙 사이에서 맴돈다. 로봇 3원칙 간의 간극을 절묘하게 파고든 느낌. 

  <큐티_생각하는 로봇>에서는 우주기자의 관리를 맞게 되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인간을 가둬놓은 체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다. 이 로봇은 자신이 믿고있는 세계의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 정도로 인간을 인식해버린다. 로봇이 인간 위의 신이 되어버린 것.

  <허비_마음을 읽는 거짓말쟁이>에서는 인간에게 행복함을 주려는 로봇의 노력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오해해 벌어지는 유쾌한 코미디를 연상케했다.

  이 외에도 <데이브_부하를 거느린 로봇>, <네스터 10호_자존심 때문에 사라진 로봇>, <브레인_개구장이 천재>,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 <피할 수 있는 갈등>이 실려 있다.

 

  <아이, 로봇>에는 로봇 3원칙을 중심으로 여러편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글로 묶여 있다. 어떻게 보면 로봇이라는 제한된 소재만으로 풀어가야하는 한계를 인간과 로봇 사이의 규칙과 질서, 모순을 기발하게 표현한 것 같다. 지금부터 80년 이전인 1900년 중반에 출판된 소설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마치 스마트폰을 주제로 매번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낸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를 보는 것 같다. 점점 중독되어 가는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처럼, 매끄럽고 차가운 로봇의 차가운 표면 아래 감추어진 인간과의 연결고리가 재미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등장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주행 중인 탑승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 사람이 붐비는 인도 위로 핸들을 틀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오는 복잡하고 난해한 질문이 <아이, 로봇>에 던져 놓았다. 로봇을 통해 화려한 이상향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 편리함 뒤에 감춰진 이면을 고민케 한다.

  결국 로봇과 같은 첨단문명도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한 줄의 코딩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창의력을 보여주는 알파고의 활약에 뒤렵기도 하다. 나는, 우리는 로봇을 조종할 것인가, 조종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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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어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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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자가 다섯 번째 이별을 하고 산속으로 머리 깎고 완전하게 떠나 버렸대”로 시작하는 박상민의 노래, <무기여 잘 있거라>는 다섯 번의 사랑과 배신, 이별을 신나는 리듬에 맞춰 코믹하게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말하는 무기란 총(gun)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쓰였다. 그래서 자신을 이용하고 버린 혐오스러운 남자들에게 “무기들아 잘있어~”라고 말하며 떠났던 것.
 하지만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말한 무기는 말 그대로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대포, 총, 칼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기, 즉 전쟁으로 동반되는 죽음, 이별, 부상,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고픈 안간힘이 담겨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벗어나려고 하면 더 얽혀버리는 올가미처럼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이 책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을 지키려는 한 쌍의 연인을 통해 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전쟁 속에 휘말린 개인이나 이들의 삶을 연민이나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설 없이 재생되는 전쟁 다큐멘터리에서처럼 덤덤하게 펼쳐놓는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프레더릭 헨리는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를 알게 되고 재미 삼아 작업을 건다. 하지만 부상으로 이송된 후방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사랑이 싹트게 된다.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부상이 완쾌된 헨리는 다시 전쟁터로 복귀하지만 연합군이 패하면서 후퇴하게 되고, 이 와중에 탈영병 신세로 전락해 총살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탈출해 캐서린과 재회한 헨리는 스위스로 도망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쳐보지만 현실은 이들을 옹호해주기보다는 점점 더 폭풍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태풍의 눈에서 잠깐이지만 고요한 하늘과 햇빛을 볼 수 있었지만, 이는 더 큰 고난과 시련을 예고하는 전주일 뿐이었다. 현실은 회피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망가면 갈수록 냉엄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던 것. 헨리와 바클리, 아니 우리를 공격하는 최대의 무기는 바로 ’현실‘이었다. “무기여 잘 있어라”는 말은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실 앞에 인간은 더욱 나약해지고 소심해져서, 결국에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극한의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은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그 벼랑 끝에서 ‘사랑’‘이라는 한줄기 희망을 봤고 ,여기서 작게나마 위안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동아줄을 기다리며 세상이라는 외줄을 타고 있는 작은 광대에 불과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일까. 권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의 기울어져 가는 가슴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네 번의 결혼과 바람,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두 번의 비행기 사고와 여러 차례의 전쟁 참전,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증을 앓았다는 그가 세상 바깥으로 내몰리면서도 애타게 찾으려고 한 것도 '사랑'이었지 싶다.
 
  책을 덮고 나니 여러 이야기가 두서없이 떠오른다. 현실을 외면하고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와 사랑에 함몰되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생각난다. 그리고 허무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헤르만 헤세의 <크놀프, 그 삶의 세 이야기>와 함께 전설적인 부부갱단(보니와 클라이드)의 비극을 그린 영화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도 뇌리를 스친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인생, 아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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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모비 딕 1~2 - 전2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허먼 멜빌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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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0년 11월 20일 포경선 에식스호는 남태평양에서 '거대한 향유고래’와 충돌해 침몰했다. 구명보트 세 척에 나눠탄 선원들은 남아 있던 비상식량이 바닥나자, 인육으로 연명했다. 석 달 넘는 표류 끝에 8명이 살아남았다. 포경선원으로 일한 멜빌은 1840년대에 낸터킷을 방문해 이 에식스호의 생존자이자 일등항해사였던 오언 체이스의 조난기를 읽었다. 19세기 최대의 해양참사로 알려진 이 비극은 소설 <모비딕>이라는 고전으로 재탄생한다.
(출처 : 낸터킷을 세계적인 해양 여행 명소로 만든 ‘모비딕’의 ‘마법’)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나는 고래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에 매료되어 미국에서 포경업이 시작된 낸터킷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야만족 퀴퀘그를 만났다. 그는 폴리네시아 왕의 아들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이었지만 고래잡이를 동경하고 있는 데다 순수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해 나와 동행키로 했다.
  우리는 에이해브가가 선장인 피쿼드호에 탔는데 그는 지난번 고래잡이에서 모비 딕이라 불리는 흰색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한쪽 다리를 잃었다. 이 때문인지 선장은 고래잡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모비 딕을 잡고 말겠다는 복수심이 앞섰다. 하지만 용감하고 침착한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이런 선장의 모습을 걱정했다.
  출항 후 첫 번째 출격! 모선에서 출발한 네 척의 보트는 저기 보이는 고래 떼를 향해했지만 거친 파도와 스콜, 안개로 인해 고래도 놓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고래에 부딪혀 보트가 전복되면서 겨우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등항해사인 스터브가 향유고래를 잡았다. 잡은 고래는 포경선에 매단 체 해체되는데,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때문에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향유고래 머리에서 최고급 기름인 경뇌유를 추출하던 중에는 선원 한 명이 고래 머릿속에 갇혀 수장될 위기에 몰렸지만, 퀴퀘그의 용기와 노련함으로 무사히 구출해내기도 했다. 
  피쿼드호는 다른 포경 보트와 힘겹게 경쟁하거나, 스터브의 멋진 창 던지기로 고래를 잡기도 했다. 그리고 커다란 고래무리 가운데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리기도 했고 선원 한 명이 조난되는 등의 일을 겪으며 고래를 잡아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모비 딕을 만났다. 이틀 간의 긴 추격과 싸움으로 보트를 부서지고 선원 한명도 죽었다. 추격 사흘째 되는 날, 모비 딕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한다.
  “질질 끌리는 밧줄과 작살과 창으로 너저분한 모습이 된 거대한 형체가 바다로부터 세로로 비스듬히 솟아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늘어진 얇은 베일 같은 물안개에 가려진 채 잠시 무지개가 뜬 대기 중에 머무르고는 다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수면 위로 30피트까지 솟아오른 물은 분수가 뿜어 올린 물기둥처럼 일순간 번쩍하더니, 산산이 부서져 눈송이처럼 쏟아져내렸다. 고래의 대리석 같은 몸뚱이 주변의 수면은 갓 짜낸 우유처럼 물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쳤다.“(<모비 딕> 2권 501페이지)

  <모비 딕>은 <백경>이라는 이름으로도 번역되기도 했는데 1,0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이다. 하지만 “도대체 고래는 언제 나타나는 거야?”라고 반문할 정도로 ‘고래 사냥’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상당 부분 차지한다. 백색 향유고래 모비 딕과 피쿼드호 선원들 간의 사투라든가 포경선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보다는 고래는 어떤 종류가 있고, 고래잡이는 언제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래기름은 어디에 사용되고 어떻게 얻는지, 포경선과 포경 보트의 구조와 용도는 어떻게 되는지 백과사전처럼 설명한다.
  그렇다 보니 모비 딕을 쫓는 중심 이야기의 맥은 자주 끊어지고 지루함마저 들게 한다. 고래 이야기에서 포경과 그 주변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래사냥 언저리의 이야기가 책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150년 전에 출판되어 오늘날까지 두루 읽히고 있는 세계적인 고전이라는 타이틀이라도 없었다면 계속 읽어 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슈미얼과 함께 포경선에 오른 퀴퀘그, 스타벅의 비중이 작은 것도 아쉬웠다. 소설 초반부의 강렬한 등장신에 비해 이렇다할 역할이 없었다. 모비 딕과 대척점에 선 에이해브 선장을 도와주거나 대립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한 모호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텍스트가 종종 보였다. 고르지 못한 중계 사정으로 중요한 장면을 놓쳐버린 경우처럼, 고래와의 긴박한 승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원문 자체가 그런지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모비 딕이라는 이름은 거대하다는 의미의 모비(Moby)와 성기를 의미하는 딕(dick)의 합성어로, 한마디로 “거대한 거쉬기~”라는 말인데, 실제 에식스호는 물론 여러 포경선을 공격했다는 한 사나운 향유고래에서 따왔다고 한다. 모카 딕으로 불렸던 이 향유고래는 포경선이 다가오면 도망가는 다른 고래와는 달리 머리와 꼬리를 이용해 포경선과 선원을 공격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사납게 몸부림치는 고래를 보고, 격정의 순간으로 치닫고 있는 성난 남성을 생각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또한, 세계적인 커피점인 스타벅스의 이름이 여기 나오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에서 따왔다는 것. 원래는 배의 이름인 피쿼드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공동 창업자가 스타벅으로 바꾸자고해 복수형인 s를 붙여 오늘날의 이름이 태어났다고 한다. 모비 딕이 휘젓고 다니는 거친 바다의 비릿한 향기나 암갈색의 구수한 커피향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 같다. 이제 커피를 마시더라도 폭주하는 모비 딕을 차분하게 대적하는 스타벅이 생각날 것 같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고래 뼈는 많이 봤지만 살아있는 고래는 2015년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처음봤다. 반달 모양으로 유명한 몰로키니 섬으로 스노클링을 하러 가던 중 울렁이는 파도 사이로 퓨우~하고 수증기를 뿜어내던 고래를 볼 수 있었다. 먼발치에서 고래의 등만 살짝 보였을 뿐이지만 수면 아래 커다랗게 존재할 고래의 여유로움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든든해졌다.
  고래는 그 모양과 크기, 움직임,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했다. 머리부터 시작해 등과 꼬리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선이 엄마의 포근한 가슴선이나 고향 마을의 아늑한 산세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지구상의 어떤 생명보다도 거대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지 않으며,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는 거친 바다를 이겨낼 강한 힘이 있다. 그래서 고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옛 선사의 소박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정신세계를 보는 것 같이 경건해진다. 

  <모비 딕>은 고래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책이다. 고래 이외의 부분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동경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응징의 대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고래의 거대함만으로도 우리 가슴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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