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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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보시다시피 저는 인간인데요. 휴머노이드 아니에요." (p37)
  이렇게 끌려온 철이는 다른 로봇들과 함께 수용소에 갇힌다. 여기서 인간인 선이와 휴머노이드 로봇인 민이를 만나면서 자신도 어쩌면 휴머노이드 로봇일 수 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이렇게 수용소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민병대가 쳐들어온 혼란한 틈을 타 셋은 수용소를 탈출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이는 죽고, 재생 휴머노이드인 달마를 만난다.

  <작별인사>는 김영하 님의 기존 소설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배경부터가 로봇과 미래사회다 보니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휴머노이드, 과학, 로봇, 복제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면서, 사회시간인 줄 알고 기다리던 교실에 갑자기 컴퓨터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랄까(아니 신선함이라고 해야 옳을 듯). 김영하 님의 색다른 시도와 관점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점점 흥미로웠다.

  책장이 넘어가자 로봇과 인간의 대결처럼 보이던 소설에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겉모습만 보면 인간의 정체성을 간직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방황기 정도로 보이지만, 텍스트 곳곳에 남겨진 내용은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심오해진다. 

  우리 인간은 점점 복잡해지고 시스템화 되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와 이를 증명한다고 믿는(아니 착각인가?) 자의식이나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뇌?
  그럼 이 신경 덩어리가 인간의 근원이란 말인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유전자 조작이나 장기이식, 의체기술은 생명의 경계마저 사라지게 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글을 쓰는 인공지능부터, 뇌에 전기적 자극을 통해 시각을 재생하고, 최면이나 무의식을 이용해 기억도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젠 뇌의 기능과 복합적인 사고력만으로 인간임을 증명하기도 어려워졌다. 

  
  나는 인간이 길거리의 가로수나 개울가의 올챙이,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나 안방의 옷장, 자동으로 온도를 맞춰주는 김치냉장고나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과 무엇이 다른지 자문해본다. 생물학적인 외형이나 '나'라는 생각이나 의식만으로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이런 인식마저도 사회적 관습이나 보편적 규율에 따라 학습된 것은 아닐까.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진짜 나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최근 챗봇(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채팅로봇)이 많이 화자 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정보를 학습해 새롭게 가공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마치 유명한 교수나 석학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논리정연하다. 심지어 몇 달이 걸릴 보고서나 어려운 숙제도 척척 풀어내고 있어 일부에서는 사회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봇은 인간의 능력과 일을 대신해줄 것이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을 즐기고 소비하는, 수동적인 것들 뿐이리라.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만 반응하는 고물덩어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작별인사>는 수동적인 삶에 대한 김영하 식의 작별 인사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주문하는, 인류에 대한 마지막 인사...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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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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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키우기 원치 않는 아이인 경우 국가에서 운영하는 메디컬 센터에서 아이를 낳고 그와 동시에 NC 센터에 맡겼다."(p26)

  "아이를 입양하려는 사람들과 NC의 아이들을 아무도 모르게 가족으로 묶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NC 센터 핵심 역할이자 목표였다. 물론 아무나 부모가 될 수는 없었다. 예비 양부모(pre foster parents), 간단히 프리 포스터라고 불리는 이들은 깐깐한 서류 심사와 건강 검진, 심리 검사를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이라는 중요한 관문이 남아 있었다. NC의 아이들은 부모 면접을 영어 발음이 비슷한 '페인트'라는 은어로 불렀다.(p33)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고 고를 수 있다면? 이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에서 시작한 소설은, NC 센터에 머무르며 부모 면접을 기다리는 제누와 아키, 노아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페인팅 자체에 흥미가 없어 보이는 제누와, 어떻게 해서든 페인팅을 성공해 사회로 나가려는 아키, 페인팅 한 부모와의 불화로 다시 NC로 돌아온 노아.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부모를 만나길 원하지만, 몇 번의 만남으로 평생을 함께하게 될 부모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자식이 부모에게 원하는 것이 있듯이, 부모들 역시 자신만의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아이들을 입양하고 한다. 이 인위적인 상황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역할과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당신은 부모나 자식을 자신의 보호하고 대변해줄 대리인으로서 대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본인이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었던 꿈을 대신 이뤄주는 클론(복제품)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주변의 평판이나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부모와 자식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본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목적으로 가족이 구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테두리에 갇혀 서로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반성해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에게 덧칠된 페인팅은 없는지 얼굴을 만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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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윈터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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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가 밝았지만 난 여전히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도 화장실에서도 틈만 생기면 맹목적으로 폰을 켠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아내가 "당신은 책 읽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던데... 올해는 책 좀 읽지?" 란다. 뭐, 지도 밀크(우리집 반려견) 다음으로 폰만 보면서... ^^

아무튼, 이렇게 아내가 읽어보라며 권한 책이 김호연 님의 <불편한 편의점>이다. "엄마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우리집 1호 가훈처럼, 그녀의 명령에 책을 펼친다. 2023년의 첫 책!

서울역에서 술에 절어 노숙 생활을 하고 있던 독고는 염여사의 파우치를 찾아준 것을 계기로 그녀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된다. 독고는 알콜성 치매로 인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지만, 특유의 우직함과 부지런함으로 주변에서도 인정받게 되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아내의 말처럼 술술 읽힌다. 편의점에서 한 끼를 가볍게 해결하듯, 어렵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읽었다. 어수룩한 거지가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멋진 왕자로 환골탈태하지만, 사실은 왕자 자신이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동화 같은 소설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부하거나 식상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편의점이라는 일상적인 장소를 통해 우리 이웃의 현실적인 고민을 다루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고물가 시대에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도시락은 물론, 만 원 한 장이면 네 캔의 맥주까지 살 수 있는, 휴지부터 치약, 칫솔, 면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용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심지어는 1+1처럼 하나를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행운까지 누릴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책에는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편의점 선반에 잘 정리해 비치한 물건처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김호연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 간의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니면 명절을 맞아 차례상의 음식 가짓수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나의 이야기기도 했다. 너무 일상적이기에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불편한 편의점>이 되어 우릴 포근하고 편하게 보듬어주는 것 같다.

올해는 폰을 접고 책을 좀 읽어야겠다. 클릭 하나로 세상을 구경하는 편리한 스마트폰보다, 한 장씩 넘기며 작가의 생각을 음미하고, 나와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불편한’ 책을 가까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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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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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의 소설은 단순한 서사를 넘어 브랜드가 되었다. 함축적이고 인상적인 첫 문장, 오감으로 전해지는 묘사 방법, 화자와 대상을 교차하며 반어적으로 서술되는 생각들. 이 모든 것은 김훈만의 고유한 이미지가 되었고, 그의 책을 선택하고 읽는 확실한 이유가 되었다.

  <저만치 혼자서> 역시 김훈이라는 이름만으로 선택한 책.

 

<명태와 고래>

  "태백산맥이 해안을 바싹 압박하면서 가파른 경사로 물에 잠겼다."(단편 첫 문장, 9페이지)

간첩 혐의를 받고 13년 간을 복역하고 출소한 이춘개는 향일포로 향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차가운 물(한류)를 따라 이동하는 명태처럼, 개인의 삶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춘개의 삶은 한국전쟁이나 이념갈등 같은 거대한 시대적 상황, 마치 해류를 거슬러 살아가는 고래와 대비된다.

 

<저녁 내기 장기>

  "저녁 내기 판이 길어져서 이춘갑은 시장했다. 차車, 마馬가 모두 죽은 들판에서 초상楚象이 포包의 엄호를 받으며 좌변을 치고 들어왔고, 한병漢兵이 힙겹게 상 길을 끊어내고 있었다. 오개남이 졸卒을 옆으로 밀자 초포楚包가 한궁漢宮을 바로 겨누었다."(97페이지)

  해질녘 마을 공터에선 한漢과 초楚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춘갑과 오개남은 각자의 고된 삶을 해쳐나온 일상의 명장들은 아닐까... 우리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가 장기판 위에서 펼쳐진다.

 

<영자>

  "노량진 고시텔은 십층짜리 주상복합건물에 있었다."(단편 첫 문장, 149페이지)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구준생인 나는 같은 구준생인 영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공무원 시험의 엄청난 경쟁률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갑갑한 일상을 더욱 건조하게 만들었다.

  20년 정도전에 노량진에서 임용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분주하게만 보이던 고시생들을 측은하면서도 신기한듯 바라보며, 노량진 고시촌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공무원이라는 한 가닥의 희망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우리시대의 서글픈 단면이다.

 

<저만치 혼자서>

  경쟁적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는 한발 비켜선 수녀님이나 신부님이지만, 이들이 늘 바라본 곳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저만치 혼자서 우리를 향해 기도하고 세상을 위해 봉사한다. 도라지수녀원은 수녀들의 노후를 위해 만들어진 호스피스 수녀원이다. 여기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수녀님과 이를 돌보는 신부님의 이야기.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양종인 치릴로 신부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그리고 그의 누나가 쓴 <누구에게나 삶은 가볍지 않다>는 중앙일보 칼럼도 읽었다. 나가 미안해지고, 겸손해지는 하루다...


  이들 작품 외에도 <손>, <대장 내시경 검사>, <48GOP>가 실려있다.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면서 책을 잡기 시작했다. 9시부터는 아예 온 가족의 스마트폰을 수거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두기로 약속까지 했다. 폰과 멀어져야 책이 보이고, 여유가 찾아온다. 책과 폰은 영원한 상극이 아닐까. 폰을 접고 책을 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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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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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있는 요즘, 덜컥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언젠가는 걸릴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고생이다. 직장에서 해야 할 일도 많은 데다 나머지 가족에게 옮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컸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좀 쉬라는 말을 많이 들은 것도 사실. 하긴, 최근에 너무 정신없이 생활했던 것 같기도 했다. 가족들은 멀쩡한 상태에서 나 혼자 코로나 확진을 받다 보니, 방구석에 격리된 채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간간이 업무를 처리할 뿐 남는 것이 시간인지라 이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최근에 뜨고 있는 애플티비의 <파친코>였다.

   집사람은 이 드라마의 유행 소식에 원작을 구해 벌써 다 읽고, 나 보고도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두 권으로 나눠진 600페이지짜리 책을 끊기지 않고 읽을 자신이 없었다. 또한, 한일간의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말에 왠지 무거울 것 같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코로나로 인한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본다. 이번 기회에 소설을 다 읽고, 애플티비의 드라마까지 정주행하리라!

   <파친코>는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 근현대까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살아야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양진의 딸 선자는 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채 이삭과 결혼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녀는 이삭의 형님인 요셉 댁에 머물며 두 아들을 낳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신사참배 문제로 이삭이 잡혀가자 생활은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오래전 연인인 한수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겨우 안정을 찾아간다. 야쿠자가 된 한수는 일본의 패망을 예상하고 선자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후, 생활 터전과 노아의 학자금까지 마련해 주지만 그의 아들 노아는 한수의 존재를 부정하며 대학을 중퇴한 뒤 숨어버린다.

   소설은 박경리 님의 <토지>나 이문열의 <변경>,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패망, 한반도의 이념대립과 한국전쟁 등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굵직한 근대사를 따라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늘 우리의 역사가 있었다. 먼나라나 공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격동의 한반도 역사와 함께 살아왔던 우리 할아버지, 내 어머니의 이야기였기에 그 여운이 남달랐다.

   특히 일본의 침략과 만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 고통받고 흔들리는 서민들의 힘겨운 모습이 생생했다. 남자는 물론 여자들까지도 전쟁터로 끌려가야 했고, 식량은 물론 생필품은 늘 모자랐다. 가족은 굶고 있지만 일거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는 고향을 등지고 일본으로, 외국으로 떠나야만 했다.

   이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고, 실컷 일해주고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이민자들은 모든 안 좋은 일의 원인이 되었고 사회악처럼 치부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렵거나 힘들거나, 아니면 어둡거나... 파친코는 조선인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 중에 하나였다(실제 일본의 빠친코 업계 대부분은 재일 동포가 운영한다고 한다).

   설령 기회가 좋아 경제적으로는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이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일본에서 이민 1세대는 전쟁을 피해 도망 온 외국인일 뿐이었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2, 3세대 역시 이민자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외면당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겨야 했고, 한국에서는 일본인처럼 행세해야 했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전쟁처럼 인간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중국과 미국까지 넘보며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패망했던 일본이나, 독립을 위해 오랜 시간을 싸워왔지만, 정작 해방이 된 후로는 이념 차이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우리. 하지만 역사의 바람 아래 고통받았던 일반 서민들의 고충은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파친코>는 역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현재의 고통에 더 집중한다. 한국과 일본의 시시비비를 가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기보다는, 지금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찾아 보듬고 어루만지는데 관심을 집중한다. 전쟁이나 분쟁, 재해나 사고로 인한 피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비극이었기에 한국,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호응을 받는지 모르겠다.

   <파친코>는 한편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 내국인과 외국인, 비장애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관습적, 지역적으로 생겨난 여러 잣대는 우리 사회를 갈라놓았다. “여자가 뭐 저래?, 외국인은 어쩔 수 없지, 장애인이라 어쩔 수 없잖아?, 전라도는 안돼.”와 같이 우리 주변에 깔린 편견과 차별은 의외로 많다. 이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평한 기회를 박탈하게 했고, 도박판의 요행과 행운만을 바라보게 했다. 세상을 파친코 오락실로 만들어 버렸다.

   남녀가 평등해지고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것 같다. 양진과 선자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 도전장을 던진 전사처럼 비친다. 어쩌면 우리들의 어머니 모두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끝으로 책을 읽다 보니 눈에 띄는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사건 전개가 빨라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80년간의 방대한 이야기를 단 두 권으로 압축해 놓은 탓인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그렇다 보니 인물의 심리나 상황묘사가 부족해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이야기의 규모를 조금 줄이든지, 분량을 좀 더 늘리고, 좀 더 세밀한 묘사나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또 한가지는 번역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도 아닌 데다 드라마로 제작되기 이전에 소개된 소설이라 번역과 교정에 시간과 관심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나 오타는 원작의 품질까지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뜨고 원작이 다시 인기를 얻자, 출판사를 옮겨 새로 번역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파친코>는 우리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이민 1.5세대의 생각으로 적혀진 글(영어)을 세계인들과 함께 공감하며 읽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겠다. 근대사를 버텨낸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디 있으랴. 가족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가족이 된 한국의 드라마를 전세계인들과 함께 애플티비로 본다고 생각하니 이채롭기만 하다. 세계는 우리와 함께 하나가 되었다.

 

 

 

 

# 애플티비 <파친코>

애플티비<파친코>를 정주행 중이다. 8부작으로 이뤄진 드라마는 원작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심심한듯 아기자기하게 잘 만든 것 같다. 투박한 부산 사투리가 어색한듯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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