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개정판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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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실아, 어서 가자."

  몽실이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엄마의 손에 이끌려 노루실 마을로부터 '도망간다'. 평범하던 몽실이의 삶은 새 남자를 찾아가는, 가난을 벗어나려는 엄마의 선택으로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안정을 찾아가던 몽실의 생활도 동생 영득이가 태어나면서 찬밥신세로 밀려나게 되고, 급기야 새아빠의 폭력으로 다리까지 절게 된다.

  홀로 노루실로 쫓기듯 돌아온 몽실이는 새엄마를 맞이하게 되고, 거기서 여동생 난남이가 태어난다. 이렇게 잘 적응하는가 싶더니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아빠는 전쟁터에 끌려가고 새엄마는 죽게 된다. 갑자기 고아가 된 몽실이는 난남이를 어렵게 '키워간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 할머니의 주선으로 몽실이는 읍내 최 씨내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된다. 식구처럼 대해주는 주인댁의 도움으로 먹을 걱정은 덜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돌아오고 다시 노루실로 돌아오면서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구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 버티는 중 아버지는 병으로 죽고 난남이마저 양녀로 '떠나간다'.

 

  소설의 첫 문장처럼 몽실이는 계속해서 떠돌아 다녔다. 엄마의 도망이나 새아빠의 폭력, 이복형제의 탄생과 구박과 같은 가족의 문제는 물론, 가난과 굶주림, 이념 대립과 전쟁과 같은 사회적 갈등으로부터 도망 다녀야 했다. 어린 소녀가 짊어지기에는 가혹한 현실이었기에 돌아가거나 피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는 외세의 힘에 의해 식민지가 되고, 이념이 나뉘고, 전쟁을 치룬 우리나라의 모습과 같았다. 새아빠에게 떠밀려 다리가 부러지고, 제때 치료받지 못했던 몽실이는, 일본에게 떠밀려 반 토막 나버린 우리의 모습이었다. 친일파와 매국노,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38선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몽실이의 부상은, 우리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고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숙명이 되었다.

 

  하지만 몽실이는 이 모든 고난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달라붙어 삶을 이어나갔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하나씩 개척해나갔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많은 희생이 따르긴 했어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하며 수많은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해왔다. 물론 아직 극복해야할 과제들이 많지만 언젠가는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몽실 언니>는 개인의 이야기가 가족의 문제로, 이웃과 사회의 이야기로, 대한민국의 근대사로 옮겨가는, 현재진행형의 우리 역사인 것이다.

 

 

- 2021.5.2., 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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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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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쩝, 장편소설인줄 알았는데 단편집이었다.

  여덟 편의 단편은 본인의 산문집처럼 하루키 자신과 진하게 연결된 것 같다. 소설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다면 산문집으로 읽혔을 수도 있겠다.

 

  <돌베개에>는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쓴 단카(일본의 시가)를 매개로 사라지고, 잘려버린 기억을 떠올린다. 오래되고 희미해져, 곧 사라져버릴 아련함 같은...

  <크림>은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p48)이 내 머릿속을 하얀 크림으로 몽실몽실하게 만들어버렸다. 뭐지 이건?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는 심심풀이로 적은 글이 현실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 마법 같은 소설이다. 그가 좋아하는 재즈 선율이 문장 사이에 가득하다.

  <위드 더 비틀즈 With the Beatles>는 비틀즈에서 클래식으로 음악적 취향이 변하듯, 시간과 기억 속에 스쳐 갔던 연인을 그려본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꼴찌를 도맡아 했던 야쿠르트 야구팀이 등장한다. 박민규 님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처럼 경쾌하고 재미있다. 소외되고 동떨어진 것에 대한 아련함이 가득하다.

  <사육제> 역시 박민규 님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생각난다. 못생겼지만, 이를 자신의 매력으로 가득 채운 그 여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말하는 원숭이가 등장한다. 우화적이고 환상적인, 기묘함이 가득한 소설.

  그리고 <일인칭 단수>. 멋진 슈트를 차려입고 호사스러운 휴식을 취하는데 등장한 방해꾼. 그녀는 나를 알아보았지만, 나는 여전히 일인칭이다.

 

  사실인지 상상인지 모호해지는 기억의 끝자락에서 일상을 되돌아보는 것 같다. 하루키의 옛 앨범을 보는 것 같은, 아니 앨범을 보는 내가 등장하는 꿈을 꾼 느낌이랄까? 뭔 소리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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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라 반점의 형제들 카르페디엠 25
세오 마이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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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청소년 문고를 읽지만, 일본은 처음인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이나 산문은 몇 권을 읽었지만, 다른 문화권의 청소년 소설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명확한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중고생이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집과 학교라는 행동반경을 벗어나기 어렵고, 이들과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내가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읽어야 한다며 구입한 책이기에 내 젊은 날을 기억하며 책장을 펼친다.

 

 여기 <도무라 반점의 형제들>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의 형제가 가정과 사회의 갈림길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집에서 겉돌기만 했던 형 헤이스케는 소설을 쓴다는 핑계로 도쿄로 떠났고, 귀염둥이 고스케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반점을 이어갈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 고스케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도쿄로 떠났던 형은 다시 도무라 반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으로 나가는 형(헤이스케)과 집에 머물러 있는 동생(고스케)의 상반된 모습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다시 역전된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먹이를 찾은 후에 다시 둥지로 회귀하고,  항구를 출발한 어선이 만선의 깃발을 들고 입항하듯, 가족 밖의 세상에서 마음껏 꿈을 펼친 후 다시 가족에게 되돌아오게 되는, 아니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을 보는 것 같다. 

  돌고 도는 세상 속에 웃고 울지만, 그 가운데는 언제나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했던가. 준비를 마친 내가 뛰쳐나갈 출발선이자, 언제고 다시 되돌아올 수 있는 결승선인 것이다. 최고의 노력으로 일등으로 들어오든, 넘어지고 다쳐서 꼴찌로  들어오든 여기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어쩌면 도무라 반점은 우리의 가족이자 고향이고, 인생이 아닐까. 그러니까 <도무라 반점의 형제들>은 바로 '인생의 이야기'인 샘이다. 편하게 읽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인생의 장엄함과 삶의 희로애락을 동시에 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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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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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독서목록에 있던 <합체>를 읽은 아내는 히죽히죽 웃으며 나에게 권했다.
  커다란 입의 고집불통 캐릭터가 농구공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모습이 조금 유치하게도 보였지만, 스마트 폰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일말의 호기심을 주면서, 동시에 간택되어야 하는 청소년 문학의 운명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표지도 아니다. 오히려 합체라는 제목과 함께 시선을 잡아끌기에는 안성맞춤인 디자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합과 체는 쌍둥이다. 공 묘기를 하는 난장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들 형제도 키가 작다. 난장이 쇼쟁이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아버지와는 합, 체는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크고, 특히 동생 체는 더욱더 심했다.
  체는 우연한 기회에 계도사라 자칭하는 이상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키가 클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믿고 계룡산으로 비기를 찾아 떠난다.


  작은 키가 못마땅한 체의 악다구니에 계도사의 신비함이 더해져 만화 같지만 동화스러웠고, 성장소설이지만 무협지를 보는 것 같았다. 한식과 양식이 뒤섞인,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퓨전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이들은 계룡산에서 수련하며 키 크는 비기를 얻고자 노력했지만,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들은 여전히 난쟁이처럼 키가 작았고, 친구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놀렸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공’이 있었다. 난장이 아버지가 소중하게 여겼던 작은 공처럼, 합과 체의 계룡산 수련은 세상으로 튀어 오를 몸과 마음의 디딤돌이 되었던 것.
  험난한 삶을 함께 헤쳐나갈 합체의 결합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튀어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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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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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에서 진행하는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그런데 소설의 2/3만 수록된 가제본 판이라는 것. 가제본이라... 여러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가제본 된 책을 받아본 것이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맛보는 따끈한 새 책이라는 점에서는 무엇보다 기대가 컸다. 마치 드레스 룸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새신부의 모습을 먼저 훔쳐본 느낌이랄까.

   여기까진 좋았는데 2/3만 수록된 불완전 판이라는 점은 상당히 의아했다. 소설을 먼저 선보이고 그에 대한 평을 받으려는데 결말을 모른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앞선 데다가 도착한 가제본의 첫 페이지에는 내용의 절반만 포함되어 있다고 되어있어 더욱 난감했다. 뭐지 이건? 선물로 받은 아이폰의 포장을 열어보니 배터리가 없어 작동이 안 된다?

 

   난감한 마음을 추스르며 숙제(서평을 남겨야 한다는)를 시작한다.

  <베이비 팜>은 제목처럼 아기 농장을 의미하는데,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골든 오크스 농장에 모인 대리모들의 이야기다. 호스트라 불리는 대리모는 재력가들의 수정란을 받아 9개월간 호화롭게 생활하게 되고, 출산 후에는 거액의 대가를 받게 된다. 제인은 가난한 필리핀 싱글맘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믿고 맡겨놓은 아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에 갈등하게 되는데...

 

   골든 오크스 농장에 모인 대리모들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하나씩 질문을 던진다. 임신과 육아에 대한 부모의 책임과 권한은 어디까지이고, 돈으로 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을까. 불임이라는 불가피한 경우라도 대리모에 대한 권한은 어디까지이고 사랑과 임신, 육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제인과 레이건, 메이, 아테 등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임신, 출산, 그리고 국가와 문화, 사회와 여성을 이야기하지만 결론을 내리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아기가 기계처럼 복제되고 길러지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연상된다. 아기를 중심으로 따뜻한 온정과 사랑이 넘쳐나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의 욕심이 숨어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이기심은 인간의 숭고함마저도 거래하려고 들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한번 되돌아봤다. 이런저런 핑계로 아내에게만 육아를 맡겨놓은 것은 아닐까 후회된다. 아이의 웃는 모습만 보려고 했지, 밤 사이의 칭얼거림을 외면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겉으로만 골든 오스크 농장의 화려함을 꿈꾸지 않았나 싶다.

  <배이비 팜>이 정식 출판되면 아내와 함께 읽어봐야겠다.

 

 

* 가제본 된 <베이비 팜>은 창비에서 진행한 서평단을 통해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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